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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Feb 24. 2016

소설로 써보는 한동대 이야기 #1

1편. 응답하라 1987, 1995 (부제 : 두 형제의 겁 없는 도전)

1990년 어느 봄, 토요일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중학교 동창모임에 가시던 날 저녁에 전 난생처음 소설을 썼습니다. 그 시절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류의 소설이 인기가 있었습니다. 전 중 2의 심정으로 그날  밤늦도록 제 인생 첫 소설을 썼습니다. 2013년 12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평범하게 직장생활만 하다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제 모교인 한동대학교 총동창회 페이스북에 10편의 글을 썼습니다.


2013년 12월 이후에 제 글쓰기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학창 시절 책 읽기는 저에게 유일한 도피처였습니다. 그리고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책 속으로 도피생활을 즐기곤 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에 입시공부는 뒷전이었고, 앙드레 지드, 존 스타인벡, 서머셋 모옴, 헤르만 헤세, 이외수, 조해일, 이청준 등과 같은 문학서만 읽어댔습니다. 그 덕분에 읽은 책의 권수만큼 등수도 늘어났습니다. 10권을 더 읽으면 10등이 더 늘어나는 식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시절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 오랜 도피생활 때문에 전 2013년 이후부터 제가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글로 쓸 수 있었습니다. 2013년 12월에 쓰기 시작하여 2014년 2월 즈음까지 쓴 글을 다시 고쳐내서 브런치에 새롭게 내놓습니다. 계속 진행 중인 "어느 직장인의 세상만사" 시리즈도 동시에 쓸 생각입니다.  


1편. 응답하라 1987, 1995 (부제 : 두 형제의 겁 없는 도전)


1994. 1.21일 초대 총장 김영길 박사 내정


포항에서 제법 큰 환경 관련 사업을 하던 송태헌 장로는 자신의 사재를 출연하여서 포항 흥해읍 남송리에 기독교대학을 설립하기로 한다. 초대 총장으로 많은 사람을 섭외하고 고심하다가 초대 총장으로 김영길 박사를 내정한다.


이 사건은 매우 재미있고 독특한 일이다.  그때는 그저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나이가 들어서 생각하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세상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황당한 시추에이션이다.


대한민국 땅에 소위 지방에 있으면서 서울을 포함하여 수도권 출신이 많은 대학은 그리 많지 않다. 물론 서울, 경기도 지역에서 1~2시간 내에 등하교가 가능한 한림대(추천), 선문대(아산) 이런 대학은 예외로 하자. 진정한 의미에서 지방대라고 보기 힘들다. 지방에 있으면서 학교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사투리가 "서울말"인 학교는

'KAIST, POSTECH, HGU'  3개쯤 된다.


카이스트는 정부에서 출연한 국립대학이고, 포스텍은 포항제철(현 포스코)가 출연한 "사립대학"이고 한동대는 송태헌 설립자가 출연한 “사립대학"이다. 그러면  지방 사립대 중에서 가장 쎈(?) 대학은 논란의 여지없이 포스텍이고 제법 쎈(?) 대학은 한동대쯤 될 거다.


포항공대는 1987년에 1기를 받는데  그때 전국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249명의 신입생을 모집한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의 창립멤버이자, 전설의 박태준 회장이 설립한 대학이다. 그리고 신임 총장으로는 이휘소 박사 이후로 가장 노벨상에 근접했다라고 칭송을 받는 핵물리학자 김호길 총장을 초대 총장으로 모신다.


그런데 김호길 총장이 포항공대에서 열심히 근무하실  그즈음에 그의 친동생(막내동생)인 김영길 박사가 포항에 또 다른 대학의 총장으로 내정된다. 두 형제는 그렇게 포항이라는 곳에서 대학총장을 하는 전대미문의 역사적 사건이 시작된다.


아마 내가 소설을 써보자면, 김영길 박사는 6살 많은 형인 김호길 총장에게 많은 자문을 구했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경상도 남자라서 조곤조곤 많은 말을 하진 않았지만 포항공대를 총괄하는 형의 "모델"을 많이 참조하지 않았을까 한다.


포항공대와 한동대는 어떤 면에서 김호길, 김영길 형제처럼 "형제"같은 대학처럼 많은 면에서 닮아있다. 포항이라는 단어의 뜻 모두 물가 '포', 항구 '항'이다.. 모두 항구를 뜻하는 단어이다. 포의 대표적인 예가 제물포이고, 항의 대표적인 예가 부산항이다. 그런데 '포'와 '항'을 둘 다 쓰고 있는 도시가 포항이다. 포항에 이렇게 두 형제가 "김호길 포, 김영길 항"이 되어 포항지역에서 대학총장이 되는 시추에이션은 결단코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6살 차이나는 두 형제, 개교는 8살 차이는 두 학교.. 1기 입학생이 249명(포항공대), 400명 (한동대)였던 두 학교.. 그 당시 언론들은 새로운 기독교대학의 출범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지만 두 형제가 당시만 해도 교통 오지 중 하나인 포항에서 학교 총장으로 경쟁하는 것에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1994. 4. 30. 초대 총장 김호길 박사 서거


김호길 총장은 학내에서 발야구를 하시다가 뇌진탕으로 정말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신다. 그리고 다들 "대학자"가 서거하셨다고 충격을 받는다. 난  그분의 죽음에 가장 많은 충격을 받은 사람의 그의 동생 김영길 박사라고 생각한다.


한동대는 기독교 색채를 뺀다면 포항공대와 많은 면에서 닮아있다. 그래서인지  초기 학번(1기, 95학번)들은 포항공대 학생들과 번번이 비교를 많이 당했다. 성적면에서는 포항공대에 미치지 못하는 한동대이지만, 두 형제 대학은 많은 면에서 닮아있다.


P.S 가끔씩 제가 썼던 옛 글을 보며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마치 연예인이 데뷔 초기 촌스러웠던 자신의 모습이 공개될 때마다 얼굴이 벌게지듯이 말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무모하기도 하고 낯짝도 두꺼웠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무모하게 쓴 글이, 낯짝 두껍게 쓴 글들이 소중합니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아직도 머리 속 추억으로만 남아있을 것입니다. 초점이 흐릿한 오래된 사진을 보듯이 옛 글을 다시 들추어 봅니다. 하지만 사진이 없는 것보다 초점이 흐릿한 사진을 가지고 있는 게 더 낫다고 믿습니다. 부끄럽지만 제가 대학 4년, 대학원 2년을 다니면서 받은 2개의 졸업장을 대신하여 이 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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