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석 #2 : 파란 잉크를 담은 화이트 물감

White가 아닌 W.H.I.T.E로 노래하다.

by 정윤식

미우새에서 김건모와 유영석이 나왔습니다. 오래 전에 썼던 유영석 #1의 조회수가 난데없이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묵혀뒀던 "우리가 사랑한 4대 음악 석학" 썰을 다시 풀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지금은 버라어티 쇼에서 패널로 나와서 시청자를 웃기는 방송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파란 잉크를 담은 화이트 물감처럼 유영석은 "파란 잉크(음악인)"를 담은 "화이트 물감(방송인)"으로 다시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다시 그를 노래하고 그를 듣습니다.


파란 잉크를 담은 화이트 물감 (부제 : White가 아닌 W.H.I.T.E로 노래하다.)


유영석은 1993년 푸른하늘 6집을 마지막으로 푸른하늘 그룹활동을 마감한다. 그리고 1994년 W.H.I.T.E(화이트)란 요상한 그룹이름으로 1집을 발표한다. White라고 하면 될 것을 그것도 굳이 대문자로 W.H.I.T.E란 이름으로 궁금증을 자아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앨범 자킷을 보면 왜 White가 아닌 W.H.I.T.E임을 알 수 있다.

화이트라고 쓰여 있는 물감이다. 하지만 물감 속에는 파란 잉크가 담겨져 있다. 유영석은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화이트 물감으로 다시 데뷔하지만 그 속에 담긴 진짜 색은 "푸른하늘"이라는 파랑 잉크임을 나타낸다. 화이트 잉크가 담긴 화이트 물감은 White이지만, 파란 잉크를 담은 화이트 물감은 White가 아닌 W.H.I.T.E라는 것이다. 푸른하늘까지는 본인이 담고 싶은 음악을 대중에게 노래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푸른하늘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는 대중에게는 화이트로 보여지지만, 그 속에 담긴 진짜 색은 "푸른하늘"이었다.


푸른하늘 음악은 음악적 색채가 말 그대로 "Blue"했다. 음악 조성, 가사 모두가 멜랑꼴리했다. 하지만 W.H.I.T.E 음악은 말 그대로 화사했다. 더이상 "사랑 그대로의 사랑"을 부르는 푸른하늘이 아니었다. "눈부신 그녀"를 부르는 화이트였다. 그래도 유영석은 화이트의 원래 색깔은 "푸른하늘"임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말할걸 그랬지" 같은 노래도 불렀다. "말할걸 그랬지 난 너를 사랑한다고 아직까지 너를 위해 아무 것도 못했다고"라고 노래를 했다. 대중들이 원한 "화사한 음악"을 했지만, 그는 "푸른하늘"이었다. 그리고 그냥 White가 아닌 W.H.I.T.E로 노래했다.


지금도 이 땅에 수 많은 유영석이 살아가고 있다. "내가 원하는 음악"과 "다른 사람이 듣고 싶어하는 음악" 사이에 고민하다. 20대 유영석은 내가 원하는 음악을 푸른하늘로 노래했다. 하지만 30대 즈음에는 "다른 사람이 듣고 싶어하는 음악"을 하기 위해 화이트로 노래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원하는 음악을 들려주되, 그 속의 진짜 내 음악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파란 잉크를 담은 화이트 물감을 W.H.I.T.E라고 불렀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 사이에 간극에 고뇌하기 보다는 유영석처럼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그는 화이트 1집 마지막 곡인 "세상의 또 다른 빛"이란 곡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 한 때는 내게 주어진 일이 다 끝난 줄 알았지. 가슴에 남아 꿈꾼 모든걸 미련이라 느꼈어. 끝냄에 다가온 어둠까지 겪어야 할 느낌이라 했지. 하지만 이제는 마음 깊이 감춰진 밝음으로. 세상의 또다른 빛이 되어 그늘진 곳에 선 뒤. 드리울 수 있는 기쁨보다 더 큰 기쁨 드리리"라고 말이다.


세상을 그리려면 파란색, 흰색, 노란색, 빨간색 등 수많은 색이 필요하다. 유영석은 공대를 다니면서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하고 싶어서 서울예대로 갔다. 또 푸른하늘을 노래하고, 또 화이트로 노래했다. 세상에는 자기가 원하는 '음악'을 끝까지 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가 원하는 '음악'이 아닌 '대중음악'만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 땅에 대다수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음악'은 취미로 남겨둔 채,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음악'을 연주하며 살아간다. 결코 외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고귀하지 않고, 대중을 걸어가는 사람이 세속적이지 않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물과 기름이 아니다.

유영석은 이렇게 노래한다. "세상의 또다른 빛이 되어 그늘진 곳에 선 뒤 드리울 수 있는 기쁨보다 더 큰 기쁨 드리리"라고 말이다. 이 땅에 수많은 유영석이가 살아간다. 파란 잉크를 담은 화이트 물감으로 살아간다. 결코 꿈에 타협하고, 꿈에 굴복해서 살아간다고 자책하지 말고, 담담히 노래하자. 우리는 White가 아닌 W.H.I.T.E이다. 그게 이 바로 "세상을 둥글게 살아야 해"라고 말하는 세상에서 "네모"로 살아가는 네모의 꿈이다. 이제 티비 속에 나오는 53살(만 51세, 65년생)의 유영석을 보자. 그는 한 때 푸른하늘이었고, 화이트였다. 그리고 그는 지금도 노래하는 음악인이다. 방송인으로 보이지만 그는 진정한 음악인이다.


P.S 저 또한 회사에서 자판을 두드리면 살아가는 "파란 잉크를 담은 화이트 물감"입니다. 유영석 3편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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