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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Nov 22. 2021

스페이스워크, 공간을 걷다.

흔들린다고 불안정한 건 아니다.

 지난주에 포항 환호해맞이공원에 스페이스워크라는 체험형 조형물이 완공되었다. 주변에서 먼저 체험한 사람들의 얘기로는 제법 가볼 만하다는 소문을 듣고, 일요일 오전에 가족들과 함께 환호해맞이공원으로 향했다. 두호동 ~ 여남동 해안도로 측에 주차하기 위해서 이동했는데, 오전 10시 10분 즈음에도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차를 주차하고, 언덕배기를 넘으니 언덕 정상에 스페이스워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최대 250명까지 이용할 수 있다고 해서, 오랫동안 줄을 기다릴 줄 알았는데, 아무런 웨이팅 없이 계단을 올랐다. 약 20여 미터를 올라가니, 오르던 계단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동공이 흔들리는 걸 직감했다. 무서운 걸 싫어하는 아내는 도저히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체험물(또는 놀이기구)이 아니라고 빠른 판단을 하고, 먼저 내려가서 기다리겠다는 말을 남긴 채 사람들 속으로 빠져 내려갔다. 정확하진 않지만, 약 1/3 정도가 그 정도 위치에서 빠져나가는 듯했다.


 나를 닮아 겁 없는 아들과 딸은 안전 핸드레일을 움켜쥐고 한 계단, 한 계단 발을 내디뎠다. 우측통행으로 규칙에 맞춰 걷던 사람들의 발걸음은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흔들리는 조형물 때문에 무거워진 발걸음을 겨우겨우 내딛는 1부류의 사람들과 가족들과 함께 멋진 사진을 찍는 2부류의 사람들이 서로 교차했다. 1분류와 2분류에 모두 속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1,2 분류 모두 속하지 않은 나 같은 사람도 있었다.


 계단은 점점 오르막으로 향해서 제일 높은 지점쯤에 이르자, 조형물의 흔들림은 점점 심해졌다. 출렁다리와는 다른 들림이었다. 출렁다리는 다리와 다리 간격이 매우 넓어서, 흔를림의 파형이 매우 길게 느껴진다. 또한 (String)  흔들림을 지탱하고 있기 때문에 흔를림의 파형이 매우 길고, 규칙적이다. 하지만 스페이스 워크는  기둥 사이에 장력을 가진 줄이 아니라 거의 인장이 되지 않는 철구조물을 올려놓은 형태이다. 또한 기둥 사이 간격이 출렁다리보다 짧아서, 파형이 짧고, 흔들림이 매우 불규칙적이다. 그래서 어지러움의 증세가  심하게 느껴졌다.


 신이 난 아이들과 함께 양쪽 스페이스워크를 다 둘러보고 내려오려고 했는데, 딸아이가 1번만 더 돌자는 얘기에 아들은 무시하고 내려가고, 나는 딸아이와 함께 1번 더 돌았다. 1번 더 돌아보니,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고, 좀 더 자유롭게 유영하듯 공간을 걷을 수 있었다. 독일의 유명한 작가부부가 설계했다는 스페이스워크는 독특한 경험을 만들어줬다. 공간을 유영하는 기분.. 사람들의 자중과 움직임에 의해 만들어진 흔들림은 약간의 긴장과 어지러움도 동반케 했다.


 스페이스워크를 내려오는 길에, 안내판을 읽어보았다. 진도 6.5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는 내진설계가 되어 있다고 한다. 수치적으로 분명히 계산했을 정교한 과학과 공학의 산물인 셈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계산을 믿으며, 보기에 위험천만한 조형물(또는 놀이기구)에 몸을 싣고 체험을 하고 있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를 뒤 흔드는 수많은 움직임이 있다. 그 움직임은 내가 만든 진동과 남의 만든 진동이 한데 뒤섞여 있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우리의 인생과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리고 우리는 이로 인해서 불안감과 어지러움을 느낀다. 하지만 명심하자.. 흔들린다고 불안하지만 결코 불안정한 건 아니다. 나를 단단히 지탱해주는 큰 기둥은 나에 대한 자신감, 가족들의 신뢰, 친구들과의 우정, 삶에 대한 소망이 될 수 있다.


 내 삶이 흔들려서 불안하다면, 그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 불안을 모두 없앨 순 없다. 하지만 그 불안이 “불안정”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만든 스페이스워크는 진도 6.5에도 견디게 설계되어 있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쉽게 무너져 내리지 않는다. 나 자신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가족, 친구, 동료 등)가 큰 기둥이 되어서 우리를 지탱하게 해 줄 것이다. 오늘 스페이스워크를 체험하며, 공간을 걸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체험했다. “흔들린다고 불안하지만 불안정한 건 아니다.” 오늘도 난 참 많은 걸 배우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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