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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Jul 23. 2021

한 우정의 역사(with 박영) 2편

영(Spirit)과 함께한 바라나시

 인도 마하라슈트라에서 1주일을 보내고 난 후에 주말을 이용해서 인도 북동부에 있는 바라나시를 여행하였다. 다들 말로만 듣던 인도인들의 성스러운 도시인 바라나시에 대한 기대로 들떴다. 바라나시 공항에 도착하자 우리를 반겨준 건, 인도의 성스러운 구루가 아니라 여행 캐리어를 강제로 빼앗아 택시 승강장으로 향하던 시끄러운 호객꾼이었다. 우리는 공항에서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택시 중개업체에 가서 우리가 묵을 호텔을 얘기하고, 악명 높은 택시비를 협상했다. 별도 추가 요금이나 팁이 없을 거란 공허한 확답을 받고, 선불로 중개업체에게 택시비를 지불했다. 중개업체의 직원은 택시기사에게 약속된 택시비를 건네주고 “월컴 투 바라나시”를 외치며, 여행 캐리어를 트렁크에 싣었다.


 호텔에 도착하자, 운전하는 내내 말을 걸어온 택시기사는 부지런히 트렁크에서 캐리어를 꺼냈다. 그리고 방금 전, 3자(중개업체, 택시기사, 나)간에 몇 번이고 약속한 추가 요금이 없다는 확답은 여름철 대구 아스팔트 도로에 뿌려놓은 물기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당당하게 추가 요금을 요구했고, 루피(인도 화폐)를 꺼내자, 인질로 잡혀있던 여행용 캐리어를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하긴, 순진하게 3자간의 약속을 믿은 내가 잘못이지, 그들을 탓할 일이 아니다.


 바라나시에 오면 인도의 성지라는 영적인 기운을 받아서,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기회가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약속의 공허함만 깨달았다. 짐을 풀고 나서, 호텔 로비에 있는 여행 중개업체에 가서 갠지스강 보트 투어를 예약했다. 여행사 직원은 자신의 보트 투어 프로그램이 얼마나 좋은지 한참을 설명했다. 내가 “No Extra Charge?”라고 몇 번이고 물어봐도 “Of Course!”로 확신에 차지만 공허한 확답을 했다. 마치 선거 전 정치인의 공략처럼 들렸다. 건성건성으로 프로그램을 들은 후, 추가 요금이 없는 조건(?)으로 계산을 마쳤다. 간단히 호텔 근처 식당에서 전통 인도음식인 카레, 탄두리, 난을 먹으면서 인도 맥주인 킹피셔로 그날의 여독과 사기당했다는 기분을 풀었다.


 드디어, 말로만 듣던 갠지스 강에 보트를 타고 한 바퀴 유랑하는 여행객이 되는구나 싶었다. 갠지스 강 근처 어느 선착장에 도착했다. 인도는 어딜 가나 크리스마스이브날 강남역 지하철 출구 인양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리고 낯선 동양인 4명을 쳐다본다. 우리는 경계의 눈빛으로 인도인 가이드를 졸졸 따라다니는 햇빛반 한국인 유치원생처럼 총총걸음으로 수많은 시선을 외면했다.


 갠지스 강에서 보트를 타고, 갠지스 강을 거슬러 갔다. 어둑한 어둠이 갠지스 강에 내려앉고, 도시의 불빛이 찰랑이는 강물 위를 부유하고 있었다. 계속된 업무와 여독으로 잠시 나근해지는 찰나에, 보트는 어느 화장터에 이르렀다. 죽은 사람의 시신을 메고, 사람들이 화장터에 도착하더니 나무틀로 짠 형태의 격자에 말 그대로 불을 붙였다. 그야말로 말로만 듣던, 갠지스 강 화장터의 생생한 장면을 바로 20~30m 앞에서 두 눈으로 보았다. 백안의 서양인과 말쑥한 동양인들은 갠지스 강 보트에서 다들 입을 벌리고 그 광경을 쳐다보았다.


 화염은 거세어지고 시신을 잡아 삼켰다. 그냥 나뭇가지로 태운 화염은 온전히 시신을 태우지 못했다. 우리가 늘 보던 대한민국의 화장터는 강력한 도시가스로 화장인 반면, 인도 갠지스 화장터는 나뭇가지로만 태운 화염이라 화력(?)이 시원치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이 가까워서야 시신의 형체는 사라졌지만, 화염이 닿지 않은 발가락은 그 온전한 형태를 그대로 드러냈다.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신이 타는 냄새와 타다남은 시신의 발가락을 보며, 오싹함을 느끼며 삶과 죽음을 말 그대로 오감(시각, 냄새, 청각)으로 체험했다. 그리고 아직도 다 타지 않은 시신을 그대로 갠지스 강에 쏟아내었다.


 갠지스강은 다 타지 않은 육체의 조각들이 떠다니고 있었고, 그 속에서 성스러운 갠지스 강으로 목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기엔 위생, 청결이라는 문명화된 척도나 가치로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순환이 있었다. 보트에서 돌아오는 길에서 박영(Spirit)을 비롯하여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쉬이 오지 않는 잠을 청하며, 삶과 죽음이 과연 어떠한지 다시 생각해보았다.


 아직도 박영(Spirit)과는 인도에서의 충격적인 바라나시 추억을 얘기한다. 그날 저녁에 우리가 봤던 시신의 발가락은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는 삶과 죽음을 이중적으로 보며, 장례식장과 묘지는 산 사람에게는 엄숙하지만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기피 공간이다. 하지만 죽음이 있어서 삶이 유한하고, 유한한 인간의 삶이 매 순간 소중한 건 아닐까 싶다. 그때 박영(Spirit)과 함께한 바라나시 여행은 우리의 영혼(Spirit)을 다시 생각하는 스펙터클한 추억이다.


 인간은 말과 행동을 믿을 수 있다는 문명화된 약속도, 위생과 청결이라는 문명화된 척도도 인도 바라나시에서는 다를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 또는 문화에 대한 기대나 함께한 신뢰도 내 스스로가 쌓아 올린 우상이자 허상일 수도 있다. 비록 갠지스 강에서 버터플라이는 못했지만, (실제 이런 제목의 일본 영화가 있다. 그것도 재미있다.) 박영(Spirit)과 함께한 바라나시 여행은 잊지 못할 추억거리를 안겨주었고, 내 영(Spirit)이 다른 이의 영(Spirit)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또한 내 영(Spirit)은 어디에서 끝나서 죽음의 갠지스 강에 떠다닐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와 박영(Spirit)은 아직도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 지금도 갠지스 강을 부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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