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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Mar 14. 2019

나보다 훨씬 젊었던 엄마를 기억하며,

밤에 꼬로록 나던 소리는 엄마의 눈물이었습니다.

제목 : 나보다 훨씬 젊었던 엄마를 기억하며
 
 어린 시절, 집에 쌀이 떨어지기 일쑤였습니다. 우리 집은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집 중에 하나였습니다. 아버지가 회사에서 퇴근한 이후에 사장님에게 가불한 돈으로 저는 집 근처 쌀집에서 쌀 한되를 사러 가곤 했습니다. 사실 쌀집에서 외상으로 가져오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그렇게 서글픈 마음으로 쌀을 사가지고 오면, 엄마가 압력밥솥에 쌀을 안치고, 곤로에 밥을 짓습니다. 그러면 7살 꼬맹이 나와 5살 먹보 남동생이 압력밥솥만 빤히 쳐다봅니다. 그리고 압력밥솥에서 밸브가 돌아가길 기다립니다. 압력밥솥에서 압력밸브가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을 추고, 증기 빠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두 형제는 환성을 지릅니다.

 그나마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엄마 시집갈 때 큰 맘 주고 산 오래된 풍년압력밥솥은 아직도 고장나지 않고, 증기소리를 내며 두 형제에게 기쁜 소식을 알립니다. 벌써부터 7살 꼬맹이와 5살 먹보는 입안에 침이 고입니다. 엄마는 곤로불을 낮추고, 뜸을 들입니다. 자그만 냉장고에서 신김치가 나오고, 간장도 꺼내고, 멸치볶음 같은 밑반찬도 나옵니다. 그리고 엄마는 냉장고에 마지막 남은 계란 하나를 꺼내 계란 후라이를 만듭니다. 압력밥솥 뚜껑을 열고, 나무 밥주걱으로 3공기에 밥을 가득 담습니다.

 아버지 자리 앞엔 계란 후라이 하나가 놓여있고, 나와 내 동생은 밥에 간장과 참기름을 비빕니다. 계란 후라이를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1인 1달걀은 아직까지 사치입니다. 그래도 밥 위에 멸치볶음을 올려서 후후 불어가며 밥을 먹습니다. 아버지는 계란 후라이 반개 정도 드시고, 나머지 반을 두 쪽으로 나눠서 나와 동생에게 건내줍니다. 엄마는 남자 3명에게 밥을 어느 정도 챙겨주고, 압력밥솥에 남아 있던 밥을 싹싹 긁어서 밥상에 앉습니다. 밥상에는 계란의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엄마는 남은 반찬으로 오찻물(경상도 말로 보리차)에 밥을 말아서 먹습니다.

 왜 그 땐 몰랐을까요? 엄마도 계란을 좋아했습니다. 아버지와 두 아들의 밥그릇에는 항상 가득 담아주셨지만, 정작 당신의 밥그릇은 겨우 반으로 채웠습니다. 자기 밥그릇을 반만 채워야 어린 두 새끼 밥공기를 가득 담을 수 있습니다. 밤에 가끔씩 들려오는 엄마 뱃속의 꼬르륵 소리가 배가 울고 있는 눈물의 소리인지 몰랐습니다. 그렇게 철없는 7살 아들이 이제 44살이나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 때 엄마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서야 조금씩 알게 됩니다. 엄마도 얼마나 밥그릇 가득 채워서 먹고 싶었을까? 얼마나 계란을 먹고 싶었을까? 엄마가 배고파도 밥을 반그릇 밖에 먹을 수 없었던 건 두 꼬맹이 때문이었습니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드니, 내 밥그릇에 밥은 조금만 담고 내 새끼들 밥그릇에는 밥을 한 가득 담습니다. 그 밥이 꼭 흰 밥만은 아니라는 걸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보더 더 좋은 걸 주고 싶고, 나보더 더 맛있는 걸 먹이고 싶은 게 어미의 마음인가 봅니다.

 저는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그 때 가난하고 배고픈 나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압력밥솥에서 팽이처럼 돌아가며 휘리릭 휘리릭 소리를 내던 그 때가 기억이 납니다. 또 그 날 저녁, 엄마 배에서 나던 꼬르륵 소리도 기억합니다. 그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한 번쯤 묻고 싶습니다. “엄마, 나 오늘 점심에 친구가 준 빵먹고 배가 부른데, 내 밥 먹을래?” 그게 아니라면 “아빠, 맨날 우리만 계란 먹자너. 이 계란은 엄마 주자 어때?”라고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엄마는 “윤식아, 엄마도 배불러. 너 많이 먹어.”라고 대답했을 것이며, “엄마는 계란 별로 안 좋아하니깐, 너랑 동생이랑 많이 먹어”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 시절, 천진스럽게 압력밥솥을 쳐다보던 7살 꼬맹이는 중고등학교 등록금을 매번 꼴찌로 내야 했고, 회사에 입사하고도 학자금 대출을 2천만원을 갚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꼬맹이가 이렇게 울지 않고, 덤덤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쓸 수 있는 건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은 엄마 덕분입니다. 또한 그 시절 엄마 뱃속에서 꼬르륵 나던 소리를 기억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자.. 이제 눈물은 닦고, 밥주걱에 밥을 가득 퍼서 밥공기 한 가득 담아 엄마에게, 남동생에게 건냅시다. 그리고 이제는 계란 3개를 사서 1인 1계란도 해봅니다. 우리에게 없는 건 밥이지만, 우리에게 가득한 건 사랑이고 끝까지 나를 지켜주는 가족입니다. 오늘 밤은, 밤에 엄마의 꼬르륵 소리 대신에 부웅 방구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엄마의 방구소리는 밥 맛있게 먹고, 그토록 좋아하던 계란을 드신 엄마 뱃속의 웃음소리입니다. 엄마의 배속에서 나던 눈물소리가 웃음소리로 바뀐 걸 보니, 이제 배도 부르고 행복합니다.


2019.3.13일,

7살 꼬맹이가 44살이 되어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보다 훨씬 젊었던 엄마를 기억하며, 오늘 저녁 집에 전화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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