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윤식 Feb 18. 2017

꺼(져)줄래?

우리가 대화하기 힘든 이유 세 가지

 시간이 참 빠릅니다. 20대, 30대를 훌쩍 지나왔습니다. 40대가 되면 어린 시절에 막연히 생각했던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어쩌다 '어른'이 되어버렸습니다. 최근에 문유석 판사님이 "전국의 부장님께 감히 드리는 글"이란 칼럼으로 대한민국에 화두를 던졌습니다. 저도 용기를 내어 "전국의 어쩌다 어른에게 감히 드리는 글"을 써볼까 합니다. 우리가 그토록 대화하기 힘든 이유 세 가지를 쓸까 합니다. 이 글은 우리라는 1인칭 복수 대명사에 비겁하게 숨어버린 1인칭 단수 대명사 저에 대한 고해사입니다.


 첫째, 꺼줄래?

 상대방이 얘기할 땐, 제발 스마트폰을 꺼주세요. 아이가 얘기할 때, 제발 TV를 꺼주세요. 만약 회사 사장이 말씀(?)하시는데 스마트폰을 쳐다보는 강심장 직장인을 없을 겁니다. 물론 사장님의 신년사를 듣고 있노라면, 수많은 무리 속에서 눈에 띄지 않은 뒷 열 어딘가에서 당신은 '오늘의 연예기사'나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읽고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장님께 단독으로 보고하는 자리라면 그분의 말씀을 한자라도 놓칠세라, 회사 다이어리에 빼곡히 글을 써내려 갑니다.

 하지만 그 상대방이 당신보다 직급이 낮거나, 당신의 밑에 있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스마트폰이나 TV를 보고 있을 가능성이 점점 커집니다. 사실 당신은 상대방을 '개무시'하여 일부러 모욕감을 주게 만드는 "꼰대"는 아닙니다. 그저 상대방이 하는 말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9살 아들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고 싶어 하고, 초등학생들이 좋아하는 유머(우유가 넘어지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정답 : 아야)를 아빠에게 진심으로 물어봅니다. 저는 밥 먹으면서 스마프폰을 쳐다봅니다. 일부러 아들을 '개무시'하는 나쁜 "아빠"가 아니지만 아들이 하는 말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습니다. 

 상대방은 대화하려고 다가오는 순간 본능적으로 압니다. 내 말에 관심이 있는지, 아니면 스마트폰에 얼굴을 처박고 있는지 압니다. 이제 상대방이 말을 걸어옵니다. 그럼 스마트폰을 꺼주세요. 상대방이 얘기를 꺼내는 순간, 당신의 마음속의 스마트폰, TV를 꺼버리고 상대방을 쳐다만 봐도 일단 성공입니다.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져다주고, 10분이라도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세요. 저도 아이들이 얘기할 땐, 스마트폰을 끄려 합니다. 


 둘째, 꺼져줄래?

 시작부터 매우 도발적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대화할 때 보이지 않은 질서를 의식합니다. 군신유의, 부자유친, 부부유별, 붕우유신, 장유유서의 오륜(五倫 : 다섯 가지 윤리)의 유리벽이 있습니다. 붕유유신을 제외하고는, 임금이 신하에게, 아버지가 아들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나이 많은 사람이 어린 사람에게 질서를 강조합니다. 자연스럽게 전자가 후자에 비해 갑이 됩니다. 특히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 사회에서는 장유유서가 근간이 됩니다. 입사로 따지는 기수문화, 상사와 부하직원으로 나누어지는 직급 문화가 회사 내에서는 장유유서로 통합니다. 

 그런데, 상사 또는 선배는 부하직원 또는 후배에게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놓습니다. 수백 번도 더 들어봤던 옛날 무용담이 여지없이 계속됩니다. 그리고 자신은 소통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부하직원 또는 후배 사원에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라고 합니다. 이때 절대 낚여서는 안 됩니다. 그저 묵묵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특별한 사항 없습니다."라고 간략하게 답하셔도 됩니다.

 장유유서의 질서를 수직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상사와 부하직원의 관계가 아니라, 권한과 책임을 빨리 부여받은 사람과 다음에 부여받는 사람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김 부장님을 모시고 일하는 게 아니라, 김대리를 데리고 일하는 게 아닙니다. 김 부장님과 함께 일하고, 김대리와 함께 고민하고 토론해야 합니다. 오늘도 여지없이 근무 중 회사에서, 근무 후 회식자리에서 수백 번도 더 들은 그 '소통'과 '간담회'의 자리에서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제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지켜야 할 질서만을 강조하지 말고,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아닌 동료로서 얘기할 수 있길 바랍니다. 저도 오늘도 상사과 선배 코스프레를 걷어치우겠습니다.

 꺼져줄래? 매우 도발적인 이야기이지만, 여지없이 내 생각만을 쏟아내는 상대방이 묵묵한 침묵 뒤에 맘속에 담아두었던 그 한마디 일 지도 모릅니다. 상사와 선배 코스프레 그만해도, 상대방은 당신을 상사와 선배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셋째, 져줄래?

담배를 피우지 않은 사람은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 담배를 끊으라고 합니다. 백해무익한 담배를 왜 피우냐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담배를 오래 핀 사람도 담배를 막 배우는 사람에게 담배를 끊으라고 합니다. 내가 담배를 피워봐서 아는데 '너를 걱정해서 하는 말인데' 하며 담배를 끊으라고 합니다. 학창 시절 공부를 잘했던 부모가 자식에게 '너는 누구를 닮아서 공부를 못하느냐'라고 얘기합니다. '난 너보다 못한 환경에서도 공부해서 이 정도 이루었다.'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공부를 못했던 부모도 자식에게 '나도 어린 시절 환경이 안 좋아서 공부를 못했는데, 너라도 공부를 잘해야 한다'라고 얘기합니다. 공부를 잘한 부모나 공부를 잘 못한 부모나 똑같이 자식에게 공부 잘하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왜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심으려고 할까요? 어린 시절 어땠나요? 공부하는 게 정말 재미있었나요? 사실 전 노는 게 좋았습니다. 지금도 노는 게 좋습니다. 내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합니다. 난 아침형 인간이니깐 늦게 일어나는 사람이 게을러 보입니다. 난 토익스피킹 7급이니깐 6급 이하인 사람들이 못나 보입니다. 난 직장 생활하면서 자격이 3개나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하나도 없어 한심해 보입니다. 

 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건 "전체주의적" 생각입니다. 내 생각을 그만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생각도 존중해주었으면 합니다. 내 생각으로 다른 사람을 이기려고 하지 말고, 져줍시다. 내 생각을 강요하지 않은 게 지는 게 아닙니다. 내 삶의 가치관을 널리 세상과 회사에 전파하는 "홍익인간"으로 살지 말고, 상대방의 생각도 들어봐 주고, 내 생각을 내려놓길 바랍니다.

 학창 시절 각자가 싸온 도시락 반찬을 책상 위에 다 꺼내놓고, 내 반찬과 니 반찬 중에 어느 것이 나은지 품평회를 하지 맙시다. 그저 내가 싸온 소시지 반찬과 니가 싸온 소고기 장조림을 함께 나눠서 먹어봅시다. 


 저도 집에서, 회사에서 "꺼(져)줄래?"를 자주 실천하겠습니다. 적어도 집에서는 좋은 아빠, 남편이 되길 노력하기보다는 "말이 통하는" 아빠가 되겠습니다. 말이 통하면 마음이 통하게 됩니다. 말로 마음의 창을 여는 게 대화가 아닐까요?  

 

작가의 이전글 게으름과 게걸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