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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Jun 02. 2020

별을 찾아 헤매다가 빨간 금붕어 어항에서 끝나다.

지금 난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난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건

나른한 일요일 오후에 꿀 같은 낮잠을 자고 일어나 소파에 멍하니 앉았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스물 장 읽으면서 r > g 공식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었다. 21세기 자본은 21세기 자장가가 되어 다시 눈이 스르르 감겼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거실 책장에 꽂혀있던 책들을 쭈욱 스캔해보았다. 아무래도 나른 나른한 일요일 오후에는 소설이 제격 이리라. 그리하여 프랑스 작가 뮈리엘 바르베리가 쓴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꺼내 들었다.


 역시 소설은 술술 읽히는 맛이 있다. 그러다가 25페이지에 이르렀다.


별을 찾아 헤매다가

빨간 금붕어 어항에서

끝나다


이렇게 3줄짜리 글귀를 보고 말았다.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다. 딱딱한 데이터와 수식으로 무장한 21세기 자본을 피해서 말랑 말랑한 소설로 갈아탔는데 난 잠시 멍하니 책을 뚫어져 쳐다보았다. r > g 공식보다도 나를 강렬하게 이끌고 말았다. 나도 “별”을 찾아 헤맨 적이 있다.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업적을 이루고 싶었다. 학문을 이루기 위해 석사까지 전공을 했고, 잠시 유학자금을 마련코자 입사한 회사에서 현재 16년째 다니고 있다. 회사에 와서는 현장 엔지니어로, 에너지 기획업무로, 감사실 검사역으로도 일해보기도 했다. 내가 찾는 “별”은 과학자였다가, 공학도였다가, 석사였다가, 박사가 될 뻔했다. 유학 대신에 선택한 회사에서는 유능한 엔지니어, 해외 주재원, 서울 근무, 감사실 근무 등으로 “별”을 쫓았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게 “별”이라고 믿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난 지금 “빨간 금붕어 어항”에서 머물러 있다. 도전 대신에 안주했고, 꿈보다는 돈을 선택했다. 남들도 나처럼 살아간다고 믿었고, 그래도 이 정도면 제법 괜찮게 살고 있는 거 아니냐고 자문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후배가 “인생은 스피드가 아니라 방향성이 중요한다는데, 20대 청년이 현 사회적 분위기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조언을 구한 일이 생각났다. 처음에는 그 후배에게 멋진 말이나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답은 아니지만, 그 후배를 위로할 수도 있고, 방향을 보여줄 수 있는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나 또한 “별을 찾아 헤매다가 빨간 금붕어 어항에서 끝날” 상황에 있는 듯 보였다.


 나도 내게 주어진 환경, 현 사회적 분위기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나마 난 순전히 운이 좋아 2004년에 취업할 수 있었다. 그때도 취업이 어려웠지만, 지금과 비할 바는 아니었다. 마치 21세기 공익 근무한 사람이, 20세기 초반 항일 운동한 광복군에게 “슬기로운 군대생활”을 조언해주는 것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난 그에게 멋있는 조언을 해줄 자격이나 그에게 닥친 어려움을 겪어보지 못한 채 이렇게 살아라라고 값싼 조언을 하고 있는 셈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도 “별”을 찾아 헤매고 있을 터라 이래라저래라 라는 조언보다는 내 “넋두리”가 도움이 될 듯하다. 다시 질문을 해보자. “20대 청년이 현 사회적 분위기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정답은 40대 중년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별”을 따지 못해도, “꿈”을 이루지 못해도 “별”을 찾아 헤매야 한다고 말이다. 나도 그랬다. 2003년 7월, 29살 예비 백수 청년은 취업이 “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취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취업이 “별”이 아닌 걸 깨닫게 되었다. 그래도 난 취업이 “별”인 줄 알고 찾아 해메였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는다. 1억 쯤 모아서 미국 유학 갈려던 “별”을 찾아서 GRE, TOFEL도 공부했다. 1억쯤 모아갈 때는 유학이라는 “별” 대신에 월급이 안겨주는 안락함이 “별”이라고 믿어버렸다. 그래도 안락함이라는 “별”을 보며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서 “별”같은 아들 딸을 키우고 살아간다.


 그 “별”들이 내게는 이어서 별자리가 되었다. 혼자 빛나는 금성, 목성, 북극성도 있다. 그런데 그 별들도 이어지면 오리온자리가 되고, 북두칠성, 오리온자리, 사자자리가 된다. 그렇게 내 “별”들은 스티브 잡스가 말한 “connecting dots”가 된다. 회사 생활 3~4년만 하고 유학 갈려고 준비했던 토플 때문에 그 당시 토익 960점을 맞았다. 운 좋게 획득한 토익 점수 때문에, 난 벨기에 브뤼셀에서 1년 반 동안 해외 주재원 생활을 하게 되었다.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똑똑한 놈, 정말 머리 좋은 놈, 편견 없이 동성애자 동료와도 근무해 보았다. 그 덕분에 책으로만 배운 서양 유럽을 잠깐 경험하고 왔다.


 “별”을 찾아 헤매다 보면, 그 “별”들이 별자리가 되기도 한다. “별”을 보고 걸으면, 삐뚤삐뚤해 보여도 얼추 방향을 맞춰간다. 나른한 주말 오후에 난 “별”을 보고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빨간 금붕어 어항”에 있다고 느꼈다. 40대 중반이 되고 보니, “별”은 20-30대 청춘들만의 전유물인 줄 알았다. 이제 “빨간 금붕어 어항”에서 뛰쳐나와야 한다. 허황된 “별”이라도 쫓기로 결심해본다.


 그 후배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도 별을 찾아 헤매다가 빨간 금붕어 어항에서 막 탈출하려고 합니다. 당신은 어떤 별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까? 그 별은 단 하나의 별로 그치지 않고 먼 훗날에 별자리가 될 것입니다. 혹시 당신이 실망하고 주저앉아 있다면 빨간 금붕어 어항에서 나오길 바랍니다. 너무 오래 있지 마시고 다시 별을 찾아 헤매길 빌어봅니다.”


 별을 사랑하고 진짜 별을 좋아했던 후배에게 건네줄 조언은 바로 이것입니다. 당신의 “별”은 무엇입니까? 그 “별”을 찾아 헤매다 보면 자신만의 “별자리”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설령 빨간 금붕어 어항에 갇혀 있더라도 너무 오래 머무르지 마시고 곧 “별”을 찾아 여행을 떠나세요.


나에게도 이 조언을 다시 하고, 나도 일요일 오후 느긋한 낮잠에 깨어 다시 “별”을 찾아 헤매어 보기로 한다. 나도 빨간 금붕어 어항에서 인생을 끝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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