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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Oct 25. 2021

잠열의 시간

질문, 방향 그리고 상변화

제목 : 잠열의 시간 (질문, 방향 그리고 상변화)

 

지난 금요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팀 전문업체와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 도중에 중요한 영감을 얻었고, 주말 내내 나 스스로 40대 중반의 삶을 반추하며 질문을 던지는 시간을 가졌다. 인생을 살면서, 누군가로부터 영감을 주고받는 경우가 드물지도 않거니와, 그 영감을 통해서 내 삶에 적용하여 내적 성장 또는 성찰할 수 있는 잠열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어서 세 분에게 머리 숙여서 감사인사를 드린다

 

중고등학교 물리시간에 물을 0도에서 100도까지 끓이는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이때 현열(Sensible Heat)과 잠열(Latent Heat)에 대해서 배운다. 냄비를 가스불 또는 인덕션에 올려놓으면 물은 0도에서 100도까지 일정한 기울기로 상승하게 된다. 현열은 열(Heat)을 가하면 온도(Temperature)가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온도의 상승을 분별할 수 (Sensible) 있다. 이에 반해서 잠열(Latent Heat)은 열(Heat)을 가하면 온도는 더 이상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물이 일정한 압력 하에 놓여 있다면, 물은 그 열을 상변화(Phase Change, Phase Transition)하고, 그 열을 축적하게 된다.

 

나는 최근 내 삶에서 2~3년간 벌어진 일들을 복기해보면서, 내가 잘못된 질문을 던지고 있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20~30대 시절에는 내가 들이는 노력과 열(Heat, 에너지)는 즉각적인 반응으로 돌아온다. 운동을 하면, 즉각적으로 살이 빠지고 근육이 생겼다. 또한 공부를 하면, 즉각적으로 학점이 좋아지고 학업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40대 중반이 되자, 내가 투입한 노력과 에너지는 더 이상 즉각적이고 내가 분별할 수 있는(Sensible) 반응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내가 쓴 에너지와 열정은 마치 무가치하게 엔트로피가 높아지는 반응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나의 노력은 인정받지 못했으며, 나의 열은 그야말로 그 어떤 매체의 온도도 상승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40대 중반의 시간들은 현열의 시간이 아니라 잠열의 시간임을 인정하고 깨닫기에는 나는 너무 조급했고, 즉각적인 반응에 길들여져 있었다. 말하자면, 나는 40대의 삶을 살면서 20~30대의 삶을 꿈꾸었던 것이다. 현열의 시간을 지나면 언젠가 잠열의 시간을 만난다는 걸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가슴으로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겐 잠열의 시간이 세 가지 화두를 던져주었다.

 

첫째, 잠열의 시간은 "질문"이다. 현열의 시간은 투입한 열(Input : Heat) 결과물인 온도 상승 (Output : Temperature increase)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잠열의 시간은 투입한 열이 결과물로 즉각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1차적인 조치는 인풋을 늘려본다. 하지만 인풋을 증가해도 아웃풋은 꼼짝도 안 한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시스템에 대해서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그 질문의 시간은

인고의 시간이다. 나 또한 그 질문을 던졌다. 열심히 살아왔던 20~30대는 얼마나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하지만 40대 중반이 되니 더 이상 더 열심히 살아가는 인풋의 증가로는 가시적인 아웃풋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내가 주인이 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앞으로 어떻게 살 건인가.." 이런 질문들을 거울 앞에 마주하듯이 냉철하게 던졌다.

 

둘째, 잠열의 시간은 "방향"이다. 힘은 스칼라(크기)가 아닌 벡터의 성격을 가진다. 벡터는 스칼라(크기)와 방향 모두 중요한 요소이다. 내게 잠열의 시간은 힘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골프를 치면, 골프공은 가해진 힘에 따라서 비거리(스칼라)로 나아간다. 하지만 아무리 멀리 나아간 골프공은 방향이 맞지 않으면 오비, 해저드, 벙커에 빠지고 만다. 즉 삶은 스칼라보다 방향이 중요해지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내겐 지금까지 어제보다 더 노력하는 오늘과 내일이 중요했다. 하지만 어제보다 +1 늘어난 스칼라의 양은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해주지 않았다. 나는 18년 차 직장생활과 5년 차 팀장 생활을 하면서, 직장에만 너무 스칼라를 쏟았다. 그리고 남들보다 비거리 10m 너 나아가는 것에

온갖 용을 쓰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는 스칼라를 늘이는 노력보다는 방향을 맞추는 생각의 전환이 더더욱 필요했다.

 

셋째, 잠열의 기간은 "상변화"이다. 내게 질문과 방향으로 채워졌던 잠열의 시간의 최종 목적지는 상변화에 있다. 어제와 오늘의 나로는 내일의 나를 살아갈 수 없다. 그러려면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한 번데기 시간을 거쳐야 한다. 그러려면 내가 쏟은 노력과 에너지는

즉각적인 반응을 원하는 현열이 아니라 상을 변화시키는 에너지로 투입해야 한다. 그렇게 에너지를 축적하고 축적을 하면 현열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잠열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잠자던 용이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는 "잠룡등천"을 이룰 수 있다.

 

아직까지는 난 질문, 방향 그리고 상변화에 대한 해답을 얻지 못했다. 어쩌면 앞으로 계속해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해답이라 말하기보다는 "길"이라고 해야겠다. 하지만, 난 현열의 시간에서 잠열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가장 값진 깨달음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난 잠열의 시간을 거쳐서 상변화할 수 있기를 꿈꿔본다. 아니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이 말한 'We Choose to go to the Moon"이란 문장처럼 "I Choose to go to the Phase Change."가 될 터이다.

 

우리는 "미래에 이렇게 살 거야" 하는 다짐이나 기원보다는 우리가 "미래에 이렇게 살기로 선택했다."라는 삶을 살아야 한다. 미래는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미래는 선택하는 것이라는 평범하지만 엄청난 명제 앞에서 나는 "잠열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 잠열의 시간이 길수록, 난 나를 변화시킬 엄청난 잠열을 축적하고 있는 셈이다.

 

P.S 이런 영감을 주신 세분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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