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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Jul 03. 2023

사단칠정논변, 이황과 기대승

견문이 좁은 제가 박식한 그대에게

 안녕하세요? 정윤식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역사적 사건 중에 조선시대 "사단칠정논변"이 있습니다.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 두 사람의 8년간에 걸친 편지로 이어진 토론을 "사단칠정논변"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사단이라고 함은 인간의 본성에 우러나오는 마음씨를 의미하고 칠정은 인간 본성이 사물을 접하면서 표현되는 인간의 자연적인 감정을 의미합니다.

 

사단은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 있고 칠정은 기쁨, 노여움, 슬픔, 두려움, 사랑, 미움, 욕망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건 사단칠정에 대한 두 사람의 논쟁에 있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이 논쟁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퇴계 이황은 1502년 생이고, 고봉 기대승 1527년 생이어서 퇴계 이황 선생보다는 무려 25살이나 나이가 적은 까마득한 후배입니다. 사단칠정논변의 첫 시작은 1559년입니다. 그러니깐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의 나이는 대략 58세와 33세 정도 됩니다.

 

그때 당시 퇴계 이황은 성균관 대사성 정도(정3품) 였고, 고봉 기대승은 문과에 합격해서 종 9품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퇴계 이황 선생은 회사로 치면 부사장 정도 레벨이고, 고봉 기대승은 대졸 신입으로 들어와서 사원이나 대리정도 레벨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봉 기대승이 퇴계 이황 선생의 사단칠정에 대해서 편지를 써서 두 사람은 8년 동안 서신을 주고받는 사이가 됩니다.

 

그리고 이 당시 퇴계와 고봉은 각각 이런 말을 남깁니다.

 

"처음 만나면서부터 견문이 좁은 제가 박식한 그대에게 도움받은 것이 많습니다." - 퇴계 이황 -

"평생을 우러르며 그리워했는데 함께 논하고픈 생각이 구름처럼 쌓이고 말았습니다." - 고봉 기대승 -

 

지금으로부터 약 450여 년 전에 조선시대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퇴계 이황은 급이 낮은 고봉 기대승에게 꼬박꼬박 존칭을 써가며 답신을 썼고, 고봉 기대승은 존경하는 선생님의 말에 진심 어리지만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고 답을 했습니다. 이는 조선시대를 통틀어서 가장 낭만적이면서도, 가장 뜻깊은 사건이자 만남이었습니다. 하지만 450년이 지난 지금 우리 회사 임직원들도 그 두 사람의 만남과 논변처럼 지낼 수 있을까요?

 

부사장이 던지는 화두에, 신입사원이 메일을 써서 논박하고, 부사장은 이에 답신을 보낼 수 있을까요? 저는 그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조직은 기강이 무너진 당나라 군대가 아니라, 소통이 원활한 조직입니다. 이번 주에 제가 우리 공장의 스팀트랩 선정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하고, 우리 공장 엔지니어는 교체가 필요하다는 기술검토 결과를 직원들에게 공유했습니다. 제가 뱉은 말은 자연스레 여러분들에게는 지시가 되었고, 스팀 트랩 교체를 위한 작업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우리 공장 OOO 직원이 해당 스팀트랩 교체에 대한 의견을 엔지니어에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메일을 제가 읽게 되었고, 저는 OOO 직원에게 감사메일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메일을 회신하는 과정에서 우리들은 각가의 스팀트랩 타입에 대한 장단점을 알게 되었으며, 소통의 소중함도 함께 느끼게 되었습니다. "합리적"이라는 말은 결과에 대한 합리성이 아니라 과정에 대한 합리성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는 과정이 비합리적이고, 수직적인 지시(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라!!)라면 사람들은 비합리하다고 느끼고 비합리적인 결과에 이르는 과정이 합리적이고, 수평적인 토론(이황과 기대승이 계급장 떼고 토론)이라면 사람들은 합리적이라고 느낍니다.


합리적인 결과 + 비합리적인 과정은 비록 합리적 결론에 이르지만, 실행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조직에 대한 실망과 무기력함을 느끼고 비합리적인 결과 + 합리적인 과정은 비록 비합리적인 결론에 이르지만, 실행하는 과정에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다시 토론의 과정을 거쳐서 합리적인 결과를 이르게 할 기회를 얻었을 것입니다.

 

우리 공장은 450년 전에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 두 분이 했던 그런 사단칠정논변을 할 수 있을만한 조직인지 되묻습니다. 그리고 그런 소통을 만들 수 있는 건 권위의식을 내려놓고, 학문의 진지함을 중요하게 생각한 퇴계 이황 선생님의 관용정신과 학문적 대선배이자 매우 지체가 높은 퇴계 이황의 권위에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해서 질문과 토론을 한 고봉 기대승 선생님의 지적 용감함이 만들어놓은 걸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공장의 조직문화가 조금씩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생각에 매우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다시 한번 저에게 이런 성찰을 던져주신 OOO 직원에게 이 말을 꼭 전해드립니다.

 

 "처음 만나면서부터 견문이 좁은 제가 박식한 그대에게 도움받은 것이 많습니다." - A공장장 정윤식 -

 

감사합니다.

정윤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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