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산을 바라보는 현재의 두 가지 관점 (과거와 미래)
디즈니 플러스에서 본 해밀턴이란 뮤지컬 영화가 있다. 린 마누엘 미란다가 2015년에 초연하고, 2016년 제70회 토니상을 휩쓸었던 뮤지컬이다. 뮤지컬 실황 그대로 영화로 만들었고, 미국 독립전쟁 당시의 시대상과 인물들이 나온다. 처음에는 화려한 무대장치와 속사포 같은 랩으로 정신없이 영화를 봤고, 최근에 다시 2번째로 보게 되었다.
주인공 "알렉산더 해밀턴(린 마누엘 미란다 역)이 마지막 명예결투 장면에서 나온 노래가사에서 Legagy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Legacy. What is a legacy? It's planting seeds in a garden you never get to see."
"유산. 유산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당신이 절대로 볼 수 없는 정원에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아주 잠깐 10초쯤 나오는 대사이지만, 아무 생각 없이 영화를 보다가 마음에 파문이 되어 그날 밤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유산은 무엇인가? 보통 부모, 앞선 세대, 선배 등으로부터 상속 또는 물려받은 유무형의 재산, 사물, 문화를 유산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레거시 미디어, 레거시 시스템과 같이 다양한 의미로도 쓰인다. 이렇듯, 유산은 대개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형태의 "기존 세대로부터 물려받는 유무형의 가치"로 해석된다.
그런데, 해밀턴은 기존의 관점(레거시 관점)과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유산을 이해한다. 현재의 시점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형태로 "후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유무형의 가치"로 유산을 정의했다. "당신이 절대로 볼 수 없는 정원에 씨앗을 심는 것이 바로 유산"이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멍했다. 나는 지금까지 유산은 당연히 "물려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해밀턴은 유산은 "내가 볼 수 없는 정원에 미래 세대를 위해서 씨앗을 심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도 이제 내년이면 만 50살이 되고, 입사한 지 만 21년을 채우고 22년 차가 된다.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나도 이제 유산을 물려주어야 할 세대에 이르렀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부모, 앞선 세대, 선배 세대가 물려준 유산에 기대어 실망하기도 하고, 그 유산 덕에 지금껏 그럭저럭 잘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나도 내 자녀들을 위해서 "내가 볼 수 없는 정원에 씨앗을 뿌리는 일"을 해야 하고, 회사의 미래를 위해서 "내가 거두지도 못하고, 심지어 씨앗이 자라는 과정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씨앗을 뿌리는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해밀턴은 미국을 강력한 연방주의에 기반한 나라로 만들고 싶었고, 또한 전쟁 부채를 연방 책임으로 만들고, 조세 제도를 개편하고, 연방 은행을 설립하는 등 미국 경제의 기반을 만들었다. 그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위해서 "자신이 볼 수도 없는 정원에 씨앗을 심는 일"을 하였고, 위대한 유산을 물려주었다.
유산은 현재의 내가 과거로부터 물려받는 일인 동시에 현재의 내가 미래를 위해서 씨앗을 심는 일이기도 하다. 알렉산더 해밀턴은 Legacy가 무엇인지.. 자신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실천하였다. 이제 나도 만 50살이 되어가고, 회사에서나 가정에서나 유산을 물려주어야 할 시기가 되었다. 이제 앞으로 남은 세월 동안 유산을 남기는 일을 찾고, 씨앗을 심는 일에 집중하길 다짐해 본다. 18세기 중후반, 카리브 해안 작은 섬에서 태어나서, 미국 독립전쟁, 건국의 주역인 알렉산더 해밀턴이 2025년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는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What is a legacy?"라고 말이다. 나는 그의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서 "내가 볼 수도 없는 정원에 씨앗을 심기"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