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윤식 Aug 18. 2019

샌프란시스코 베이와 골든게이트

안개에 가려진 골든게이트를 지나며

 긴 비행시간 때문인지 다들 피곤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숙소가 있는 파웰역까지는 바트(Bart)라는 전철을 이용했다.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에서도 대중교통이 편리하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하지만 서울, 부산에 비하면 다른 교통수단과의 호환성이나 환승면에서 불편했다. 괜히 서울 대중교통 시스템이 전세계에서 제일 편리하다는 얘기가 아닌 것 같았다. 우리 가족 4명은 각자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파웰역에 도착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2박을 지낼 터였는데, 유니온 스퀘어 근처에 있는 유니온 스퀘어 플라자 호텔이라는 곳이었다. 파웰역에서 오르막 길을 20분 정도 걷다보니, 드디어 호텔 숙소에 도착했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2성급 호텔은 1박에 20만원 정도 하는 아주 비싼 호텔이었다.


 호텔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다들 배가 고팠는지 식사하러 나가기로 했다. 파웰역 근처에 있는 슈퍼두퍼(Super Duper)버거 가게로 가기로 했다. 샌프란시스코에 3대 버거집이 있다고 한다. 누가 붙였는지는 모르지만, 차례대로 얘기하자면 슈퍼두퍼, 해비트, 인앤아웃 이란다. 참고로 해비트 버거 빼고는 다 먹어봤다. 슈퍼두퍼 버거로 향하는 길에, 그 유명한 케이블 차를 봤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눈으로만 즐기고 실제로 타보지는 않았다. 아이들에게 물어봐도 별로 타고 싶지 않아하는 분위기였다. 저런 케이블 차를 일제시대에 만들어서 탔다고 하니, 그저 웃음만 나왔다. 골든게이트 다리(금문교)도 1937년에 완공되었다고 하니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열심히 따라잡아서 이제는 반도체도 만들고, 자동차도 만든다고 하니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룬 성과도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만하다.


 슈퍼두퍼 버거는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제일 유명한 버거 2개와 쉐이크를 시켰다. 35달러 넘게 나온 거 같았다. 버거 2개, 감자튀김 2개, 음료 1개, 쉐이크 1개에 5만원이 좀 안되는 가격이라니, 비쌌다. 하지만 이건 미국에서 그래도 싼 축에 속했다. 슈퍼두퍼 버거는 소고기 패트가 그냥 스테이크라고 보면 된다. 육즙이 좔좔 흘렸다. 뭐랄까.. 맛있는 스테이크를 빵에 끼워서 먹는 기분이었다. 평소에 먹던 버거킹이나 맥도날드는 소고기패티를 먹는 기분이었다면, 슈퍼두퍼는 육즙이 좔좔 흐르는 스테이크를 베어 먹는 기분이었다. 역시 명성대로 맛은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미국에서의 첫 식사를 버거로 시작했고, 그 후 아주 많이 버거를 먹었다.


 버거를 먹고 나서 배도 부르고, 거리를 걸어보기로 했다. 파웰역에서 바다방향으로 걸었는데, 거리에는 노숙자들이 어디에나 있었다. 마천루 사이에 두고 에어팟을 끼고 레깅스를 입고 조깅하는 커리어 우먼, 닥터 드레 헤드폰을 끼고 멋진 수트를 입은 직장인 남자도 보였다. 그 가운데 한달은 안 감은 듯한 머리를 하고, 땟국물이 번들번들한 패딩을 입은 노숙자들도 보였다. 미국 대도시에는 노숙자들이 많다고 하더니, 정말 이었다. 작년 캐나다 밴쿠버에서도 일부 구역엔 노숙자들로 점령당한 듯한 모습이었는데,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자본주의 명암을 내 눈으로 확인하였다. 하지만, 지나가는 외국인 여행자의 눈에는 말쑴하게 차려입은 직장인과 꾀재재한 차림의 노숙인이 나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악어와 악어새 만큼은 아니지만, 한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을 음지로만 몰아세우지 않고, 양지로 끌어내서 살아가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걸어가는 길에, 둘째 딸이 옆에서 계속 “블라블라” 얘기를 한다. 도저히 피곤해서 못 돌아다니겠으니, 어서 숙소로 돌아가자는 말이었다. 잠시 고층건물 사이에 있는 휴식공간으로 이동해서 잠시 쉬었다. 그리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서 그날 밤을 마무리 지었다. 다들 너무 피곤했었는지,그 날 밤은 모두 꿀잠을 잤다.


