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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Aug 31. 2021

대전환의 시대

역사의 변곡점 근처에서  

 대항해시대, 학창 시절에 엄청나게 좋아하던 코에이 게임이다. 삼국지나 신장(노부나가)의 야망과 같은 게임은 한정된 땅(중국, 일본)을 통일하는 게 목표라면 대항해시대는 전 세계 바다를 항해하며 주인공의 퀘스트를 달성하기 위해서 주로 무역이나 해적질을 한다. 전자는 상대방의 공존보다는 제로섬이자 중농주의적 사상이 기반이라면 후자는 상대방에게 의뢰(퀘스트)를 받아 달성하는 쌍방향이고, 중상주의적 사상을 이룬다. 삼국시대나 전국시대는 농사를 기반으로 부국양병을 이루어 군사를 이루어 상대방 나라와 전쟁하는 침략주의적 게임인 반면, 대항해시대는 상업(장사)을 기반으로 금와 은을 최대한 확보해서 상대방 국가와 장사를 하는 중상주의적 게임이다. (하지만 해적이 되어서, 침략주의적으로 게임을 할 수 도 있다.)


 요즘 들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제2의 대항해시대가 된 듯하다. 잘은 모르지만, 역사의 변곡점 근처에 서 있는 느낌이다. 코비드19(코로나19는 우리나라만 쓰는 표기라고 한다.)가 이런 현상을 불러왔다기보다는 코비드19이 그 시기를 앞당긴 듯하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하나씩 얘기해봐야겠다. 그리고 앞으로 제2의 대항해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존 전략을 마련해야겠다.


첫째, 화석연료와의 결별이 가까워지고 있다. 사우디의 왕족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석기시대는 돌이 부족해서 끝난 게 아니다.” 이제 화석연료의 시대가 점점 스위치를 끄고 있다. 증기기관, 내연기관을 거쳐 석탄과 석유가 현대문명을 이룩한 위대한 에너지가 되었다. 하지만 그 거대한 에너지원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지구에 엄청난 엔트로피를 남겨주었다. 땅 속, 바닷속에 묻혀있던 에너지는 연소과정을 통해서 대기에 엄청난 엔트로피를 남겼다. 그 결과가 기후변화라는 새로운 도전이자 위협이다. 점점 화석연료와의 결별은 가까워지고, 경제적으로 싼 화석연료는 점점 비싸지고 있다. 앞으로 탈화석연료 경제로의 이행이 국가, 기업, 가계에 가장 큰 도전이 될 것이다.


둘째, 인구의 감소가 심상치 않다. 나는 인구가 많아야 나라가 부강해진다는 그런 얘기를 신봉하지 않는다. 어차피 우리나라는 아무리 인구가 많아도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보다 인구가 많을 순 없다. 한반도 반쪽 땅에 적당한 인구수를 산정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현재의 인구구조에 적합한 경제, 사회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 주택, 세금, 대학, 직장 등이 연간 출생자수 70~90만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지금 출생자수는 30~40만 수준이다. 즉 인구의 반토막이 생겼다. 다시 세상이 살기 좋아지면 30~40만 출생자가 서서히 출산율을 올려서 40~50만까지 이를 테지만 인구절벽은 막을 수 없다. 대한민국 출생률은 인류가 출생률을 기록한 이래 가장 최저라는 게 학자의 공통된 의견이다. 지금 초고령화를 겪고 있는 일본도 역사상 최저 출생률은 1.26인 반면, 대한민국은 ‘20년 기준 0.84이고 ‘21년에는 더 낮아질 전망이다. 인구절벽을 걱정할 게 아니라, 인구절벽이 명백히 보이는 사회적 구조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셋째, 새로운 자본주의의 도래가 필요하다. 이 세상의 돈 버는 방식이 전혀 달라지고 있다. 마르크스가 말한 “자본론”은 모세의 십계처럼 오래된 독트린이 된 지 오래이다.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 되었다고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말하고 있지만, 이제는 그 돈이 달러인지? 비트코인인지? 헛갈리는 세상이 되었다. 그저 가진 자가 독식하는 Winner Takes All 이란 모노폴리 게임이 다시 도래했다. 20세기 초기 대공항시대처럼 21세기 2020~2030 어디쯤에 대공항시대가 다시 도래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토록 믿었던 민주주의 - 자본주의의 체제가 자본이 민주를 집어삼키기 시작하면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고 있다.


 짐 로저스가 “대전환의 시대”라는 책을 썼다. 나는 그 책을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름 모를 21세기 대한민국 40대 아재가 대전환시대를 느끼고 있다는 건 변화가 바로 코앞에 왔다는 걸 말해주는 듯하다. 역사의 변곡점 근처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고등학교 때 배운 변곡점에 대한 사실은 한번 미분해서는 변곡점을 알지 못하고, 2번 미분해서야 변곡점을 알 수 있다. 현재의 상태를 그저 예측하는 건 변화의 정도(기울기)만을 알 수 있고, 현시점의 변화의 정도를 한번 더 미분(2차)해야 변곡점인지 알 수 있다는 얘기이다. 과연 한 시대를 2번 미분한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나는 알듯 말듯한 수수께끼, 퍼즐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제 나는 대항해시대의 주인공이 되어서, 역사의 변곡점 근처인 리스본 항구에서 항해를 시작한다. 누구나 익숙한 지중해가 아니라, 대전환의 시대의 “대서양”으로 항해한다. 과연 나는 “화석연료의 종언”, “인구절벽”, “새로운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파도를 맞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물론 죽지는 않을 것 같다. 내가 항해일지를 계속 기록하는 건, 이 역사의 변곡점에서 상태의 변화라는 1차 미분이 아니라 변화의 정도를 한번 더 미분하는 2차 미분을 구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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