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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Mar 06. 2016

소설로 써보는 한동대 이야기 #5

5편. 자그마한 불씨, 산불로 번지다. 

일주일에 한 편이상 글을 쓰거나, 예전에 쓰던 글을 편집하고 있습니다. 전업작가도 아니고 글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지 않은 두 아이의 아빠이자 13년차 직장인에게는 다소 버거운 일정입니다. 무엇보다도 글을 쓰다 보니, 책을 읽을 시간이 점점 부족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평소에 읽고 싶었던 책 목록이 쌓여가고, 글을 써 내려갈 소재도 점점 고갈되고 있습니다.


어직세 시즌1과 한동대 시리즈는 각각 모두 10편으로 마무리하고, 당분간 책 읽기 모드로 들어갑니다. 아마도 3월 어느 날 즈음에 두 시리즈가 마무리될 듯합니다. 어직세 시즌2, 3도 어느 정도 구상을 해둔 상태이고, 새로운 소설도 얼개와 플롯은 몇 해짹 묵혀 두고 있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작가의 서랍에 차곡차곡 넣어 두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하나씩 꺼내겠습니다. 책을 읽을 시간도 없는데 글을 쓸 순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스트리밍으로 다운 받아가면서 영화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다운로드 속도보다 재생 속도가 빠르면 영화를 보는 내내 버벅대면서 보게 될 겁니다.


내 글쓰기가 버벅되지 않도록 많은 책을 읽고 책 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겠습니다. 1주일에 한 편 정도는 짧은 글이라도 스핀오프 형식으로 브런치에 올리겠습니다. 


5편. 자그마한 불씨, 산불로 번지다. 


1995. 4.5 식목일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1995년 4월 5일, 폭풍의 언덕 바로 앞에 있는 칠포해수욕장 방향에 있던 산에서 불이 났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포항은 비가 잘 오지 않은 지형이라 특히 봄가을에 산불이 잘난다고 한다. 1995년 산불 이후에 1996년 봄에도 현재 외국인 교수 숙소(과거 학생 임시 기숙사 숙소) 뒤편에서 흥해 방면으로부터 산불이 났다. 일요일에 늦잠을 자던 학우들이 사이렌 소리에 놀라 다들 숙소에서 뛰쳐나왔다. 그날 나를 포함해서 많은 학생들이 온통 그을린 얼굴로 소방대원들과 함께 오전 내내 산불 진압하고, 오후 예배를 드렸던 기억이 난다.


갑자기 왜 산불 이야기인가.. 봄이 오면 비 소식도 점점 뜸해지고 야외에서 봄기운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최적의 날들이 계속된다. 하지만 비가 수십일째 오지 않은 날이 계속되면, 가뭄으로 인해 논밭이 갈라지기도 하고 예기치 않은 산불 소식을 종종 접하게 된다.  


한동대는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비가 오지 않는 날들이 계속되고, 대학생활을 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들을 갖추었지만, 분쟁의 불씨들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분쟁의 불씨는 세 가지로 생각해보았다. 


1. 이승만 국부론 :  이승만, 김영삼, 이명박 장로님을 위해 기도합시다.

한국 기독교의 양적인 성장에는 주기철, 손양원, 옥한흠과 같은 거목 목사님들의 헌신과 하나님의 은혜도 있었지만, 기독교단의 정치적 야합도 부정하지 못할 사실이다. 일부 교단에서는 서슬퍼른 박통, 전통 시절에 성경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서 "세상의 권력"에 순종할 것을 가르쳤다. 그리고 그들을 시대의 영도자라 추켜세우고 '그분들'을 위한 조찬기도회도 자발적으로 열였다. 한동대에서도 그런 기류들이 사실상 주류적인 가치관으로 형성했다. 그래서 이승만 국부론을 가르치는 교수가 생겼고, 김영삼, 이명박 장로님을 위해 기도합시다라고 당당히 얘기하는 사람들이 믿음 좋은 사람으로 변신했다. 또한  정교분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사랑의 이름으로 학생들을 가르쳐 왔다.


이 문제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관의 문제라 볼 수 있다. 한쪽 편이 절대선도 아니고 다른 편이 절대악은 아니다. 다만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의 차이가 이편, 저편으로 나누는 기준이 될 뿐이다.


