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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May 11. 2022

후배님의 전화 한 통화

h0가 hn에게 하고 싶은 말

페이스북에 예전 글이 알림으로 떠서 다시 읽어보았다. 기록을 모으고 저장하기 위해 다시 재탕해서 올려본다. 예전에 내 생각을 다시 읽는다는 건 나를 새롭게 볼 수 있는 성찰이자 부끄러움이다.


제목: 후배님의 전화 한 통화


며칠 전, 대학 후배님으로부터 문자를 받았습니다. 스승의 날을 맞이해서 졸업생 홈커밍데이를 준비하고 있는데 초기 학번인 95, 96학번 선배의 얘기를 듣고 싶어서 30분 정도 강연을 부탁하였습니다. 재학생들이 궁금한 게 많으니깐 질의 형식으로 진행하니 별 부담 없다는 말도 덧보탰습니다.


모교 한동대가 있는 포항에서 직장생활을 해서 교수님과 친구들을 만나볼 요량으로 홈커밍데이에 참석키로 했습니다. 뜻하지 않게 강연까지 부탁을 받았지만 정중하게 사양을 했습니다. 남들 앞에 나서서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인생에 미주알고주알 얘기를 해줄 만한 삶을 살아오지도 못했습니다.


여기에는 읽어주는 이도 많이 없지만, 제가 생각해 둔 바를 글로 남겨 정리해두면 부끄러운 글이지만 세월이 지나 저도 읽고, 친구나 후배님들이 읽고 공감을 했으면 합니다. 남기고 싶은 글이 "난 이렇게 잘 살았다. 나 대단하지? 너희들도 나를 배워" 이런 투로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그래.. 사는 게 쉽지 않구나. 누구나 비슷한 생각을 하는구나." 이런 공감의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h = f (t)라는 함수가 있습니다. handong이라는 h는 시간 t의 함수입니다. 저는 t0(95년)에 시작된 h0입니다. t0는 어느덧 t22(2016년)까지 흘렀습니다. 제 함수 값은 h0입니다. h0가 h1에서  h22까지.. 아니 시간이 흘러 hn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깁니다. 어쩌면 h0가 hn에게 하고 싶은 말은 h0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hn에게 하는 말은 메아리가 되어 h0에게 되묻습니다.


h0가 hn에게 하고 싶은 첫 번째 말

스티브 잡스 자서전에 Reality Distortion Field라는 말이 나옵니다. 현실왜곡장이라는 번역을 하던데, 그 표현인즉슨, 잡스의 얘기를 듣다 보면 현실이 왜곡되고 그의 말에 매혹된다는 의미입니다. 저를 포함하여 t0에서 tn까지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한동대 재학생이던, 졸업생이던 한동왜곡장(Handong Distortion Field) 영향을 받습니다. 저 h0 또한 4년 대학생활, 2년 대학원 생활을 포함 총 6년 동안 한동왜곡장을 경험했습니다. 저마다 한동 안에서 경험한 한동왜곡장(Honor Code, Work duty, 사회봉사, 제자훈련, 한스트, 순결서약식, 기숙사 생활 등)이 어떤 이름으로 부르던 가치(Value)의 실험을 했습니다. 한동 안에서 경험한 한동왜곡장을 한동 밖에서도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어느 자리에 있던지 스스로 굳게 믿었던 신념이나 가치관을 현실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에 두게 마시고 한동왜곡장에 서게 하시길 바랍니다.


h0가 hn에게 하고 싶은 두 번째 말

h0는 절대 대단하거나 사명감에 불타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도 t0(95년) 당시에는 20살이었고, 철부지 대학 1학년이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구호를 외쳤지만, 실제로 세상을 변화시키겠다고 분연히 일어설 만한 용기나 신념은 그다지 크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에게는 handong이라는 h 함수에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함수에 영향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엄청 똑똑하거나 특별한 재주가 없어서 저에게 어려운 전공인 기계, 전자공학 복수전공을 공부하기에도 벅찼습니다. 그랬더니, t0, t1을 지나 t22(2016년)이 되자, t0가 갑자기 대단한(?) 선배가 되었습니다. 다른 글에도 수없이 얘기했지만 h0, h1이 대단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이 아닙니다. 그리고 h0가 h1보다 큰 것도 아니고, h22라고 해서 h0보다 작은 것도 아닙니다. 그저 우리에게  t0(1995년)이 주어졌는가, 아니면 t22(2016년)이 주어졌는지만 다를 뿐입니다. 저도 t0일 때 20살이었고, 수많은 hn에게는 tn일 때 20살 또래입니다. h0이 지금에 와서야 41살이지만, t0일 때는 20살이었습니다. h0의 20살 시절이 h22의 20살 시절에게 하고 싶은  말은 20살은 철부지이고 좌충우돌하는 시간입니다. 그게 당연합니다. 아프니깐 청춘이 아니고, 안 아파도 청춘입니다. 저나 당신이나 20살을 겪습니다. h0나 hn이나 같은 20살 시절을 겪습니다.


h0가 hn에게 하고 싶은 세 번째 말

tn이 t0를 바라보는 건 역사입니다. 하지만 t0가 tn을 바라보는 건  미래입니다. tn이 시간이 흘러서야 t0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지나온 길을 살펴본 이후에야 지금 현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t0 입장에서는 답답합니다. 20여 년 전에는 h0도 답답했습니다. h0도 h(-1)이라도 있었으면 했습니다. 선배들이 있었으면, 이런저런 고민도 상담하고, 잔소리라도 들었을 텐데.. 그럴 수 없는 현실에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한 해 두 해 후배님들이 생겼습니다. handong이라는 함수가 1차 함수인지 2차 함수인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1차 함수라면 두 점을 이어야 하는데 최소한 h0, h1 두 점이 있어야 합니다. 비록 h0가 원점은 아니지만 두 점 중에 하나였습니다. h0는 다른 대학 함수 s, k, y, j, p, i 등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선택한 400명이 있었습니다. 참 다행입니다. 나 같은 애들이 400명이나 되었다니 말입니다. 적어도 h라는 함수의 첫 번째 값이 되어준 h0에게 전우애를 느낍니다. 그리고 두 점을 잇게 해 준 h1에게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자칫 점이 될 뻔한 h를 최소한 두 점을 이어 1차 함수라도 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함수가 세상을 바꾸겠다는 구호를 만들어준 h2에서 h22에게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계속될 hn에게도 감사드립니다. h0가 hn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그대가 s, k, y, j, p, i 함수가 아니라 한동 h라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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