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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Jun 24. 2020

장작과 잔가지

당신 인생의 장작과 잔가지는 무엇입니까?

 인간은 합리적이라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프랑스 대혁명, 미국 독립운동을 거치면서 탄생한 개인을 기반으로 둔 합리주의가 근현대 사상의 근간이 되었다. 하지만 한 개인의 선택이나 공동체의 선택이 과연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코로나19 때문에 최근에 가족들, 지인들과 함께 열심히 캠핑을 하고 있다. 열심히 벌거나, 은행에서 빌려서 수억에서 수십억 원의 아파트에서 살면서 주말이면 지리산, 강원도, 바닷가로 사람들이 텐트, 타프 치고 논다. 짐승, 벌레들의 위협에서 벗어나, 따뜻한 지붕과 이불 아래에서 살던 현대적 인간은 새소리, 풀벌레 소리를 듣고자, 텐트와 침낭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어느덧 캠핑이라는 개미지옥에 빠져서 이것저것 하나 사고야 만다. 결국 캠핑도 인간의 원초적 욕구를 이루기 위해 수많은 기업들이 신제품을 만들고, 수많은 유튜버가 이를 홍보하고, 나 같은 캠핑 초보는 혹해서 사고야 만다.


 물건이 더 많아야 행복할 것 같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에 올려야 행복할 것 같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니 그런 거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캠핑의 하이라이트는 화로대에 장작 2~3개 올려놓고, 아무 생각 없이 불을 붙이고, 살리는 일이다. 그리고 아내가 캠핑 쇠꼬챙이에 소시지를 끼우면 아이들이 소시지를 노란 불꽃에 구워서 먹는 장면이다. 사실 그 맛에 캠핑 간다고 볼 수 있다. 참나무 장작은 10킬로에 대략 1만 원 정도 한다. 그런데 장작을 놓고 토치로 불을 붙이면 쉽사리 불이 붙진 않는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주변에 있는 잔가지다. 새끼 손가락 굵기에서 엄지 손가락 굵기까지가 적당하다. 장작을 2~3개 놓고, 잔가지를 밑바닥에 놓아두고 토치로 불을 붙이면 금세 불이 옮겨 붙어서 성공할 수 있다. 종이는 불이 확 붙긴 하지만 나중에 재를 처리하는 게 골치 아파서 추천하진 않는다.


 불멍(불을 보면서 멍 때리기)을 준비하면서 잡생각이 떠올랐다. 내 인생의 장작과 잔가지는 무엇일까? 장작은 아주 오래 타고, 화력도 좋다. 내 인생의 장작은 회사에서 승진, 종잣돈 모으기(10억),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표준 체중 유지하기, 살 빼기 등과 같은 인생의 큰 목표가 될 수도 있다. 자본주의 세상에 살다 보니, 인생의 목표라는 것도 결국 자본주의에서 말하는 무한 성장이라서 씁쓸하긴 하다. 그래도 세대별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 10대는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공부일 수 도 있고, 요리가 될 수 도 있다.)은 자신의 꿈이라는 방향성을 설정하고, 그 꿈을 위해서 노력을 해야만 한다. 이 세상 어떤 성취나 성장이 공짜로 이루어지는 건 거의 없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인생의 장작(목표)을 하나둘씩 모아서 불을 피운다. 하나의 장작이 다 타고나면, 또 다른 장작을 넣어서 계속 불을 꺼트리지 않고 불을 이어가야 한다.


 하지만 장작만으로 불을 피우면, 쉽사리 불이 잘 붙지 않는다. 그래서 인생에는 잔가지가 필요하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소확행)인 셈이다. 아침에 출근해서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내리고, 커피 향을 음미하며 하루를 시작하기도 한다. 지옥 같은 2호선을 타면서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는 것도 인생의 잔가지일 수 있다. 화력이 좋은 장작을 태우기 위해서는 작은 잔가지가 필요한 법이다. 당신에게 잔가지는 무엇인가? 나는 회사 출근해서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게 잔가지다. 또, 가끔씩 직급과 나이와 상관없이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커피나 술 한잔 기울이는 것도 잔가지다. 초5 아들, 초3 딸을 데리고 자전거 타고 집에서 20~30킬로 돌아다니는 게 잔가지다.


 그 잔가지를 모아서 태워야 내 장작이 더 오래 길게 탈 수 있다. 장작만 있는 인생은 삭막하고, 잔가지만 있는 인생은 공허하다. 과연 난 장작과 잔가지를 적당히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젊은 시절 장작을 다 태워버리고, 열심히 잔가지만 주워서 일상의 소소한 행복에만 취해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도 해본다. 또 내 꿈을 위한다고 다른 소소한 행복을 포기한 채, 자기 계발에만 열중하며 사는 건 아닌지 반성해본다. 인생의 장작과 잔가지들이 내 인생의 불을 이루고, 그 불을 꺼뜨리지 않고 계속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오늘도 난 열심히 내 일상의 주변에서 잔가지를 줍니다. 또한 내 인생의 목표들인 장작도 하나씩 마련해둔다. 너무 한꺼번에 태우지 않고, 너무 늦지 않게 새로운 장작을 넣어본다.


 당신 인생의 장작과 잔가지는 무엇입니까?


P.S 불멍 때리다가, 이런 잡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잡생각 조차 제 인생의 잔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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