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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Sep 02. 2020

선배의 자격, 먼저 산에 오른 하산객

자기계발과 자기성찰, 그 어딘가에

 최근에 내가 아는 후배 2명이 회사를 관두게 되었다. 서로 다른 회사를 다니는 직장이고, 다른 2명의 회사를 내가 다녀본 게 아니라서 회사의 조직문화가 어떠한지, 함께 일하는 임직원이 어떠한지 모르기 때문에 내가 아는 경험 한도 내에서 하나마나한 오늘의 운세 같은 얘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처한 환경, 그들이 느꼈을 감정이 배경과 역할만 다를 뿐이고 나 역시 겪어보았던 경험이기도 했다. 이 세상에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학 선배로서, 인생 선배로서 나 스스로 어떤 말과 조언을 할 수 있을까?


 문득 멘토, 선배라는 역할을 내게 맡기지도 않았건만 나 스스로 어색한 페르소나를 쓰고 얘기한 게 아닐까?라는 물음표를 가슴속에 두고 말았다. 그러다가 선배는 후배보다 먼저 산에 오른 하산객이란 생각이 들었다. 산에 오르면, 도대체 어디쯤 쉬는 곳이 나오는지, 얼마나 더 가야 산 정상에 오르는지 궁금해진다. 거칠어지는 숨소리, 등에 잔뜩 베인 땀,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고 있을 때, 먼저 산에 오른 하산객에게 물어본다. “산 정상까지 얼마나 걸립니까?”라고 말이다.


 선배는 먼저 산에 오른 하산객과 같다. 선배는 산에 먼저 올랐을 뿐, 후배보다 체력이나 능력이 뛰어나지 않다. 그렇다고 먼저 산에 오른 하산객이 인격이 출중하지도 않다. 하지만 산에 먼저 올랐다는 이유로 우리는 후배들에게 배 놔라 감 놔라, 라떼는 말이야... 이런 잔소리를 해댄다. 산을 먼저 오른 것뿐인데, 산에 오르고 있는 사람에게 체력이 어떻니, 이렇게 늦게 산에 오르면 정상에는 언제 갈려고 그러냐, 내가 산 정상에 올라가 봤는데 풍경이 별로라느니.. 이상한 소리를 해댄다.


먼저 산에 오른 하산객은 그저 이런 말이면 충분하다. “30분이면 곧 정상입니다.”, “힘내시고, 10분만 오르시면 너른 공간이 있는 쉴 곳이 있습니다.”라고 말이다. 회사를 관둔 후배 2명에게 이런 말을 해줬다. 사실 요즘 내가 고민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했다. 우리는 늘 “자기계발”의 압박을 받고 산다. 자기를 계발하지 않으면 뒤쳐지기도 하고, 몸값을 높이기 위해서 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자격증, 어학, 운동 등등 수없이 자기계발을 해왔다. 어떤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역량이 필요하다. 우리는 자기계발을 통해서 실력을 키우고, 실력을 바탕으로 일을 해서 돈을 벌기도 한다.


 자기성찰은 자기계발과 상당히 다르다. 자기계발은 나라는 존재의 외향을 강화하는 일이라면, 자기성찰은 나라는 존재의 내면을 되돌아보는 일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 보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시중에는 수없이 많은 자기계발서적이 있지만, 나를 돌아보는 자기성찰의 책은 그리 많지 않다. 자기계발은 내 스펙을 만드는 일이라면, 자기성찰은 내 인격을 만나는 일이다. 나이가 들면서, 자기계발보다는 자기성찰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사실 젊은 시절처럼 치열하게 자기계발할 만한 체력과 지력이 따라주지 않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내 인격이 내 능력을 뒤받침 하지 못하면, 부엌칼로 강도짓을 하는 것이랑 마찬가지다. 내 영향력이 나뿐만 아니라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래서 나 스스로 점점 자기성찰을 하게끔 만든다. 사실 말만 이렇게 번지르게 할 뿐이지 나도 여전히 약하고 흔들리고 뒤뚱거린다. 최근 2명의 후배를 만났다. 그저 그들보다 좀 더 일찍 일어나서 산에 도착해서 산을 오르다가, 하산하는 길에 2명을 만났다. 선배의 자격은 그저 먼저 산에 오른 하산객일 뿐이다. 나도 자기계발과 자기성찰, 그 어딘가에서 방황하고 있다. 나도 몇 번이고 쉬었다가 오른 등산길을 그들에게 쉼 없이 오르라고 강요할 수 없다. 그저 그들이 물어보는 질문에 답할 뿐이다. “이제 곧 정상입니다. 힘내시고, 좀 쉬었다 가시죠.” 하며 등산가방에서 “자유시간” 초코바를 하나 건네어본다.


 그들도 산에 오르고 내려오다 어느 산채비빔밥 집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때 자연스레 합석해서 막걸리 한잔 따라주고 싶다. 마음속으로 다시 생각해본다. “우린 각자의 산을 오르는 등산객이다. 함께 오가는 길에 만났으니, 막걸리 한잔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렇게 나는 오늘도 나만의 산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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