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우의 자전거

'현이의 연극'을 다시 읽기

by 정윤식

중학교 때 국어시간에 읽은 글 중에 아직도 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은 두 편이 있다. 하나가 황순원의 '소나기'이고, 다른 하나가 이경희의 '현이의 연극'이란 작품이다. 한 명은 한국 문단에서 빛나는 소설가이고, 또 다른 한 명은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겸업 수필가(본업 : 약사)이다. 며칠 전에 회사에서 직원들과 회식을 마치고 빌라 1층에 묶어져 있는 민우(아들, 초등2)의 자전거를 보고 마음이 울컥했다. 엄밀히 얘기하면 아들 자전거에 달린 속도계를 보고 많은 생각이 삐죽삐죽 솟아났다. 1989년 어느 날에는 내가 '현이(자녀세대)'였지만, 2017년 어느 날에는 '민우(자녀세대)'를 바라보는 '부모세대'로서 '현이의 연극'을 다시 읽는다.


민우는 자전거 타기를 무척 좋아한다. 6살 때 처음으로 두발 자전거를 탄 이후에, 최장거리 65킬로 정도 탔다. 지금은 초등학생 2학년인데, 작년 2월에 처음 산 자전거로 1년이 좀 지난 지금까지 약 1100킬로 정도 탔다. 지난 주말에는 타이어가 다 닳아져서 타이어 교체까지 했다. 아들에게 "자전거 타는게 그렇게 재밌냐, 왜 재밌냐"고 물어보았다. "자전거 타는 게 재미있는데, 왜 재미있는지는 모르겠다"고 한다. 하긴.. 나도 회사 안가고 집에서 빈둥빈둥 대며 노는게 재밌다. 그런데 왜 재밌냐고 물어보면 "왜 재미있는지는 모르겠다"고 답할 수 없을 것 같다.


작년에 아들에게 자전거를 사줄 때 속도계도 거의 동시에 사서 달아줬다. 자전거의 속도를 측정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번째는 자전거 바퀴에 센서를 부착해서 바퀴가 한바퀴 도는 시간을 측정해서 속도를 측정하는 방법이다. 지름이 24인치 바퀴가 한 바퀴 돌면 22inch * 2.54cm/inch * 3.14 = 191cm를 이동하게 된다. 10바퀴를 돈다고 가정하면 대략 1.9m를 이동하게 된다. 1초당 10바퀴 돈다고 가정하고 이를 1시간으로 환산하면 1.9m/s * 3600 s/hr = 6.9 km/hr가 된다. 일정한 시간에 대해 자전거 바퀴가 돌아가는 횟수를 알 수 있으면 자전거의 속도를 측정할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은 스마트폰 기능에도 있는 GPS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GPS를 이용해서 속도를 측정하는 방법은 스마트폰에 내장되어 있는 위치센서를 인공위성에서 읽어서 움직인 거리를 측정하는 방법이다. 첫번째 방법은 바퀴가 돌아간 횟수를 측정하고, 두번째 방법은 자전거가 이동한 거리를 측정하는 방법이다. 민우가 첫번째 방법으로 세상을 살았으면 좋겠다. 첫번째 방법은 "내가 얼마나 패달을 밟았느냐"로 측정된다. 세상의 기대에 맞춰서 남들이 볼 때 부러워하는 직업이나 일을 찾기 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페달을 밟았으면 한다. GPS라는 다른 사람의 관심, 기대에 맞춰어서 민우가 이동한 거리를 속도를 측정하는 삶을 살지 않았으면 한다.

그저 묵묵하게 자전거 페달을 밟아서, 어디로 가야 한다는 목표없이,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감없이, 페달을 열심히 밟아서 자신이 꿈꾸는 길로 가길 바란다. 그래서 힘들면 잠시 자전거를 세워놓았으면 한다. 첫번째 방법은 자전거를 세워놓으면 속도가 자동으로 인식이 안된다. 페달이 밟아야 속도를 인식한다. 하지만 GPS는 내가 GPS센서를 STOP하지 않는 한 속도를 측정하고 있다. 자전거를 잠시 세워놓고 물을 마실 때에는 속도가 측정되지 않아야 한다. 벽에 가로막혀 쉬고 싶을 때 속도를 측정하지 않는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민우 자전거 속도계에는 '현재시간, 오늘 달린 거리, 오늘 달린 시간, 평균속도, 최고속도, 소모된 칼로리, 총 달린 거리'가 표시된다. 아들이 자전거를 탈 때 지금 달리고 있는 현재속도가 표시된다. 하지만 거기에 더하여 평균속도, 최고속도도 함께 표시된다. 인생은 항상 최고속도로 달릴 순 없다. 만약 40킬리 거리만큼 갈려고 하면 평균 20km/hr로 가면 2시간에 갈 수 있다는 걸 깨달았으면 좋겠다. 가끔 내리막길이나 뒷바람을 타서 최고속도 30km/hr로 달린 순 있지만, 인생에서 내리막길이나 뒷바람을 타는 경우는 흔치 않음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체력을 생각해서 오르막길, 맞바람도 맞을 수 있음을 기억하고 40킬로를 평균속도 20km/hr로 가면 된다. 오르막길, 맞바람이라면 10km/hr로 갈 수 있다.


또한 '총 달린 거리'를 꼭 알게 되면 좋겠다. 2000km 쯤 달리면 체인, 타이어도 갈아야 한다. 인생은 달린 거리에 따라서 '정비'해야 할게 생긴다. 그 정비를 할려면 자전거 샾에 들리거나 자가 정비를 할 수 있다. '정비'의 시간이 "여행"이 될 수 도 있고, "영화"가 될 수 있다. 지금 민우에게는 '자전거 타기'이다. 자전거를 타면 기분이 좋고, 왜 좋은 지 모른다면 그건 바로 민우에게 "정비"의 시간이다. 민우 아빠는 주말에 시간이 나면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탄다. 내가 앞서서 타면 아들이 따라온다. 아직까진 내가 좀 더 빠르지만, 조금만 지나면 아들이 앞서서 달리고, 내가 따라가게 될 것이다.


인생이란, 아빠가 먼저 앞서서 자전거를 타고 아들이 뒤따르지만 언젠가는 그 순서가 바뀌게 된다. 그렇게 된다하더라도, 인생의 페달은 밟아야 한다. 다른 사람(GPS)의 평가로 자신의 속도를 측정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밟은 페달로 움직인 바퀴의 횟수만큼 자신의 속도를 측정하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 그게 아들에게 바라는 아빠의 심정이자, 내가 살고 싶은 삶이다. 이번 주말도 난 여전히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탄다. 그리고 왜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그게 인생이고 삶이다.


P.S 주말에 아들과 자전거 탄다고, 둘째 딸 민예에게 미안한 맘이 큽니다. '민우의 자전거'편에 이어 '민예의 그림그리기'편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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