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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Mar 22. 2021

나는 대수롭게 살고 싶지 않은 초월수입니다.

당신은 n차 방정식의 대수적 해가 아니라, 정의해야 하는 초월수입니다.

땅따먹기 놀이는 3번 돌을 튕겨야 하는데, 첫 번째 시도에 수직방향으로 최대한 튕겼다면 두 번째 시도에서는 최대한 많은 면적을 얻기 위해서 돌을 튕겨야 한다. 만약 직각보다 큰 둔각(90도 이상)으로 돌을 튕기면 큰 면적을 얻을 수 있겠지만, 3번째에 다시 돌아올 확률은 떨어진다. 직각보다 작은 예각(90도 이하)로 돌을 튕기면 안전하게 작은 면적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즉 보상과 성공 가능성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게 된다. 난 그 때나 지금이나 직각으로 돌을 튕긴다. 그러면 적당한 면적과 적당한 성공확률을 보장받을 수 있다.


 제목 : 나는 대수롭게 살고 싶지 않은 초월수입니다.


 1999년 군 전역을 하고, 2000년에 학교에 복학을 했다. 신입생을 O2 학번이라고 부르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산소 같은 O2 학번도 40살이 넘었다. 공업수학이라는 과목을 들었는데, 오일러 공식을 유도하는 걸 배웠다. e^ix = cos x + i sin x라는 엄청나게 유명한 공식이다. 이때 cos x를 n차 식으로 표현한다. cos x = a0 + a1 x ^1 + a2 x ^2 + .... + an x ^n로 구할 수 있다. 그리고 이걸 한 번씩 미분하면 된다. i  sin x = b0 + b1 x ^1 + b2 x^2 +... + bn x^n로 정의하고 또 한 번씩 미분한다. 그러면 e^ix = cos x + i sin x라는 식이 증명된다.


 아직도 오일러 공식을 A4 몇 페이지에 걸쳐서 증명하면서 느꼈던 지적 쾌감을 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세상을 바꾼 증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본의 유명한 소설이자 영화 중에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 있는데, 공대 전공이라면 꼭 봤으면 좋겠다. 거기에 e^i*pi + 1  = 0이라는 가장 유명한 수식이 나온다. 이 얘기는 3편에서 본격적으로 해보도록 하자. 암튼, 여기서 중요한 발상은 cos x를 n차 식으로 표현하는 데 있다. 이 발상은 공업수학에서 푸리에 급수까지 이어지고, 거기에는 또 깁스 현상도 나오고, 오버슈팅 이야기도 나온다. 공업수학을 배우던 그 시절에는 이 식을 유도하고 이해하는 게 얼마나 설레는 일이었는지 모른다. 수학을 푸는 게 아니라, 천재적인 발상을 이해하고 천재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라는 한 개인은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또한 수많은 생각과 결정의 총합이기도 하다. 나는 1976년 12월 29일 밤 10시에 태어난 이래로, 지금까지 내가 내린 선택의 적분 값이다. 또한 내가 1초 후에 내릴 결정은 지금까지 내가 선택하고 생각한 가치관을 미분해서 얻을 수 있다. 그러면 나라는 인간은 아래와 같이 정의할 수 있다. 정윤식 =  a0 + a1 x ^1 + a2 x ^3 +....+ an x^n로 정의할 수 있고, n을 무한대로 이어나가면 나라는 인간을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n차 방정식을 풀면 n차의 대수적 해를 구할 수 있다. 만약에 나라는 인간을 n차 방정식의 대수적 해를 구한다면 아래와 같지 않을까?

 

 정윤식 = (x - 남자)(x - 한국인)(x - 경상도 출신)....... 그렇게 대수적 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를 표현하는 해는 이렇게 대수적으로 나타낸다. 그리고 나와 같은 해를 가진 사람끼리 동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는 나와 한국인이라는 해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미친 듯이 응원도 했다. 그리고 1997년 3월 18일에는 대한민국 남자라는 두 가지 해(Solution)이라는 이유로 의정부 306 보충대에 가야 했다. 왜냐하면 나라는 인간을 n차 식으로 정의했기 때문에 나를 나타내고 나를 해석할 수 있는 길은 대수적 이해일 수밖에 없다.


 나를 n차 식으로 정의를 내려서 나를 대수적으로 이해하거나 표현하는 것도 좋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게 살고 싶지 않은 초월수가 되고 싶다. 대표적인 초월수인 e는 n차 식의 대수적 해가 아니라 정의를 내려야 하는 수이다. 좀 복잡하긴 하지만 e = (1 + 1/x) ^x (x -> 무한대)로 정의할 수 있다. 초월수 e는 다른 관계로 나타내는 수가 아니라, 그 자체로 정의해야 하는 수인 셈이다. 나는 지금까지 관계 속에서 이해할 수 있고 풀 수 있었다. 남자, 한국인, 경상도, 큰아들, 직장인, 두 아이의 아빠.. 등과 같은 수많은 해가 존재한다. 하지만 나는 때로는 초월수이고 싶다. 내 삶을 내가 정의하고, 어떤 해로도 표현할 수 없는 초월수처럼 말이다.


 우리는 너무나도 나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n차식의 대수적인 삶을 살아왔다. 때로는 초월수처럼... 내 삶을 정의하며 살고 싶다. 물론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견해도 존중해 나가지만, 남이 정해준 방식대로만 살고 싶지 않다. 내 삶을 내가 정의하고, 내 삶을 내가 주도해나가는 초월수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처럼 “나는 대수롭지 않게 살고 싶지 않은 초월수입니다.”라는 명제를 실천하고 싶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은 “n차 방정식의 대수적 해가 아니라, 정의해야 하는 초월수입니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오늘만은 나는 당신을 추월하지 않고, 당신도 나를 추월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우리가 수라고 부르는 실수+허수의 집합 중에서 대수적 수보다 초월수가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이 세상에는 대수적 수가 많아 보여도 실상은 수많은 “나”라는 초월수가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때론 대수적 수처럼 살고, 때론 초월수처럼 살아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파이와 e는 각각 초월수이지만, 파이 + e가 초월 수라는 건 증명되지 않았다. 내가 파이이고, 당신이 e라고 한다면, 나와 당신의 합은 초월수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 재미있지 아니한가? 아니면 나만 재미있는가? 재미있던 재미없던 난 “초월수”라고 생각하고 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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