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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Oct 29. 2019

어바웃 회사 2편

제품개발과 공정개선 (유목사회와 농경사회)

 글을 써보기 전에는 작가나 소설가는 하늘로부터 알 수 없는 영감을 받는 사람들이거나, 타고난 재능을 물려받는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물론 넘사벽의 시대를 앞서 나간 천재 작가도 있긴 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글쓰기의 꾸준함을 갖추지 않는다면, 타고난 재능도 발현될 수 없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나도 때때로 별거 아닌 생각의 실마리를 풀어서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글자체가 나를 이끌 때가 있다. 어바웃 회사 3편 시리즈 또한 그런 과정에서 나온 창작물의 결과이다.


 제목 : 어바웃 회사 2편 (부제 : 제품개발과 공정개선, 유목사회와 농경사회)


 인류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문명을 이루고 살아가는 국가의 형성을 보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국가 형태를 살펴보면 유목사회와 농경사회로 구분할 수 있다. 중국 역사를 크게 개략적으로 분류한다면, 기마민족인 유목사회와 한족인 농경사회의 다툼이라고 볼 수 있다. 유목사회는 양을 치며, 말을 타고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이동한다. 이에 반해 농경사회는 소를 키우고, 씨를 뿌리고 땅을 일구며 정착하며 살아간다. 드센고 사나운 유목민족을 어르고 달래보기하며, 때로는 엄청난 성벽을 쌓아도 보지만 유목민족들이 단결하거나 통일되는 시점에는 여지없이 한족이 세운 나라는 망하고 만다.

 

 오죽했으면, 아시아에 살던 훈족이 유럽 방향으로 몰려오자 고트족들이 무서워 민족 대이동을 하게 되는데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로마제국이 멸망하게 된다. 물론 로마제국의 내부적인 불평등, 권력다툼, 끝없는 내전으로 썩어질 대로 썩어져서 망했지만, 멸망에 이르게 한 방아쇠는 훈족이 야기한 건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다. 국가와 마찬가지로 회사도 이동하느냐, 정착하느냐 그 갈림길에서 조직문화도 다르게 마련이다. 유목사회는 신속히 이동하며, 의사결정이 빠르다. 농경사회는 이동이 적은 반면, 성실이 미덕이며 빠른 의사결정보다는 정확한 의사결정을 선호한다.


 난 자본주의의 총아라 할 수 있는 기업도 이와 유사한 특징을 가진다고 본다. 제품개발이 중심인 회사는 유목사회의 그것과 비슷하고 공정개선이 중심이 회사는 농경사회의 그것과 비슷하다. 삼성전자 휴대폰 사업부는 제품개발이 중심이다. 갤럭시 노트 8을 개발하면, 개발된 제품은 양산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물론 제품을 만드는 양산과정도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더 중요한 건 다른 회사와의 차별성 또는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제품개발은 2~3년 짧은 주기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신속한 의사결정이 중요해진다. 만약에 방향을 잘못 정해진다면, 빠른 피드백을 통해 실패를 인정하거나 방향을 틀어야 한다. 그래서 보고의 형식보다는 보고의 실질이 중요해진다. 또한 조직은 TF 또는 프로젝트 단위로 구성되며, 해당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시 해체되기 마련이다. 성실도 중요하지만 신속이 보다 중요하다. 아무리 잘 만든 스마트폰이 있더라도, 2~3년 지나면 또 다른 신제품을 시장에 내놔야 하는 숙명을 가진다.


 그에 반해 공정개선이 우선이 회사도 있다. 내가 다니고 있는 철강회사가 대표적이다. 물론 철강회사도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강종을 개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개발 주기는 스마트폰과는 다르게 4~5년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장치산업 특성상 대규모로 투자된 설비는 10년 이상 돌아간다. 기본적으로 팔리는 제품이 있다. 건설현장에서 철근을 쉽게 볼 수 있는데, 10년 전에 생산된 철근이나 최근에 생산된 철근은 별 차이가 없다. 그래서 대규모 투자로 이루어진 투자는 농경사회의 집, 논, 밭과 비슷하다. 제품개발 주기는 보다 길고, 일반적으로 생산되는 제품(철강, 쌀)을 얼마나 많이 얼마나 싸게 만드냐가 경쟁력의 관건이 된다. 그래서 공정을 개선하게 되고 설비를 관리하게 된다. 이 과정은 신속한 의사결정보다는 정확한 의사결정이 더 중요하다. 심사숙고해야 하고, 나보다 경험이 많은 사람들의 판단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공정개선이 우선인 회사는 보고의 실질뿐만 아니라 보고의 형식이 더 중요하다. 높은 사람에게 아뢰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을 거쳐야 하고, 중간에 실수도 없어야 한다.


