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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Feb 29. 2016

어느 직장인의 세상만사 #10

10편. 나는 어떻게 꼰대가 되었는가?

드디어 어느 직장의 세상만사 10편을 마무리한다. 요즘 유행하는 식으로 말하면 어직세 시즌 1이 종영한 셈이다. 시즌 1은 오늘로서 마무리 하고 시즌 2도 생각해두었다. 시즌 2는 시즌 1과 마찬가지로 총 10편을 쓸 생각이고 루트1, 루트2, ... , 루트10으로 나갈 생각이다. 시즌 1이 자연수로 썼다면 시즌 2는 무리수로 쓸 예정이다. 시즌 2에서도 시즌 1과의 연결을 위해서 시즌 2의 루트4는 시즌 1의 2편의 연장선으로 쓸 예정이다. 그렇다면 루트1, 루트4, 루트9는 시즌 1편의 또 다른 연결고리가 되는 셈이다. 시즌 2는 무리수로 이어지고 시즌 3은 허수 i로 이어쓸 예정이다. 시즌 2, 3에서 다룰 내용들은 차차 본방이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시즌 1의 마지막 편은 도발적이고 부끄러운 자기 고백이다.


10편. 나는 어떻게 꼰대가 되었는가?


스타워즈 4,5,6은 루크 스카이워커의 이야기라면 1,2,3은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어떻게 다스베이더로 되는지 풀어가는 이야기이다. 어직세 시즌 1의 마지막 편은 "나는 어떻게 꼰대가 되었는가?"이다.


첫째, 멘토 코스프레를 즐긴다.

최근에 인턴직원이 입사해서 "멘토"라는 것을 해봤다. 사무실 내에 입사 3년 차 이하 신입직원에게도 업무를 "코칭"할 일이 조금씩 생겼다. 난 멘토, 코칭 역할을 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멘토" 코스프레를 즐기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직장동료와 야근 후 저녁식사를 하다가 불현듯 꼰대로 변해버린 내 모습이 떠올랐고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이나 사고가 진리인양 인턴직원, 신입사원에게 쏟아냈다. 그리고 멘토 코스프레를 즐기는 꼰대가 되어버렸다. 나는 "내가 예전에 이거 해봤는데 너도 이거 해봐라, 나도 예전에 저거 해봤는데 별 필요 없으니깐 너는 저거 하지 마라"라고 늘어놓고 있었다. 그리고 다스베이더라는 가면을 쓴 아나킨 스카이워커처럼 "I'm your Mentor."라고 얘기하고 다녔다. 그날 저녁, 내 모습이 하도 부끄러워서 멘토 코스프레를 하지 않기로 맘 먹었다. 하지만 맘 먹은대도 되지 않는게 인생이다. 차라리 그냥 꼰대가 낫다. 멘토 코스프레 하는 꼰대만은 되지 말자 라고 굳게 다짐했다.


둘째, 니 말의 결론은 뭐야?

회사 상사에게 보고하거나 회의를 하다보면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있다. "그래서 결론이 뭐야?" 상사는 매우 "바쁜" 분들이기에 우리의 이야기를 상세히 들어줄 시간도 "마음"도 촉박하신 사람들이다. 그럴 때면 애둘러 "결론"을 짧게 말하고 보고를 마친다.


그런데, 내가 그러고 앉아 있었다. 나도 내 상사와 전혀 다르지 않았고, 나도 "니 말의

결론이 뭐야?" 이런 태도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인턴직원의 설명이나 얘기를 듣을 때나 신입사원의 고충을 듣고 있을 때 나도 그러고 있었다. "너네들이 얘기하고 있는거를 다 들어줄 요량도 없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대로 너네들이 얘기하고 있는지 이미 결론을 낸 상태에서 듣는 척"을 했다. 일부러 그럴만큼 악의적인 사람은 아닐지라도 상대방의 이야기 보다는 상대방의 결론을 미리 판단하고 상대방의 결론과 내 결론이 같은지 다른지 어서 빨리 듣고 싶어했다.


난 멘토 코스프레 하면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니 말의 결론은 뭐야?"로 바꾸어버린 꼰대가 되어 있었다. 상대방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니가 듣고 따라주기를 바랬다. 내 결론과 니 결론이 같다면 "잘한다"라고 얘기하고 다르면 "다시 생각해봐라"라고 말한다. 듣는 사람 힘 빠지게 만드는 꼰대가 된 것이다.


셋째, 어른 개구리가 새끼 뱀에게 말하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라는 흔한 말이 있다. 나도 내 올챙이 적을 잊지 않을려고 노력한다고 착각했었다. 그래서 후배 분들에게 "쿨"한 척 했다. 젊은 직원들과 햄버거나 피자도 먹었다. 솔직히 나도 좋아해서 내 동기들과도 자주 가곤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올챙이 적을 생각한다고 말할 쑨 없다.


내 착각은 이랬다. 나의 과거가 그들의 현재와 비슷하거나 같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내가 10년에 처한 환경이나 고민이 후배가 지금 겪고 있는 환경이나 고민이 비슷할 꺼라 생각했다. 그래서 10년이 지난 후의 지금의 내가 10년 전의 "나"를 발견한 것인냥 생각하고 후배들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았다.


올챙이적을 생각하는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후배분들은 개구리가 아니고 새끼 뱀이었다. 나랑은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생각도 다른 "종"이었다. 난 양서류이고 그들은 파충류였다. 비록 새끼 뱀이긴 하지만 다 큰 개구리 따위가 덤벼들 대상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들에 비해 직장이나 입시를 대충 치르고 운좋게 살아온 다 큰 개구리였다.

다 큰 어른 개구리가 새끼 뱀에게 올챙이적 얘기를 "개굴개굴" 하면서 얘기하고 있었다 . 올챙이 적 생각하고 얘기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렇게 난 확실한 세가지 이유로 꼰대가 되었다. 또 덜 확실한 백가지 이유로 꼰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최소한 위선적이지 않은 꼰대가 되기로 했다. 또한 니 결론이 내 결론과 다르다면 내 결론을 강요하지 않을려고 노력이라도 해보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올챙이적 얘기는 같은 종족인 양서류에게만 하기로 했다. 개구리가 개굴개굴되는 걸 뱀이 알아들을 리 만무하다.


나는 이렇게 꼰대가 되었다. 그리고 못난 꼰대 코스프레를 지켜본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2016. 2. 29

4년마다 찾아오면 2.29일에 씀


P.S 이 글 또한 #7, 9편 이전에 써서 저장해둡니다. #7, 9편이 역작이라기 보다는 손쉽게 쓰기 힘들어서 차후에 곧 쓰겠습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결론은 미리 보여주고 시간을 역행해서 보여주는 기법이 있은데 그런 기법을 글쓰기에 차용해봅니다.


정말 진심으로 꼰대가 되어가는 저를 바라보며 부끄러웠고 내 얘기를 묵묵히 들어준 후배님들에게 고맙고도 미안한 맘 감출 수가 없습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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