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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Feb 06. 2016

어느 직장인의 세상만사 #2

2편. 직장인 성동일, 응답하라 1988 (부제 : 성과장의 비밀)

응답하라 1997, 1994, 1988 시리즈에 주연은 아니지만, 개딸의 아빠는 언제나 성동일이었다. 나는 응답하라 시리즈 중에서 1994가 가장 생각이 많이 난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1995학번이기 때문에, 대학생으로서 가장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건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1988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기에 성덕선과 그 친구들(1971년생)은 내게 감히  쳐다볼 수 도 없는 동네 누나 오빠인 셈이다. 하지만 41살이 되어버린 직장인으로서 성동일 과장을 보며, 직장인 성동일에게 묻고 싶다. 1997, 1994에서 성동일은 야구부 코치로 나온다. 1988에서는 한일은행 성과장으로 나온다. 그래서인지 난 직장인 성동일이 어떻게 사는지, 왜 그래야 하는지, 궁금했다. 드라마에서 주연은 아니지만, 가족들을 위해 살아가는 이 땅에 수많은 직장인 성동일을 위해 이 글을 쓴다.


2편. 직장인 성동일, 응답하라 1988 (부제 : 성과장의 비밀)


성과장 비밀1.  왜 성과장은 항상 피곤한가?

성동일 과장(이하 성과장)은 한일은행에 다닌다. 1화에 보면 성과장 식구는 덕선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쌍문동에 살았다고 한다. 성과장이 한일은행 감사부에 근무했다고 하니, 직장은 그 당시 한일은행 본점이 있던 시청역 회현동으로 출퇴근했을 것이다. 성과장은 아침 7시 전에 회사에 가기 위해서 버스와 지하철을 탔을 것이다. 지금도 예전에도 직장인 아빠들은 자식들의 등교 전에 먼저 집을 나선다. 덕선이와 그 친구들은 10~20분 내외로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갔지만, 성과장은 1시간 넘게 버스,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했다. 하루에 2시간이 넘는 출퇴근 시간은 어떤 사람이라도 지치게 만든다. 시청역에서 쌍문동을 다녔던 성과장 이야기가 1988에도 2016에도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


성과장 비밀2. 왜 성과장은 빚보증을 섰는가?

성과장은 은행에 다닌다. 은행에 다니면, 누구보다 연대보증의 무서움을 알게 된다. 선천적으로 정 많은 성과장은 머리로는 연대보증의 무서움을 알지만, 딱한 사정을 호소하는 친척의 빚보증을 서고 만다. 그래서 반지하에서 성과장은 살게 된 것이다. 필자의 아버지도 사업을 하다가 연대보증을 섰다가 내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내내 빚의 굴레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성과장이 덕선이가 꿈에 대해서 얘기하는 장면이 있다. 본인도 어쩌다 보니 은행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말이다.  먹고살라고 하니깐 고등학교 마치고 은행에 들어온 셈이다. 가슴은 다른 꿈이 있었지만, 머리는  먹고사는 현실임을 자인할  수밖에 없다. 천성적으로 맘 착한 성동일은, 그 무서운 빚보증을 알고 있으면서도 친척의 빚보증을 하고 만다. 이 땅에 수 많은 성과장들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일보다는  먹고살기 위해 직장을 선택하였다. 그래서 성과장은 퇴근길에 할머니가 미처 팔지 못한 나물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떨이로 사고야 만다. 자신은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살지만, 일상만은 가슴으로 살고 싶었을 것이다. 


성과장 비밀3. 왜 성과장은 항상 술에 취해 퇴근하는가?

필자도 감사실에서 2.5년 동안 근무했다. 감사실에 근무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철강회사 감사실과 한일은행 감사실은 천지차이일 것이다. 아마도 10,20억 단위로 돈을 들고 잠적하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적발하는 게 성과장의 주임무였을 것이다. 감사실에 있으면 수 많은 사람들을 면담을 하게 된다. 그러면 정말 속에서 천불이 난다. 상대방의 말 같지도 않은 거짓말과 변명을 들어야 한다. 필자는 감사실에 근무하면서 내 정신이 닳아져서 소진해져 가는 기분이 들었다. 성과장은 술을 마시지 않으면, 본인의 일상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성과장이 매일 매일 마주해야 하는 현실은 저 바닥 밑에 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는 씻김굿이 필요했을 것이다. 1988년 한일은행 감사부에서 일했다는 현실 자체가 술을 안 마실 수 없게 만든다. 1921년 현진건이 "술 권하는 사회"라는 책을 냈던 그 때나 1988년이나 헬조선이라고 하는 2016년이나 감수성 예민하고 맘이 여리고 여린 수 많은 성과장은 술에 취해 퇴근한다.


성과장 비밀4. 왜 성과장은 항상 똑같은 츄리닝을 입고 있나?

성과장 가족들이 연말 가요대상을 보는 장면들이 연이어 나온다. 다른 사람들은 옷도 바뀌고 패션도 바뀌지만, 성과장은 항상 같은 츄리닝이다. 처음에는 별 대수롭지 않게 봤다. 그런데 성보라가 결혼하는 해에도 성과장은 같은 츄리닝을 입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나도 결혼할 때 샀던 츄리닝을 지금도 입고 있고, 심지어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츄리닝을 입고 있다. 이 땅에 직장인 아빠 성과장은 나이가 들수록 자신에게 돈을 쓰지 않는다. 아들, 딸들 옷 사주고, 가방 사주는 데는 쉽게 돈이 써진다. 하지만 직장인 엄마, 아빠는 그렇지 못하다. 애들이 커서 좋은 츄리닝 사주면, 그것도 아까워서 옷장에 넣어두고 바로 입지 않는다. 성과장이 항상 똑같은 운동복을 입은 이유는 패션감각이 없어서도 아니고, 돈이 없어서도 아니다. 항상 자식새끼들을 우선으로 살다 보니,  어느덧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은 가장 나중이 되어 버린 것이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성과장의 츄리닝은 가족의 중심에서 살아간 이 땅의 수많은 성과장을 위한 오마쥬인 셈이다.


직장인 성과장은 1988이나 2016이나 비슷하다. 그들은 기나긴 출퇴근에 항상 피곤하고, 전쟁터 같은 직장생활에 술을 마시고 퇴근해야 하고, 항상 똑같은 츄리닝을 입는다. 잠시 꿈을 포기하고 선택했던 직장에서 명퇴하게 된다. 이제는 성과장도 아니고, 보라의 아빠가 아니라.. 성동일로 살았으면 한다. 판교로 이사 간 성동일은 더 이상 성과장이 아니다. 판교에서 그가 이루지 못한 꿈을 위해 살았으면 한다. 이 땅에 수 많은 성과장들이여.. 힘내세요..


P.S "어느 직장인의 세상만사" 시리즈는 홀수 편는 회사 경영에 대한 이야기를 할 예정이고, 짝수 편은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의 삶을  이야기할 예정입니다. 10편 전후로 마감하려고 합니다.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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