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카 해협, 해적선 대신 크루즈를 타다.

싱가포르 크루즈선 여행을 추억하며

by 정윤식

말라카 해협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과 말레이 반도 사이에 약 1,000 km 되는 좁은 해협이다.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와 중동, 유럽을 오가는 해상 물동량의 대부분이 말라카 해협을 거친다. 인천이나 부산에서 출발한 컨테이너 선박이 유럽으로 가기 위해서는 싱가포르를 기점으로 말라카 해협을 거쳐서 인도양을 지나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한다.

말라카 해협은 2000년대 초반에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인근 국가에서 통행하는 상선을 습격하는 해적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나던 지역이다. 말라카 해협은 주변 국가의 영해로 규정되지 않고, 국제수역으로 관리되어 어느 특정한 나라에 의해서 귀속되지 않는다. 지금은 뉴스에서 크게 보도되지는 않지만, 말라카 해협에서도 심심찮게 해적에 의한 피해가 생기기도 한다.

물론 악명 높은 소말리아 해적만큼은 아니지만, 말라카 해협에서도 2019년에 대한민국 국적의 선박이 해적의 습격을 받아 선원이 폭행을 당하기도 하고, 현금 등을 탈취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말라카 해협 끝에는 아프리카 희망봉 근처에 있는 케이프타운과 같은 싱가포르가 위치해 있다. 싱가포르는 지리학적 이점을 바탕으로 중계 무역의 거점이자 군사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를 비롯하여, 중국, 일본, 인도, 호주 등 유명 관광지를 방문하면서 크루즈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항지로서 유명하다. 최근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크루즈 선사 중 하나인 디즈니 크루즈가 싱가포르에 취항하여, 많은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나도 기회가 닿아서, 싱가포르에서 로열 캐리비언 크루즈를 탄 적이 있다. 작년 12월 크리스마스 즈음에 갔으니, 벌써 1년이나 되었다. 그때 크루즈를 타고 말라카 해협을 지날 때 이런 생각을 했다. 불과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았는데, 말라카 해협을 들끓었던 해적선 대신에 크루즈를 타는 세상이 되었다. 해적들은 해안 틈새에 숨어 있다가, 상선이나 여객선이 나타나면 민첩하게 항해해서 선원들과 여행객을 대상으로 해적질을 했다.

하지만, 이제 말라카 해협에는 1만 명 정도의 승객과 승무원을 태우고, 선상에서 파티를 하고, 삼시세끼 모두 제공받고, 매일 밤마다 공연, 영화를 관람한다. 돈을 뺏기 위해 배를 타야 하는 해적선과 돈을 쓰기 위해서 배를 타는 크루즈에는 엄청나게 큰 간격이 존재한다. 이런 생각으로 말라카 망망대해를 건너며, 잠시 생각에 잠겼었다. 또한 지구 반대편에 카리브해에서도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캐리비언 해적으로 유명한 카리브해에는 이제 더 이상 해적을 찾기 힘들고, 마이애미 항구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럭셔리한 크루즈들로 북적인다.

같은 바다를 두고, 해적선을 탈 것인가? 아니면 크루즈를 탈 것인가? 때론 해적의 낭만이 있던 시절이 있었을까? 아니면 크루즈에서의 낭만이 더 현실적인가? 말라카 해협을 건너면서, 해적선 대신 크루즈를 타면서 생각에 잠겼고 다음에 또 알래스카 크루즈 여행을 해보리라 계획을 세웠다. 카리브해 크루즈, 말라카 해협 크루즈 2번의 크루즈 여행을 하며, 다음번 크루즈 여행을 기대해 본다. 해적을 만나는 일은 없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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