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윤식 Jul 13. 2021

당신의 토큰은 어디에 있나요? (3편)

협주, 아우디 그리고 토큰

 2004년 2월 9일 11시, 본사 1층 버스정류장에서 순환버스가 출발하여 환경에너지센터 건물 앞에 두 사람을 내려준다. 박OO(70년생), 정윤식(76년생) 2명은 각각 대기팀, 에너지팀으로 부서 배치를 받아 2층 사무실로 올라간다. 시간이 한참 흘러, OO형은 저 멀리 쿠웨이트에서 광야의 모래를 휘날리며 살고 있고, 정윤식은 예전에 신입사원으로 배속받아 인수인계된 팀리더로 2021년 7월 1일부터 일하게 된다. 인생은 정말 돌고 돈다더니, 예전 학창시설 버스를 탈 때 냈던 토큰을 떠올려본다.

토큰은 위 그림처럼 둥글게 생기고, 구멍이 뚫려있는 형태(도넛)로 만들 수도 있고, 그냥 동전처럼 만들 수도 있다. 토큰은 그 특성상 내가 낸 토큰이 회수되어 다시 누군가 손에 들려서 자꾸 순환하는 데 있다.


첫번째 토큰, 당신은 씨앗을 뿌리는 사람인가?


 예전에 박찬호가 박세리 은퇴식에 했던 유명한 축사가 있다. 나처럼 투머치 토커인 박찬호는 박세리에게 “너와 나는 나무다. 우리는 열매였던 적이 없었다. 나무가 크게 자라서 후배들이 열매를 맺었다. 우린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무일 수밖에 없었다.. 중략..” 이런 내용이다. 나도 박찬호의 말에 크게 동감하는 바이다. 하지만 나도 처음부터 나무이지는 않았다. 어린 씨앗인 시절도 있었다. 좌충우돌 신입사원 시절에는 윽박지르는 팀장 밑에서 일하기도 하고, 휴가 결재를 휴가 당일 아침에 해주는 등.. 어딜 가도 여기보다 낫겠지.. 하며 다른 회사 면접도 본 적이 있다.


 그렇게 그 씨앗이 자라서 떡잎도 생기고 줄기가 굵어져서 쪼그만 강낭콩 열매도 맺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씨앗에서 어느 정도 나무가 되었다. 이제는 옆 나무와 이어져 숲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 중에 있다. 나랑 같이 일한 동료들에게 여러 번 얘기했는데, “우리는 어렵더라도 여전히 씨앗을 뿌려야 한다. 내가 그 씨앗의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씨앗을 뿌려야 언젠가 누군가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래서 난 여러분들이 잘되어 가는 길을 절대 방해하지 않겠다. 아무도 없이 나 혼자 일하더라도 여러분이 가는 길을 열어줄 것이고, 절대 막지 않겠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는 걸 깨닫는 걸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금운 우리 모두가 권OO 후배님처럼 씨앗일 수도 있고, 김OO 후배처럼 이제 나무가 되려는 시기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씨앗이던, 줄기이던, 나무이던, 열매이던..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입사 2년 차는 입사 1년에게 나무가 될 수 있고, 여전히 후배들에게 씨앗을 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열매를 따먹지 않더라도,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되자. 씨앗이 줄기로, 줄기에서 나무로, 나무에서 열매로, 열매에서 씨앗으로 다시 돌고 돈다. 첫 번째 토큰, 당신은 씨앗을 뿌리는 사람인가?


두 번째 토큰, 당신의 pH는 어떠한가?


 환경에너지는 내가 입사할 때만 해도 같은 몸체였다. 그렇게 한 몸이었는데, 환경에너지는 에너지와 환경으로 나누어지고, 에너지는 에너지와 발전으로 또다시 나뉘었다. 애초에는 한 몸이었는데 시대에 맞게 전문화되어 분화하였다. 이제는 두 번째 토큰 이야기이다. 수질기준을 맞추려면 pH가 6.5~8.5 정도로 중화해야 한다. 처리해야 할 물이 산성이면 알칼리를 섞어야 하고, 처리해야 할 물이 알칼리이면 산성으로 섞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하는 줄 아닌가? 어떤 문제가 생기면 반대편 또는 다른 힘을 빌려야 하는데 그렇게 안 한다. 예를 들어 환경이 산성이라고 하고, 에너지를 알칼리라고 생각해보자. 근데 산성 물이 들어오면, 어떻게든 중화시켜야 하는데 환경은 알칼리인 에너지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 바로 옆에 알칼리인 에너지가 있는데도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 줄 아는가? 2.0의 산성이 들어오면, 약산인 초산과 탄산을 엄청 쏟아붓는다. 강산을 약산으로 물 타기 한다. 그래서 겨우 5.5~6.5로 맞춰놓고 중화했다고 생각한다.


 이게 환경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에너지도 알칼리 물이 들어오면 산성을 이용하면 금방 중화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약알칼리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발버둥 친다. 그래서 그나마 없던 인력 Pool 때문에 사람도 못 키우고 다들 도망가고 나서야 “사람이 없다.”는 핑계를 한다. 결국 인력 Pool을 산과 알칼리처럼 폭넓게 써야 하는데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산성 Pool, 알칼리 Pool만 쓰다 보니 강산을 덜 쓰냐, 약산을 많이 쓰냐.. 이런 문제에 봉착하고 만다.


 두 번째 토큰은 pH 이야기였다. 내가 만약 알칼리라면 내가 다하지 않고 산성을 이용하면 된다. 우리는 원래 한 몸이었고, 각자가 분화해서 토큰처럼 회사에서 돌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내 편(산성, 알칼리)을 정의하지 않고 문제 해결(중화)을 바라본다면 당신의 pH가 어떠하던지 간에 상대방의 ph와 중화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 토큰, 우리는 파이이다.


 처음에 말한 대로, 토큰은 돌고 돈다는 특성 때문에 동그랗게 만든다. 동글하다는 특성을 수학적으로 말하면 파이(pi)로 정의할 수 있다. 3.14로 시작되는 초월수이자 무리수이다. 큰 원이던, 작은 원이던, 지름과 원둘레의 비율은 정확히 D와 파이이다. 지름이 1이면, 원둘레는 3.14.. 파이이다.  우리는 여성이던, 남성이던, 20대이던, 40대이던, 사원이던, 팀장이던.. 모두 파이다. 각자가 자신의 인격체를 가진 소중한 존재이다. 팀장이 팀원에게 인격적으로 함부로 할 수 없고, 팀원이라도 팀장에게 무조건 복종해서도 안된다. 시대가 어떠하던, 우리는 모두 인격체라는 동일한 파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엄청나게 큰 원도, 티끌만큼 작은 원도 원둘레는 항상 파이이다. 큰 원이라고 크게 쓰이고, 작은 원이라고 작게 쓰이는 게 아니다.


 돌고 도는 인생과 같은 토큰과 같은 인생이다. 우리는 각자 살아온 시대와 배경이 다를 뿐, 한 배를 타고 항해하는 동료이다. 그러니 제발, 내 지름이 크고, 니 지름은 작다고 재지 말자. 큰 지름이던 작은 지름이던 원주율은 파이이니깐 동일함을 인정하고 함께 나아가자. 이제 긴 글을 마치야겠다. 협주, 아우디 그리고 토큰.. 이 3가지 키워드로 이번 주는 매우 행복했다. 돌고 도는 토큰처럼 우리는 언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 지 모른다. 언젠가 큰 바다가 되어 바다에서 만나면 동해를 걸쳐, 태평양으로, 태평양을 걸쳐 대서양까지 향해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아우디, 기술을 통한 진보 (2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