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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Apr 04. 2019

나는 이”기고” 있는가?

그리는 손(Drawing Hands), 에셔

 아는 지인이 D일보에 “친환경차는 소재도 친환경이어야”라는 글을 기고하였습니다. 이제는 포항에 있는 공장에서 에너지효율을 개선하기 위해서 팀장 코스프레를 하고 있지만, 한 때나다 기억 저편에는 온실가스, 저탄소, 기후변화, 녹색성장 이라는 깃발 아래서 고민하고, 행동했던 저를 생각해내었습니다. 이제는 뚜렷하게 기억나지도 않고, 지금은 다시 들어도 생소한 옛 이름이 되어버렸지만 한 때 늦은 밤까지 분석하고 기획하던 뜨거운 뜨거운 연탄같은 주제였습니다.


 지인의 기고문 제목을 읽고 처음으로 떠올린 그림이 있습니다. 바로 에셔의 “그리는 손(Drawing Hands)”라는 작품입니다. 누가 누가를 그리는 확인할 수도, 결정할 수 도없는 순환(Recycle)을 나타낸 그림입니다. 저도 나이가 들어 아이들 키우다 보니, 아들, 딸의 모습에서 저의 어린 시절을 발견하곤 합니다. 또한 가끔 세면대 앞 큰 거울에서 30년 전에 제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제 몸속 60조개 넘는 세포 속에 있는 DNA에는 제 유전자 정보를 유지하고, 기록하고 이를 후세에 물려줍니다. 유기체 생물은 즉, 자기 개체의 영속성을 자신의 전 존재인 모든 세포의 DNA에 새겨두고, 이를 유성생식이라는 형태로 후대에 물려주고 순환(Recycle)합니다.


 무엇이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에셔의 그름은 출발과 끝이 모호하고, 무엇이 먼저이고 나중인지 확인할 수 없는 인생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저는 이 그림 속에서 순환을 느꼈습니다. 인간이 문명을 이룩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연과 환경을 훼손할 수 밖에 없고, 산화물로 된 철광석을 비롯한 모든 광물들을 엄청난 에너지 소비작용인 환원반응을 통해 철, 구리, 알루미늄과 같은 소재를 만들어 왔습니다. 인간의 활동으로 훼손된 환경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자는 사람들이 환경론자이고, 최소환으로 막아보자는 저같은 사람들이 비겁하지만, 합리적으로 들리는 “친환경”이라는 말을 붙입니다.


 철광석에서 철로 변환하는 단 한번의 환원반응에서 엄청난 에너지소비(주로 석탄)를 하게 되지만, 우선 철이 만들어지고 나면, 철은 고철로 수집되고 재순환됩니다. 에셔의 그림은 한번 만들어진 철은 다시 철이 되는 순환을 거듭하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철은 가장 친환경적인 소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연 나는 내 삶에서 친환경적으로 살고 있는지 되물었습니다. 나는 환경을 보호한다고 해놓고, 일회용 종이컵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매일 아침 중형 디젤 SUV로 나홀로 출근을 하고 있지 않은지?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나를 합리화하고자 머그컵을 커피를 마시고, 오늘 아침은 회사버스를 타고 출근을 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행동은 지난 몇 년간 “저탄소 녹색성장” 업무를 한 제가 스스로 다짐했던 행동규약 중에 하나였습니다. 기후변화를 얘기하고, 북극곰의 안타까운 사연을 설명하는 앨 고어와는 다른 선택을 하고 싶었습니다. (앨 고어는 원칙적으로 기후변화의 위기를 얘기하면서도, 전용 제트기를 타고 다니고 전기를 엄청 쓰는 대저택에 살고 있다고 온실가스 음모론자에게서 위선자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제 글을 마칩니다. 뜬금없이 지인의 기고문을 보고, 나는 이”기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내 삶을 변화시키고, 내 삶을 뜨겁게 만드는 동력 중에 하나가 글쓰기입니다. 여기 브런치에 쓴 글을 헤어보니 143편이 되더군요. 나를 출근하게 만드는 건 회사의 취업규칙이고, 결국 돈의 힘입니다. 하지만 내가 출근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인가는 “그리는 손”입니다. 나를 다시 그리게 만드는 힘은 바로 “글”이었습니다. 나는 과연 이”기고”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나는 이 글을 브런치에 “기고”함으로 아침을 시작합니다. 어느 새 근속 15년도 훌쩍 지나고, 난 어디쯤 와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약간은 고민스러운 시점에 좋은 화두를 던져주신 지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친환경차는 소재도 친환경이어야”라는 기고문을 보고 나를 돌아보고 에셔의 그리는 손을 다시금 떠올리며, 과연 나는 이”기고” 있는지?에 대해 혼자 묻고 혼자 답한 아침이었습니다. 오늘도 난 머그잔에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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