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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Nov 04. 2021

애플워치7 구입기

넓어진 화면으로 큰 글씨를 보다

얼마 전 애플워치 1세대를 충전하다가 바닥에 떨어뜨려 액정에 금이 가고 심지어 깨져 버렸다. 6년 동안 잘 버텨준 애플워치 1세대는 나라를 잃고 낙화암에서 떨어지는 궁녀처럼 장렬히 자신의 임무를 마쳤다. 애플워치SE와 애플워치7을 1주일 넘게 고민하다가, 이왕에 지르는 김에 애플워치7을 구입했다.


어제 배달 완료된 애플워치7을 보니, IT기기에게 6년 이란 시간은 엄청난 간극이었다. 우선 넓어진 화면이었다. 하지만 그 넓어진 화면에 반비례하여 내 시력은 점점 쇠퇴해져만 갔다. 넓어진 화면으로 작은 글씨를 봐야 더 많은 텍스트를 읽을 수 있지만, 나는 넓어진 화면으로 큰 글씨를 보게 되었다. 6년의 시간동안 기술은 발전하고, 내 몸은 퇴보한 것이다.


애플워치7으로 온 가족이 둘러앉아서 심전도, 혈중 산소포화도도 측정해보았다. 다들 신기해한다. 다행히 가족 누구도 비정상에 해당하는 이상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 앞으로 애플은 전 세계의 헬스케어 정보를 수집하여 어떤 일을 벌일까 생각하니 섬뜻하기도 했다. 그래도 나 대신에 내 심장과 혈관을 지켜주겠다고 하니 그 정도 정보를 제공해도 상관없을 듯하다.


넓어진 화면을 보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이젠 아이폰13 프로도 애플워치7도 모두 큰 텍스트로 화면을 꽉 채운다. 아직 양쪽 시력이 1.2~1.5로 여전히 건강한 동체를 가지고 있지만, 가까운 곳에 초점은 점점 맞추기 힘들어져서 비스듬히 눈을 흘겨보아야 하는 노안의 단계로 진입했다.


그래도 점점 쇠퇴해가는 내 노안을 위해서 애플에서는 수많은 연구진들이 애플워치7의 화면을 크게 만들고, 내가 혹시 쓰러질까 봐 내 심장과 혈관의 산소포화도까지 측정하겠다고 나선다. 그렇게 오래오래 살아야 애플을 구매할 수 있으니, 자기네들 입장에서도 남는 장사일 테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애플 제품을 구입하는데 천만 원 이상 쓴 것 같다. 아이폰4, 5S, 7+, 11, 13까지 총 5대를 구매하고, 아이패드2, 아이패드 에어, 아이패드 프로 12.9, 맥북에어, 아이맥 27인치까지 구매했으니 말이다.


그 돈의 반만 애플 주식을 샀다면, 아마도 천만 원을 수익으로 얻고 그 돈으로 또 애플 제품을 샀겠지. 애플워치7이 보여줄 최첨단 기능과 혁신을 얘기하려고 했는데, 6년 동안 노안이 서서히 찾아와, 지금도 난 큰 화면에 커다란 텍스트로 글을 쓰고 있다. 넓어진 화면으로 큰 글씨를 본다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기술은 진보하고, 인간은 늙는다는 사실은 변함없는 진실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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