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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Feb 24. 2016

소설로 써보는 한동대 이야기 #2

2편. 게임의 룰을 바꿔 세상을 바꿔보자. 

Why not Change the World? 20대에 정말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말입니다. 때로는 가슴이 뛰기도 했고, 지금은 그 말처럼 살지 못하고 있는 내가 부끄럽기만 합니다. 대학시절에는 그 말은 나를 밝히고 태우는 횃불이었다면, 대학원 졸업 후 12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는 나를 뒤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되고 있습니다. 세상을  뒤집어엎어서 혁명을 이루고자 함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에 견고하게 뿌리 박혀 있는 기성의 문화, 방식에 작은 돌멩이라도 던져보는 정도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땐 "Change"가 내게 중요했습니다.  


Why not Change the World? 이제는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외눈박이 마을에서는 양 눈을 가진 사람이 비정상입니다. 비정상이 정상이 되고, 정상이 비정상이 되어가는 나라에서 Why not Change the World?라는 말은 이제는 제게 다르게 다가옵니다. 이젠 "the World"가 더 와 닿습니다. 나도 "World"에 속해버린 건 아닌지? "Change"는 고사하고 그 세계에 광속으로 속해(Belong to) 버린 건 아닌지 걱정하는 형국입니다. 당신은 "Why not Change the World?"에서 어떤 단어가 와 닿습니까?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두 형제들의 이야기를 시작해봅니다. 


2편. 게임의 룰을 바꿔 세상을 바꿔보자. (부제 : Why not Change the World?)


포항공대의 김호길 박사, 한동대의 김영길 박사.. 두 형제박사는 그렇게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대학총장을 하게 되지만 그들의 목표는 어떤 면에서 비슷했다. 그들의 목표는 "게임의 룰을 바꿔 세상을 바꿔보자"였다.  포항공대는 기존  SKY +  KAIST라는 곤고한 대학 체계를 깨고자 했다. KAIST가 있는 대전은 그나마 수도권 접근성이라도 좋다. 하지만 포항은 1987년만 하더라도 서울 접근성으로 따지면 부산, 대구, 심지어 경주보다도 안 좋다. 하지만 결국 공과대학만을 볼 때 서울대, 카이스트, 포스텍이 삼각편대를 이루고 연세대, 고려대가 뒤를 이은 형국이었다. 김호길 총장은 천하삼분지계를 결국 이루고 말았다. 게임의 룰을 바꾸기 위한 두 형제의 전략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소수정예" 전략이다. 


김호길 총장은 매년 300명의 학생이 세상에 나온다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300명이라는 숫자는 이상하리 만큼 역사에서 "소수정예"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에서 스파르타 레오니다스 왕이 이끄는 병사의 숫자가 300이고, 성경 속 기드온 용사도 300이다.  


김영길 총장도 그의 형을 철저히 벤치마킹한다. 그리고 그 시절 기독교인들의 열망을 담아서 "또 하나의 대학"을 설계한다. 그리고 300명보다 다소 많은  400명의 학생이 한동대 1기로 입학하게 되었다. 


제 주변엔 포항공대 1기생이 여럿 있다. 회사에서 같이 일한 동료로, 상사로 그들을 보아왔다.  포항공대, 한동대 1기생들은 정말 끈끈한 단결력으로 결합되어 있다.  두 대학 학생 모두 비교적 면학적 분위기에서 위치에 있고, 졸업을 하고서도 학교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도 비슷한 것 같다.


둘째 "연대감" 전략이다. 


포항공대, 한동대 모두 기숙사라는 제도를 들여놓는다. 그리고 주변에 소위 대학가라고 불리는 술집, 음식점, 옷가게 등과 같이  상업지구로부터 아주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대학을 세운다. 부유한 포항공대는 포스코 직원들이 모여 사는 포스코 사원 주거지역 인근에 있고, 가난한 한동대는 산기슭에 덩그러니 학교를 세웠다. 포항공대에서 바깥 구경하려면 최소한 스쿨버스, 시내버스를 타고 나오거나 택시를 타야 한다. 한동대는 가장 가까운 곳이 흥해나 환여동이다. 


설립 초기에 두 학교 학생들은 큰 맘을 먹고 밖에 나갈 결심을 해야 될 정도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거의 수도사 생활을 하게 된다. 오죽했으면 한동대 1학년을 한동고 4학년이라고 했을 정도이다. 할 게 공부밖에 없다고 하면 심한 비약일지 모르지만, 놀려고 해도 나가기 귀찮을 정도로 외진 지역에 위치해있다. 그리고 기숙사에서는 그동안 공부만 잘했던 이기적인 모범생들이 모여서 그들만의 독특한 생태계를 만들어낸다. 300 또는 400의 소수정예가 엄청난 결합을 해버린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엄청난 유대관계를 가진 대학은 그 유명한 고려대학교와 포항공대, 한동대, 카이스트이다.  1학년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교의 경우 대부분의 학생들이 엄청난 유대감 또는 연대감을 가지게 된다. 카이스트, 포항공대, 한동대도 그런 예에 속한다. 거기에 더해 카이스트는 대부분 과학고 출신이 연계 진학을 하는 경우가 있어서 지역별 과고생들이 엄청난 유대감을 가진다.


셋째 "소명감" 전략입니다.


포항공대 본관에는 여러분들이 "미래의 한국 과학자상"이라는 동상이 있다. 거기엔 아무 동상도 없다.  포항공대 출신 중에 한 명이 그 상을 타려고 하는 염원을 담았다고 한다. 사실상 엄청난 소명의식을 가지고 학업에 열중한다. 수능성적 평균으로는 서울대 학생이나 카이스트 학생들보다 다소 열위일 수도 있다. 그 열위의 상당 부분은 포항이라는 지역적 특징에 기인한다. 하지만 그 정도의 사소한 차이는 전교 1등과 2등의 차이처럼 미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초기 포항공대생들에게는  소명의식 또는 Calling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엄청난 "열정"이 있었고, 지금도 그럴 것이다. 


한동대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목회자분들이 한동대 수요 채플에 와서 한동대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라고 말하였다. 옥한흠, 하용조, 김삼환, 이동원, 김동호 목사, 대천덕 신부님 등 셀 수도 없이 많은 목회자들이 와서 한동대생에게 소명감을 각인시켜주었다. 나 또한 한국교회의 희망이고 싶은 맘이 하나도 없었는데,  그분들이 오셔서 눈물을 흘리고 기도할 때면, 착각이라고 할지라도 '한국교회의 희망'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국교회의 수치'는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 세 가지 외에도 수없이 많은 공통점이 있을 수 있다. 두 형제 박사는 세상을 변화시킬 각자의 방법으로 "게임의 룰"을 바꿔서 앞으로 20~30년 후를 염두해두고 그들의 제자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포항이라는 촌동네에서 그들은 각자 세상을 바꾸기 위한 거대한 실험을 했다. 두 형제 박사 고향인 안동 시골 골짜기에서 꿈꾸었던 꿈을 포항 바닷가에서 이루고자 했다. 


P.S 불과 2년 전에 쓴 글인데, 2년 만에 다시 읽어보고 고쳐 써 보니 그 사이에 난 "Change"를 한 게 아니라 "Changed"되었습니다. 세상을 바꾸려고 했는데, 세상에 점점 변화되었습니다. 불과 2년이 지났을 뿐인데 말입니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웁니다. 별은 바람에 스치우더라도 그 빛을 잃지 않습니다. 영롱한 별이 되어 바람에 스쳐도 빛을 잃지 않길 오늘 밤 간절히 소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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