 다음 날은 빅버스를 타고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한 바퀴 쭉 돌기로 했다. 샌프란시스코까지 왔으니, 금문교를 꼭 봐야하지 않겠는가? 아침에 유니온 스퀘어 광장에 갔는데, 바람도 많이 불고 안개도 끼어 있었다. 샌프란시스코는 샌프란시스코 베이 초입에 있어서 인지, 바다에서 넘어오는 해무 때문에, 도시 전체가 안개로 끼어 있을 때가 많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빅버스 레드를 타고 금문교에 도착하니, 항상 사진 속에 보아오던 금문교는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금문교 아래 다리 부분 20~30미터만 모습을 보였다. 금문교 너머에 샌프란시스코 시내는 햇빛이 쨍쨍한 반면, 금문교 측 샌프란시스코 베이 입측은 안개가 가득했다. 금문교 페인트 색깔이 눈에 띄기 쉬운 오렌지 빛깔이 도는 빨간색이라고 한다. 그만큼 샌프란시스코 베이의 안개는 유명한 모양이다. 버스에 잠시 내려 사진이라도 찍을라고 했는데, 바람도 너무 불고 금문교를 찍어야 별 소용이 없어서 다음 번 빅버스에 어서 올라탔다.


 빅버스는 차를 돌려서 안개에 가려진 골든게이트를 지나갔다. 샌프란시스코 베이는 안개로 가득하고, 샌프란시스코는 햇빛으로 가득했다. 바다에서 넘어 오는 차가운 해무가 금문교에 가득하고, 점점 옅어진다. 샌프란시스코도 그러하다. 샌프란시스코가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도시 중에 하나라고 한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동성애자가 산다고 한다. 나도 들은 얘기인데, 미국 어느 대학에서 두 교수가 다른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같은 결과를 얻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동성애자가 많은 도시를 연구하던 교수와 가장 혁신적인 도시를 연구하던 다른 한 교수가 같은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남에 대한 인정, 용납, 관용(똘레강스)이 높은 사회가 혁신을 이룬다는 것이다. 사회에서 가장 약자이고, 다름의 대표인 동성애자를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단순한 문제가 혁신에 이르는 길과 비슷하더라는게 두 교수의 결론이었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샌프란시스코 베이를 지나, 안개가 가득한 골든게이트를 지나며 피곤한 몸과 시차에 덜 적응된 나른한 마음으로 빅버스 2층에서 잠깐 생각을 했다. 해무가 가득한 샌프란시스코 베이가 있기에, 샌프란시스코는 저렇게 쨍한 햇빛을 가질 수 있다. 변화의 물결이 넘쳐 해무가 되어 세상을 덮치고, 시야를 가릴 지라도, 점점 옅어지고 샌프란시스코 베이에서 좀 더 벗어나면 쨍쨍한 하늘을 가질 수 있다. 먼저 앞서는 자는 먼저 넘어지고, 시야를 가리게 된다. 또한 남들과 달라서 받는 차별과 동시에, 남들과 다름을 기꺼이 인정하고, 관용할 수 있어야 한다. 불과 100년 전에는 흑인이 다름의 이유였고, 여자가 다름의 이유였고, 지금은 동성애자가 다름이 이유가 되고 있다.


 잠시 롬바르드 스트리트에 있는 러시안 힐로 이동했다. 젠장!! 샌프란시스코는 언덕이 많아서 그냥 지도만 보고 이동하면 큰일 난다. 급경사를 2~3개 넘어 오는데, 아들 딸들이 뒤에서 궁시렁 궁시렁 거린다. 드디어 도착한 러시안 힐에는 수많은 관광객이 사진을 찍기에 바쁘다. 우리 식구는 잠깐 귀퉁이에서 네명이서 쪼르르 앉아서 대화를 나눈다. 이렇게 굽이굽이 도는 길을 보며, 우리가 포항에서 여기까지 날아온 시간들이며, 또한 앞으로 남아 있는 여행길을 얘기했다. 다시 내리막을 내려서 39번 부두로 향한다. 우리 가족의 여행도 처음엔 안개로 가득한 샌프란시스코 베이처럼,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여행의 중간에 우리가 겪어될 햇살 가득한 하늘을 기대하며, 둘째 날 여행을 마무리했다.


P.S 호텔 앞에 있는 Pinecrest라는 식당에 갔는데, 아무런 정보없이 갔는데 나름 유명한 브런치 식당이었다. 정말 맛있었다. 여행이란.. 이런 맛에 한다. 기대치 않고 찾은 곳이 유독 더 기억에 남는다.

작가의 이전글 풍문으로 들은 샌프란시스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