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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May 16. 2022

우리는 모두 신데렐라입니다.

낭만과 책임 사이

회사에서  글인데, 기록에 남겨봅니다.


제목 : 우리는 모두 신데렐라입니다.

 

우리는 신데렐라 얘기를 계모와 의붓자매들에게 미움을 받다가 궁궐에 파티에 참석해서 밤 12시에 마법이 풀리자 유리구두를 잃어버리고, 왕자가 유리구두에 맞는 신데렐라를 찾아서 행복하게 지냈다.. 이런 스토리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 이야기는 신기하리만큼 "우리"와 매우 유사합니다.

 

첫째, 신데렐라는 "재"를 뜻하는 Cinder라는 말과, "~~라는 사람"을 뜻하는 "Ella"라는 말이 합쳐진 뜻이라고 합니다. 즉 신데렐라는 "재를 뒤집어쓴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디즈니 실사판에서는 원래 주인공 이름이 Ella (엘라)였는데, 집에서 굴뚝 청소, 아궁이 때기, 빨래 등을 시키는데, 항상 재투성이(Cinder)로 있어서 재투성이 엘라라는 뜻에서 Cinderella(신데렐라)라고 놀리는 말이었습니다. 두 가지 모두 신데렐라는 뜻은 재투성이인 사람(엘라)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말로 재해석하자면 "기름밥 먹고사는 사람"들이란 뜻이죠. 바로 회사에서 정비, 설비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남들이 하기 싫은 보직, 항상 빨라도 작업복에 기름이 묻어있는 숙명 같은 존재입니다. 신데렐라 동화나 영화를 보면 요정의 마법으로 화려하게 걸쳐 입은 신데렐라를 부각하지만, 실제 신데렐라는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재 투성인 채로 기름때가 가득한 채로 "정비인"으로 살아갑니다.

 

둘째, 신데렐라가 재를 뒤집어쓰고 버틸 수 있던 건, 희망이 아니라 책임이었습니다. 신데렐라는 주변의 온갖 미움과 괄시를 받습니다. 정비인 또한 뜻하지 않게 주변(조업, 스탶, 심지어 경영층)으로부터 격려도 받기도 하지만, 때때로 미움과 괄시를 받기도 합니다. 물론 회사에서 영화나 동화처럼 미움과 괄시만 받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재를 뒤집어쓰고 일하는 방면,

이복자매들은(조업, 스탶) 엄마(경영층)의 이쁨을 받으면서 주어진 일만 해도 이쁨을 받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들어보면 그분들도 힘겨운 삶을 사실 살아가긴 합니다.) 우리는 항상 남이 입었던 옷을 빨고, 이복자매들이 어지러 놓은 방을 정리하고, 또 더러워진 화로의 재를 청소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래도 견딜 수 있는 건 내가 더 많은 월급을 받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는 희망과 보상이 아닙니다. 돌아가신 아빠가 남겨주신 집을 치우고, 돌아가신 아빠가 선택한 의붓엄마 말에 순종해야 한다는 책임감입니다. 그래서 신데렐라(정비인)는 희망은 퇴근 무렵 술자리에서 찾고, 책임은 매일매일 토크렌치와 체인블록에서 찾습니다.

 

마지막으로 신데렐라는 자정이 넘으면 다시 마법이 풀립니다. 우리는 대수리, 정수, 중수리, 돌발 등 정해진 기간이 있습니다. 그 기간에는 마법이 풀립니다. 마법이 풀리면 우리는 다시 재를 뒤집어쓴 정비인이 되어야 합니다. 신데렐라는 마법의 도움을 받아서 자정까지 정비인의 삶을 잊고 정말 신나게 춤을 춥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돌발"이라는 문자와 전화를 통해서

마법이 풀리는 걸 직감하고, 새벽 2시, 일요일 오전 9시 등 남들이 쉬는 시간에도 재를 뒤집어쓰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마법이 풀리지 않은 시간에는 정말 멋진 낭만인이지만, 마법이 풀려도 더 멋진 정비인입니다.

 

이제 쉰소리 그만해야겠습니다. 어제 세분의 전화를 받으면서 반가운 목소리에 녹아든 "고단함"을 느꼈습니다. 고단한 책임감이라는 말은 재를 뒤집어쓴 사람, 기름때를 묻힌 사람인 정비인과 어울리는 수식어입니다. 우리 속에 마법이라는 낭만을 즐기고, 재와 기름을 뒤집어쓴 책임을 수행하는 우리는 모두 "정비인"입니다.

 

진짜 마지막으로, 그런 정비인인 신데렐라를 구해준 건 백마 탄 왕자가 아닙니다. 백마 탄 왕자가 신데렐라를 구해준 것이 아니라, 재를 뒤집어쓴 신데렐라가 백마 탄 왕자를 선택한 것입니다. 신데렐라는 백마 탄 왕자가 사는 궁전에 들어가서도, 여전히 그녀가 할 수 있는 정비인의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 나라의 또 다른 정비인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 입법도 하고 주 52시간 정착, 돌발호출비 신설 등을 위해서 노력하고 실행했을 겁니다.

 

우리 정비인은 백마 탄 왕자를 만나서 재를 뒤집어쓰는 일을 그만두는 팔자 고치는 삶을 꿈꾸는 게 아니라,

우리 정비인은 백마 탄 왕자를 만나지 않아도, 또 다른 정비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삶을 실행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가슴속에 불타는 낭만으로 골프도 치고, 선후배가 술잔을 기울이고, 동고동락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정비인의 삶이 끝날 거라는 희망보다는 정비인의 삶을 더 보람 있게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신데렐라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윤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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