 태생적으로 제품개발과 공정개선이라는 특성 때문에 조직문화는 자연스럽게 이에 적합하게 정착되기 마련이다. 그러면 현대사회는 유목민족이 농경민족보다 훨씬 우월한가? 노마드란 얘기가 나왔을 때 많은 경영학자들이 노마드적 사고를 주장하고 기업문화에 이식하길 노력했다. 하지만 난 좀 다르게 봤다. 노마드적이라고 정답은 아닌 셈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유목민족이 그 특성을 잃어버리고 정착하기 시작하면 그 장점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에 반해 농경민족이 유목민족의 장점을 배우기 위해서 개혁도 해보지만 대개의 경우는 엄청난 저항을 겪고 다시 회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제품개발이 우선인 회사라면, 굳이 공정개선이 우선인 회사의 문화를 쫓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논공행상은 배울만 하다. 만약에 특별한 성과를 이룩한 사람에게 상을 준다면, 정확히 그 사람에게 상을 줘야 한다. 제품개발은 A가 9할을 했는데, 상은 A의 소속 조직에게 준다면 A는 평가가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고, 다른 유목민족으로 이주(또는 이직)할 수 있다. tvN에서는 나영석 피디가 돈을 벌어주기 때문에 나영석 피디가 속한 본부장보다 연봉을 많이 받는 게 더 공정하다. 유목민족은 벌보다 상이 훨씬 공정해야 한다. 그리고 제품개발이 우선이고 밥벌이인 회사는 조직이 관료화되고, 복잡해지는 걸 극도로 경계해야 한다. 사장이 제품개발의 취지나 컨셉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해야 하지만, 이래라저래라 간섭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유연한 토론은 사라지고 사장님의 지시만 남게 된다.


 공정개선이 우선인 회사는 장점은 그대로 두되, 단점을 보완해야 한다. 원래의 목표는 더 많이 더 싸게 제품을 만드는 데 있다. 그렇다면 의사결정이 중요하게 마련이다. 이놈의 의사결정이라는 게 높은 사람들이 하게 마련이라서 의사결정을 위한 과정이 권력을 행사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윗사람이 눈이 침침하니깐 폰트는 14로 해야 하고, 최대한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보고서는 수십 번씩 수정된다. 원래의 본질이 형식에 압도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원래의 장점이 의사결정의 과정에서 조직 구성원들이 지치고 피곤해진다. 그래서 윗사람은 항상 형식보다는 본질을 추구할 수 있도록 깨어있어야 한다. 또한 농경사회는 뛰어난 개인보다는 단합된 집단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한 개인에게 상상 이상의 상을 주는 건 오히려 조직사회에 해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인사는 잘하는 사람을 승진시키는 것보다 못하는 사람을 승진시키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승진을 해야 할 사람이 승진하지 못하면 실망을 하지만, 승진해서는 안될 사람이 승진하면 절망하기 때문이다. 조직은 그대로 두되, 항상 형식이 본질을 압도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성찰해야 한다. 또한 농경민족은 상보다는 벌이 훨씬 공정해야 한다. 벌을 줘야 할 사람이 벌을 받지 않으면, 이래도 되는가 싶어서 다들 그 선을 넘고 불법이 활개치게 된다. 상은 한 개인에게 주기 보다는 개인이 속한 조직에 주는게 더 좋을 수 있다.


 역사상 완벽한 국가나 제국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은 체제 중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사회체제는 민주주의라고 한다. 유목사회이던 농경사회이던, 20세기 인류가 발명한 수많은 제도 중에서 가장 효과적이라는 민주주의의 형태를 어느 정도 접할 수 있다면, 우리는 보다 진보된 유목민주사회, 농경민주사회를 이룰지도 모른다. 그리고 회사 스스로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구성원들이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찰하여 장점을 극대화할지, 단점을 보완해야 할지 결정하고 실천해야 한다. 제품개발을 하는 회사라면 장점을 극대화하고, 공정개선을 하는 회사라면 단점을 보완해나가고 민주주의라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면 우리는 워라밸을 이루면서 회사를 성장시키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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