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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Apr 27. 2020

정전과 영녕전을 걷다.

아버지 곁에 누은 아들을 바라보며

주말에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사촌동생 결혼식이 잠실 웨딩홀에 열렸는데, 완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영향인지 결혼식에는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625 한국전쟁에도 결혼했고, 아이도 낳았으니 삶은 그대로 이어가야 하는가 봅니다. 회사 근무 때문에 서울에서 4  정도 살았습니다. 그때는 아이들이 어려서 경복궁, 창덕궁, 종묘, 덕수궁  고궁을 다녔지만 기억이 없어서 서울에 올라간 김에 명동 근처에 호텔을 예약해서 서울 나들이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설민석 한국사 만화책을 즐겨 읽는 탓에 호텔 근처에 있는 이순신 생가터에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다음날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종묘에 가보기로 합니다. 코로나19 영향인지 매표소에는 저희 가족 외에 1~2명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거의 종묘를 전세내고 다녀봅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녹지공간이 있다는  조선이 대한민국에  선물이기도 합니다.


신도 (왕과 왕세자가 걸었던 .. 중간으로는 역대 왕의 혼령이 함께 걷는다 하여 신도라고 합니다.) 옆으로  있는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정전가  펼쳐집니다. 평소에는 여러 관람객으로 북적였는데, 오늘은 우리 가족들만 조용히 관람하는 호사를 누려봅니다. 종묘에 모신 역대 왕의 신주를 살펴보니, 재미있는 사항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이 아니었는데, 유일하게 정전에 모신 사람이 있었습니다.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가 젊은 날에 죽어서 문조가 되어서 정전에 모셔져 있습니다. 순조(정조의 아들) 아들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겨서 정전에 모신 게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저는 그보다  궁금했던 ... 과연 세조는 어디에 있을까 였습니다. 정전의 신주 순서는 이렇습니다. 태조 - 태종 - 세종 - 세조 - 성종입니다. 세조는 아버지와 함께 누웠습니다. 아버지 세종이 살아있을 때는 왕세자를 인정받지 못하고, 형인 문종이 죽고 조카를 밀쳐내고 왕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아버지인 세종에게 왕으로서 인정을 받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마음이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문종이 정전에 모셔지지 않았습니다. 세종이 나이가 들어서 건강이 나빠졌을  문종은 왕세자로 대리청정하며 사실상 국무를 수행하였고, 재위 기간으로 2년으로 짧았지만 정전에 모시기에 충분한 업적이 있습니다. 세종 - 문종 - 세조로 이어지는 신위보다는 세종 - 세조로 이어지는 신위 순서가 세조에게 훨씬 맘에 들었을 겁니다.  다음보다는 아버지 다음에 자신이 훨씬 자랑스럽지 않았겠습니까?


 발길을 옮겨 영녕전으로 향합니다. 영녕전은 태조 이성계의 조상들의 신위가  있고... 조선의 왕으로는 주로 재위 기간이 짧은 왕들의 신위가 모셔져 있습니다. 정종 - 문종 - 단종.. 이런 순서로 있습니다. 물론 단종은 후대에 복위되어서 신위가 모셔졌습니다.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비참하게 죽은 단종은 아버지 옆에 누을  있었습니다. 영녕전을 거닐며, 조선 역사상 가장 정통성이 있던  명의  (문종 - 단종) 정전에 모셔지지 않고, 영녕전에 있는  보며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낍니다. 문종은 처음으로 장남이 왕이  케이스였고, 단종은 원세자로 처음으로 왕이  적통 중에 적통이었습니다. 하지만  명의 적통은 영년전에 모셔져 있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누가  행복했을까요? 영녕전에 모셔진  부자는 불행한 삶을 살았지만, 죽어서나마 옆에 나란히 누을  있었습니다. 또한 정전에 모셔진 세조는 아버지가 죽은 후에 당당히 아버지 세종에게 인정을 받아서 옆에 누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인 예종은 짧은 치세 탓에 영녕전에 모셔져 있습니다. 세조의 아들인 예종은 자신이 죽인 단종 옆에 누워 있습니다. 세조는 아들을 곁에 두지 못하고, 아버지 옆에 누워 있습니다.


종묘와 영녕전을 걷으며 인생의 무상함을 느낍니다. 또한  옆을 함께 걷는 아이들을 보며 현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정종 - 문종 - 단종 - 예종으로 이어지는 영녕전의 신위를 보며, 비극적인 아들을 죽어서나마 위로하는 문종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태조 - 태종 - 세종 - 세조 - 성종으로 이어지는 정전의 신위를 보며,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세조의 거친 자존심과 피도 눈물도 없는 야망을 보았습니다.


 정전과 영녕전을 걸으며,  어떤 아버지이고 어떤 아들인가? 생각해봅니다. 일요일 아침.. 새들이 지저귀는 종묘를 걸으며, 역사의 한가운데 인생사를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역사는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P.S 시간 나면 한 번쯤 종묘에 다녀오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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