그런데 한동대는 한 쪽 편의 의견만이 편향적으로 주입되었고, 교육되었다. 난 이 책임의 상당수가 나를 포함하여 초기 학번(95,96학번)들에게 있다고 본다. 왜냐면 다른 대학을 비교해봐도,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개혁을 꿈꾸는 사람들은 학생들 자체적 모임을 통해 성장했고,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데 큰 힘을 발휘했다. 그런데 한동대 초기 학번들(95, 96)은  좀 더 진보적인 관점에서 고민하고 약자의 편에 서서 바른말을 하는 방법에 대해 거북함을 많이 느꼈다. 


내사랑 한동을 쓴 김재수 동문, 나단으로 유명했던 오이정환 동문 등 많은 사람들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대자보도 쓰고 목소리를 드높이고 행동에 나섰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많은 친구들이 이를 그저 치기 어린 행동으로 외면했다. 그들의 대자보가 뜯기는 상황에 분연히 일어나지 못하였다. 초기 학번들의 편향적인 애교심, 순종적인 신앙이 후배들에게 안 좋은 선례가 된 것 같아 마음 한 편으로 정말 미안하다.


우리는 분개해야 할 때 분개하지 못하였고, 모든 걸 용서하고, 사랑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해서 미안했다. 이제 95학번들이 41살이니깐 조금씩 느끼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좀 더 깨어있었고, 좀 더 다르게 살았다면 그 불씨가 산불로 번지지 않았을 것이다.


2. 쟤네들, 담배 피우고 술 마시는 "짐승"들 아냐..

한동대 입학생 중에 대략 30~40%는 비기독교인이다. 그런데 한동대에서 주류인 기독교인 학생들이 비기독교인 친구들에게 "짐승"이라는 표적을 붙였다. 정확히 말하면 술 먹고, 담배 피우는 교회 안 나가는 친구들에게 우스갯소리로 "짐승"이란 별명을 붙였다. 학교 식당 오른편이나 학생회관 뒤편에는 비공식적인 장소가 있었다. 바로 "흡연"하는 곳이다. 그리고 환여동 대학관 인근 새마을금고 맞은편 2층에 당구장이 있었다. 거기는 많은 친구들이 담배를 입에 물고 늦은 밤까지 당구 치는 곳으로 유명했다.


난 왜 담배 피우고, 술 마시는 게 엄청난 "죄"가 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시절 한동대에서는 그런 친구들을 "짐승"이라고 했다. 물론 약간의 우스갯소리이기도 했지만 도덕적, 신앙적 우월감에서 쓴 말이다. 20살 먹은 학생이 밥 먹고 입가심으로 담배 피울 수 있지 않은가? 그게 그렇게 비난받을 일인가..


한동대는 그런 정죄문화, 도덕적 딱지 붙이기가 상당했다. 그렇게 쉽게 이쪽 편과 저쪽 편으로 가르고 비기독교인 친구들을 "교화"시키고 "전도"할 대상으로 생각했다. 한동대에서 그들을 위한 배려의 공간이나 시간은 정말 찾기 힘들었다. 졸업하고 나서 모이는 총동문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기도로 시작하고, 예외 없이 예배하고 Holy 한 모임이 시작된다. 우리의 친구, 우리의 동문 중에 30~40%를 위한 자리는 없다.


지금도 한동대에서 논하는 많은 얘기 중에 상당수는 그 친구들을 배제한 채 진행된다. 바울도 한 때 "사울"이었고, 우리고 존경해 마지않는 김영길 총장님도 한 때 "비기독교인"이었다. 한동대의 모임에서 기독교 색채를 빼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총동문회 모임에서 기도나 예배를 빼자는 것도 아니다. 단지 우리들의 친구들이 다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나 시간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한동대 시절 4년도 모자라서, 졸업 후에도 여전히 우리의 동문 중 상당수는 배제당하고 끼어들 틈이 없다. 다만 우리들의 친구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더욱더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 


1) 세상을 바꾸겠다고 해놓고, 막상 세상을 잘 모르는 무지함.. 때론 천박한 역사의식

2) 세상을 바꾸겠다고 해놓고, 다른 친구들을 정죄하는 의식.. 때론 도덕적 우월의식


도대체 세상을 바꾸겠다고 해놓고... 지피지기 백전불태란 말도 모르는 것인가.

1995년의 나 또한 천박한 역사의식과 도덕적 우월의식에 젖어 있었음을 고백하고 반성한다. 두 불씨 이외에 또 다른 불씨가 있다.


P.S 한동대 인근으로 꽤나 많은 산불이 나곤 했습니다. 1995년, 1996년뿐만 아니라 제가 대학원을 졸업하던 2004년까지 제 으로는 4~5번의 산불을 기억합니다. 올해는 산불이 없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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