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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Apr 04. 2022

뒷바람과 맞바람

돌아오는 길은 바람을 등에 지고

일요일 오후 오래간만에 자전거를 탔다. 2022년이 되고 나서, 주말에도 출근하는 일이 잦아지다 보니 주말에 나의 즐거움 중에 하나였던 자전거 라이딩을 못하고 말았다. 코로나 확진과 7일간의 자가격리로 떨어진 체력을 단련할 겸 오래간만에 자전거 라이딩에 도전했다.


포항 형산강에서 경주로 넘어가는 자전거길로 방향을 잡았다. 강바람을 등에 지고 자전거를 타니, 경주까지 가는 길이 순조로웠다. 형산강 주변으로 펼쳐진 논밭을 보면서 여유롭게 자전거를 탔다. 집에서 경주 예술의 전당까지 대략 25킬로를 뒷바람의 도움으로 수월하게 왔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내 등에서 나를 도와주던 뒷바람이 맞바람으로 변해버렸다. 바람은 한 방향으로 불었지만, 내가 방향을 바꾸었을 뿐이었다. 맞바람은 내 체력을 소진시킬 뿐 아니라 내 정신도 점점 소진시키고 있었다. 갈 때 보았던 나무, 강변, 새들의 풍경은 내 눈에서 점점 사라졌다. 오로지 난 바람을 가로지르며, 숨을 헉헉대며 페달만 밟고 있었다.


경주에서 포항으로 넘어오는 지점에서는 스피드가 현저하게 떨어졌다. 그리고 이내 후회를 하였다. 자전거를 탈 때는 전반전은 맞바람을 맞아야 하고, 후반전은 뒷바람을 등에 져야 한다. 그래야 같은 길이라도 훨씬 더 수월하고, 풍경도 즐길 수 있게 된다. 체력이 남아 있을 때 맞바람을 맞고, 체력이 떨어졌을 땐 뒷바람을 맞아야 한다.


바람은 잘못이 없다. 바람의 방향과 내가 방향을 잘못 선택했을 뿐이다. 내 인생도 비슷하다. 내가 느끼는 어려움과 도움은 사실상 같은 바람이다. 맞바람과 뒷바람은 바람의 방향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방향으로 서 있느냐에 달려 있다. 하지만 난 지금껏 바람의 방향을 탓하고, 바람의 방향을 원망했다.


이제 다음부터는 첫 시작은 맞바람으로 하고, 나중을 뒷바람으로 해야겠다. 그래야 체력도 아끼고 풍경도 구경할 수 있다. 내 인생의 후반전은 바람을 등에 지고 자전거를 타기로 한다. 인생의 전반전에 맞바람을 맞으라고 한 건 옛 어르신들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인가 보다. 맞바람을 일부러 맞을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면, 그리고 좀 더 현명하다면 돌아가는 길은 뒷바람을 등에 지고 달리는 지혜도 발휘해야겠다.


첫 25킬로는 1시간 반 걸렸는데, 돌아오는 25킬로는 2시간은 족히 걸린 것 같다. 그 덕분에 그날 밤, 숙면을 취했다. 맞바람과 뒷바람은 바람의 방향이 바뀐 게 아니라 내가 방향을 바꾸기 때문이라는 평범한 진실 앞에서는 나는 오늘도 인생을 하나씩 깨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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