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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Jul 22. 2021

한 우정의 역사(with 박영) 1편

0을 찾아 나선 인도 여행

 잘 지내고 계신가요? 주말에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쭉 살펴보다가 “한 우정의 역사(발터 벤야민을 추억하며)”라는 책이 눈에 쏙 들어왔습니다. 2012년 7월에 제가 감사실로 부서를 옮긴 후에 첫 해외감사인 인도 출장부터 시작된 인연이 끝이 이어져 왔으니, 우리의 우정도  겹줄, 날줄을 엮어가며 어느덧 10년을 향해 가고 있네요. 그 우정의 역사를 기록하는 건, 발터 벤야민이 줄곧 얘기한 역사철학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제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동료에게 앞으로 3편의 글을 헌사합니다. 이제 떠나봅시다. 한 우정의 역사(with 박영) 1편입니다.


제목 : 0을 찾아 나선 인도 여행 (1편)


 박영(0)과의 첫 우정의 시작은 인도였다. 참으로 우연이다, 아니 운명이다. 인간이 숫자의 개념을 인지하고, 숫자를 만들 무렵 유럽/중국 문명에서는 아직 0이라는 숫자를 생각하지 못했다. 인도에서 공허, 무념, 무상을 추구하는 힌두교, 불교 등 종교적 영향 아래에 0이라는 숫자가 처음으로 발현되었다. 그래서 숫자 0은 아라비아 반도를 거쳐서 유럽으로 전파되고, 그 후에 르네상스, 산업혁명을 걸쳐 전 인류에 알려지게 되었다.


 사실 박영(0)과는 같은 팀 소속도 아니었고 별동부대로 결성된 인도법인 출장부터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인천 ~ 뭄바이를 거쳐서 잠깐의 짬을 이용해서 마하라슈트라 주에 있는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기로 했다. 불교는 인도에서 발상하였으나 정작 힌두교, 이슬람교에 밀려 정작 인도에서는 깊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중국, 한국, 인도 및 동남아시아에 걸쳐서 크게 전파되었다. 세계적인 불교 유적지 가운데 하나인 아잔타 석굴은 막상 현지 인도인에게는 딱히 인기가 없었고 우리 같은 동아시아 외국인에게는 유명한 관광지 중에 하나인 듯 보였다.

 

 8~9시간 비행시간과 거기에 육박하는 육로 이동을 통해서 거의 만 하루 만에 아잔타 석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도 어느 구석에 감추인 수많은 석상을 보며 역사 교과서에서 봤던 한 단어가 떠올랐다. “간다라 양식”이었다. 그곳에는 경주 토함산 기슭에 감춰진 석굴암 석불이 수없이 많았다. 알렉산더 대왕이 가져온 헬레니즘 양식이 인도를 거쳐서 경주 토함산에까지 이르렀다. 지금은 북마케도니아로 이름을 바꾼 마케도니아 필리포스 2세의 아들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였던 알렉산더 대왕이 마케도니아 - 그리스 - 중동 - 페르시아를 걸쳐 인도 인더스 문명, 중국을 가로지르는 실크로드를 통해서 마침내 경주 신라에까지 이르러 석굴암 석불의 콧잔등에 앉았다.


 난 시간의 연속성과 연결 앞에서 넋을 잃고 말았다. 20시간 넘게 비행기, 미니밴을 타고 온 여행의 피곤함 앞에서 역사의 한 장면을 목도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와 박영(0)은 인도에서 역사를 함께 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재미있는 인연이다. 영(0)의 기원이었던 인도에서 박영(0)과의 첫 인연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회사에서 가장 잘 나가고 힘 있는 감사부서에서 일하면서도 정작 회사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비주류였다. 박영(0)은 회계사 출신 경력직 사원으로 첫 발을 감사실에서 근무했지만 경력직 비주류였고, 나는 공채 출신 신입사원으로 입사를 했지만 철강회사에 금속이 아닌 에너지부서에 일한 비주류였다.


 우리는 회사에서 가장 주류 중에 하나인 감사실에 근무하면서도, 인도에서 발상했음에도 인도에서 비주류로 인식되고 있는 아잔타 석굴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곳에서 내가 본 아잔타 석굴은 주류/비주류의 구분이 아닌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대왕이 보여주고 있는 “거대한 문화의 힘”이었다. 그 힘은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의 어느 석굴에도 존재를 남기고, 대한민국 구석구석 간다라 양식을 전해주고 동해에 찬란한 해가 떠오르는 토함산 기슭 석굴암까지 이르렀다. 마치 영겁의 시간을 지나 알렉산더 - 아리스토텔레스가 내게 고대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얘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우리는 30~40년 아무 인연 없이 살아오다가 공허/무념/무상으로 개념화된 영(0)의 기원인 인도에서 서로를 알게 되었다. 또한 주류에 속해 있지만 비주류로 분류되는 삶을 살고 있다. 역사의 긴 연속성으로 보면 주류, 비주류는 기억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간다라 양식”이 남아 있을 뿐이다. 우리는 결국 연결되어(Connected) 있다. 영(0)은 양수와 음수를 이어주는 연결자이다. 아무것도 아닌 비주류 영(0)은 음수와 양수를 연결하는 역사적 기점이 된 것이다.


 이제 글을 맺어야겠다. 이제는 같은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연결자가 되어본다. 우리는 큰 수가 되기보다는 이곳과 저곳을 연결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또 시간이 지나 세월을 되돌아볼 때 우리는 함께 영(0)을 추억하며, 인도의 아잔타 석굴이 우리에게 알려준 인생의 비밀을 함께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에게 역사란 그저 책 속에 보아왔던 텍스트가 아니라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우리가 써 내려가야 할 일상이다. 한 우정의 역사(with 박영)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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