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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Jun 09. 2022

RIP : 송해, 한 시대가 저물어 간다.

나도 그분처럼 살고 싶다.

일요일 12시에 가족들이 한 상에 둘러앉아서 “전국~ 노래자랑”을 보는 게 일상인 시절이 있었다. 아버지는 노래자랑보다는 출연자의 나이를 맞추는 걸 더 재미있어하셨고, 남동생과 나는 최우수상보다는 인기상이 누가 될지가 더 재미있었다. 그리고 매번 빠지지 않은 그 지역 특산물이나 먹거리를 가지고 송해 아저씨에게 대접하는 걸 보신 어머니는 그 음식을 꼭 드시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이제 그런 일상도 옛이야기가 되었고, 이제는 일요일 12시에 두런두런 한 상에 둘러앉아서 티비를 볼 일도 없거니와, 설령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송해 아저씨를 볼 수 없게 되었다. 1980년대부터 쭉 이어온 시대의 아이콘이 있다. 토요일 저녁은 가족오락관의 허참 아저씨, 일요일 점심은 전국노래자랑의 송해 아저씨, 수목드라마는 최진실 누나 등.. 나와 함께 웃고 울었던 인물들이 해 질 녘 노을이 되었다가 드디어 하늘의 별이 되었다.


송해 아저씨의 별세 소식을 들으니, 이제 한 시대가 저물어 간다는 기분이 들었고, 나도 언젠가는 그 시대의 끝자락이 되어서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나도 송해 아저씨와 같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송해 아저씨는 전국노래자랑에 나오면, 10살도 안된 어린아이에게도 쉬이 반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린아이의 짓궂은 농담이나 장난도 웃으며 받아준다. 또한 우스꽝스러운 복장이나 분장을 억지로 하게 할 때도 절대로 빼는 법이 없이 동참한다. 그리고 “땡”하고 쑥스럽게 퇴장하는 출연자에게는 “잘하셨다. 수고하셨다.”라는 위로의 말을 건넨다.


송해 아저씨는 연예인 MC의 권위나 권력을 사용하기보다는 모든 사람에게 친근히 다가갔다. 너와 나의 경계가 구분하는 게 아니라, 너와 나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한 발 더 다가간다. 그래서 전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 터이다. 우리는 나이, 체면, 사회적 위치에 따라서 다른 사람과 구별 짓기를 좋아한다. 남과 비교해서 내가 비교우위에 있다면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남을 쉽게 판단한다.


나보다 한 살만 어려도, 오빠, 형이라고 불러라고 말한다. 하지만 송해 아저씨는 5살 어린이 출연자에게도 어리다고 무시하거나 반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송해 아저씨는 일요일 12시에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셨지만, 사실 “전국사람구경”을 시켜주셨다. 노래는 사람을 표현하는 방법이었고, 인생을 얘기하는 수단이었다. 나도 송해 아저씨와 같은 삶을 살고 싶다. “내가 누구네.”하며 나를 드러내는 삶이 아니라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며 상대방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우리의 인생은 “땡”과 “딩동댕”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무대 위에서 노래로 내 삶을 들려주고, 함께 내 노래를 들어주는 송해 아저씨로 충분하다. 우리의 일요일을 책임져주신 송해 아저씨의 명복을 빈다. 그분이 보여준 “전국노래자랑”은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아온 우리네 인생의 오아시스이자 전국노래방이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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