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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Jun 09. 2020

키안티 클라시코를 맛보다.

토스카나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어제 직원들과 함께 포항시 외곽에 있는 이탈리아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 나라 음식에는 그 나라 술이 제격이라는 나만의 신조에 따라서 며칠 전에 이탈리아 와인을 두 병 마련해두었다. 바로 토스카나 지방에 키안티라는 동네에서 생산한 키안티 클라스코 DOCG급 와인이었다. 프랑스 와인으로 따지자면 보르도 지방의 메독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산지오베제 포도 품종을 80% 이상 사용하고, 다른 품종을 20% 정도 브랜딩 해서 생산하고, 와인병에는 수탉 라벨이 붙여 있는 와인이다. 나도 이탈리아 와인은 잘 몰라서, 그냥 별 주저 없이 항상 키안티 클라시코에서 생산된 와인을 늘 고르곤 한다.


 우리가 알코올 또는 (Alcohol, Liquor)이라고 부르는 단어를 살펴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있다. 술을 마신다는 행위는 Drink Taste 나눌  있다. 맥주는 통상 Drink (마신다)라고 말하고, 와인은 통상 Taste (맛본다)라고 말한다. 물론 때에 따라서는 맥주를 Taste 할 수도 있고, 와인도 Drink 할 수도 있다. Drink는 술의 향기나 맛보다는 술이 주는 청량함과 술기운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고, Taste는 술의 향기나 맛을 목구멍과 입안에서 음미하고 넘긴다고 볼 수 있다. 한 여름철 샤워하고 나와서는 시원한 라거 맥주를 마시고, 늦은 가을 저녁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스테이크에 레드 와인을 곁들여서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


 Drink는 음료의 성격이 강하고, Taste는 음식의 성격이 강한다. 어제는 6명이서 그야말로, 이탈리아 음식(스테이크, 파스타, 피자 등)을 시켜놓고 키안티 클라시코를 맛보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거기다 이탈리아 식당 2층에 있는 커피숖에서 이탈리아 방식의 커피인 에스프레소 한잔을 쭉 들이키니, 말 그대로 이탈리아의 향연이었다. 이탈리아 말만 할 수 있었다면, 그야말로 이탈리아에 온 기분일 테다. 그렇게 기분이 좋아져서 한잔 두 잔 마시다 보니, 함께한 동료들에게 술김에 글을 쓰겠다고 약속을 하고 말았다. 그래서 아침 일찍 출근해서 이 글을 기어코 쓰고야 만다.


 토스카나 지방은 피렌체가 있는 유명한 이탈리아 중서부 지방이다. 일찍이 고대 로마제국 시절에는 에르루리아 인들이 살았다. 로마 사람들과는 달리 에르투리아 사람들은 주로 산 구릉에다 도시를 짓고 살았고, 건축기술이 뛰어났다. 유럽, 북아프리카에 있는 수도교, 아치형 고대 건물들은 실용적인 에르투리아 사람들의 기술로 기반해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형도 에르투리아 사람들의 형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토스카나 지방을 비롯한 이탈리아 중서부 일대에는 수공업 등 기술력이 뛰어나다. 그리고 토스카나 지방에서 조금만 위에 있는 볼로냐 근처에는 페라리, 람보르기니와 같은 럭셔리 스포츠카 회사들이 즐비하다.


 토스카나 사람들은 뛰어난 기술력을 기반으로 건축물, 예술, 문화 그리고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까지 만들어 냈다. 그들은 고대 로마의 찬란한 문명과 중세 이후에 활짝 꽃핀 르네상스를 열었다. 나도 나를 포함해서 13명의 팀원들이 토스카나 사람들(에르투리아 인)처럼 살 수 없을까 생각해봤다. 기술을 가진 사람은 장인이지만, 기술이 창조를 만나게 되면 예술이 된다. 우리 직원들 중에 기술을 가진 사람들과 창조를 가진 사람들이 만나면 예술이 되지 않을까 한다. 현장에서 갈고 닭은 경험과 책 속에 본 이론을 접목하면 새로운 르네상스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너무 앞서 나간 건 아닐까 염려도 되었지만, 그 일을 하라고 회사에서는 나에게 월급을 주리라 생각한다.


 피렌체에는 유명한 메디치 가문이 있었다. 위대한 예술인들을 후원하고, 그들이 창조할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을 제공했다. 로렌츠 메디치가 의뢰한 작품을 만들고, 공방을 제공하여 위대한 피렌체가 탄생하게 되었다. 내 역할도 메디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예술인과 기술자들을 다그치지 않고, 성과 이전에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 아닐까 자문해보기도 한다. 이제 글을 슬슬 맺어야 할 것 같다. 어제는 좋은 사람과 좋은 음식을 두고 키안티 클라시코를 맛보았다. 인간관계도 와인과 같이 단숨에 마시지 말고, 입안에 굴리고 음미하다 보면 그 진가를 맛볼 수 있게 된다. 어제는 술, 음식, 인간을 맛본 소중한 시간이었다.


 또한 키안티 클라시코를 생산하고 있는 토스카나 사람들을 생각하며, 우리 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다. 기술과 창조가 만나야 예술이 된다는 생각을 머릿속에만 둘 것이 아니라, 실천해야겠다. 토스카나에서 시작된 르네상스가 다시 시작되길 기원해본다. 우리 팀도 기술력으로 기반을 둔 토스카나 사람들처럼 예술과 와인을 동시에 즐길 수 있기를 빌어본다. 나는 잘 노는 거 하나는 뒤지지 않고 잘할 자신이 있다. 춤과 노래는 못하지만, 예술과 와인을 음미하고 맛보는 건 나의 취미이자 일상이다.


P.S 조만간 키안티 클라시코를 맛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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