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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쿠스 형제와 카이사르

호민관과 집정관

by 정윤식

로마인 이야기 15권을 읽고 나서 역사는 2천 년 전 과거의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 현재를 살아가는 내 주변에 살아 숨 쉬는 생동감 있는 현재의 행동양식의 거울로 삼고 싶었다. 그중에 로마인 3권 승자의 혼미에 등장하는 그라쿠스 형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그라쿠스 형제는 형인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와 동생 가이우스 그라쿠스이며, 외할아버지는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을 무찌르며, 사실상 포에니 2차 전쟁을 끝낸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이고, 그의 할아버지는 한니발 전쟁 때 노예군단을 이끌며 고군분투하여 싸운 영웅이었다. 그라쿠스 형제는 모든 로마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금수저였으며, 로마에서 제일가는 일등 신랑감이었다.

그라쿠스 형제는 집안은 좋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명문귀족 출신은 아니었고, 평민출신이었다. 형인 티베리우스는 로마 정계의 엘리트 코스인 회계감사관에도 선출되어 앞으로 전도유망한 신인 정치인이었다. 그런데, 그는 회계감사관 이후에 법무관, 집정관 등 탄탄대로의 정치적 코스를 선택하지 않고, 평민집회에서 선출되는 호민관에 당선이 되었다. 호민관은 정책을 입안할 수 있고, 신체불가침 특권을 유지하는 등 로마시대에 평민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었다.

정책은 입안하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권력을 가지고 실행할 수 있는 행정부에 속한 집정관과 원로원에 비한다면 야당적인 성격이 강한 직책이었다.

티베리우스와 가이우스 두 형제는 호민관에 당선되어 농지개혁법을 추진하다가, 원로원 및 집정관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여러 가지 소요사태로 인해서 안타깝게 살해당하고 만다. 포에니 전쟁 이후에 로마제국은 전쟁터에 나갔던 대다수 평민출신의 로마인들은 자신들의 토지를 잃어버리는 일을 겪었고, 헐값에 나온 토지들은 돈 많고 힘 있는 귀족들이 매수하여 대단위 농장을 이루게 되었다. 그래서 국가는 빈익빈 부익부로 인해서 가난한 평민들은 무산자가 되었고, 돈 있는 귀족들은 넘쳐나는 부에 주체를 못 하게 되었다. 이런 사태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그라쿠스 형제는 호민관이 되어 농지개혁법을 추진하다가 살해당하고 만다.

그라쿠스 형제가 죽고 로마는 마리우스, 술라 등 내전사태를 겪고 약 50~60년이 흐리고 나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등장한다. 카이사르는 집정관으로 선출되고, 삼두정치(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체계를 만들어 놓고, 그라쿠스 형제가 추진하고자 했던 농지법을 실현할 수 있었다. 그에게는 농지법을 실행할 수 있는 정치적 권력과 이를 지지해 줄 있는 표, 군대의 힘이 가지고 있었다. 그라쿠스 형제와는 다르게 집정관으로서의 카이사르는 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직장인이던 정치인이던 이루고 싶은 과제가 있다. 이를 종국에 실현할 수 있는 방편은 호민관이 아니라 집정관이 되는 것이다. 회사에서 내가 원하는 개혁이나 과제를 하고 싶은가? 그러려면 그럴 힘이 있는 곳까지 승진해서 올라가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이를 요즘 세상에 비유하자면,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바가 있으면 노동조합의 위원장이 되기보다는 회사 사장이 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 노조 위원장은 정책을 제안할 수 있고, 어젠다를 만들 수 있지만 이를 실행하는 힘은 바로 회사 조직의 힘에서 나온다.

나도 직장 생활하면서 내가 이루고 싶은 일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내가 비로소 공장장, 부장이 되고 나서야 하고자 하는 바를 뚝심 있게 추진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라쿠스 형제가 호민관으로서의 역할이 무의미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나는 호민관으로서가 아니라 집정관이 되어서 세상을 바꾸는 역할이 나에게 더 적합하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집정관이 되는 과정 자체가 워낙 장시간이 걸리고, 집정관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나 스스로 그들과 동화되어 버릴 수 있는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호민관으로서의 선견지명과 집정관으로서의 실행력을 갖추어야 가능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를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감각이라고 얘기하였다. 그라쿠스 형제가 보여준 개혁의 방향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집정관이 되어서야 실행력을 얻어서 포에니 전쟁으로 길을 잃은 로마제국이 다시금

재도약하게 되었다. 그리고 공화정 로마제국은 제정 로마제국이 되어서 황제는 호민관과 집정관을 동시에 맡게 된 아우구스투스를 1대 황제로 재출발하게 되었다.

나는 호민관 그라쿠스 형제와 집정관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통해 어제의 역사를 오늘 현재에 적용코자 고민하고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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