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은 250mm

내 발이 드디어 뉴발란스를 만나다.

by 정윤식

나의 운동화 일대기를 살펴보면, 단 한번도 나이키를 산 적이 없다. 내 인생 최초의 메이커 신발은 중1때 명절 용돈을 모아서 산 "코오롱 액티브"였다. 그 때는 프로스펙스, 프로월드컵, 액티브, 르카프 등 소위 국산 브랜드와 나이키, 아디다스, 필라 등 외국 브랜드의 가격차이가 무척이나 심했다. 코오롱 매장에서 새 신발을 사고, 머리 맡에 두고 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후로 난 국산 블랜드 신발을 애용했다. 내가 욕심을 내서 살 수 있는 외국 브랜드의 최대치는 리복이었다. 내가 맘에 드는 나이키와 아디다스 신발들은 국산 브랜드 신발가격의 2배에 육박했고, 리복은 그나마 욕심내면 살 수 있는 신발이었다. 지금은 내가 원하는 나이키, 아디다스 신발 디자인을 충분히 살 수 있는 능력(?)이 된다. 하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사고 싶은 대상이 신발에서 '자동차'로 바뀐 듯하다.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벤츠, 아우디, BMW"가 되었고, 국산 브랜드는 "현대, 기아, 쉐보레, 르노삼성, 쌍용"이 되었고, 욕심내서 살 수 있는 외산 브랜드는 "폭스바겐, 도요타, 혼다, 닛산"으로 변했을 뿐이다.


최근에 내가 주로 신는 신발은 "뉴 발란스"이다. 처음에는 스티브 잡스가 즐겨 신는다는 뉴발란스 992를 보며, 나도 한번 사볼까 생각만 해봤다. 그리고 20~30대 직장동료에게 뉴발란스에 대해서 물어봤다. 그래서 3년 전 쯤 처음으로 뉴발란스 신발을 사서 신었다. 그리고 지금은 벌써 880 모델을 신고 있다. 아마도 다음번 신발도 뉴발란스로 선택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9살 첫째(남)은 주로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말" 타입이라 아디다스 신발을 신고 다니고, 7살 둘째(여)는 저질 체력 탓에 편하게 걷고 다니는 "팬더" 타입이라 뉴발란스 신발을 신고 다닌다.


내 발 싸이즈는 250mm이다. 남자 신발 사이즈로는 제일 작은 축에 속하고, 여자 신발 사이즈로는 제법 큰 편에 속한다. 남자신발을 신으면, 발 사이즈에는 문제가 없지만, 발볼이 넓은 편이라 꽉 조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여자신발로 신어보면, 발 사이즈와 발볼이 맞아서 주로 여자신발을 신었다. (그래서 주로 색깔이 빨간색 계열의 신발을 많이 신고 다녔다.) 그런데 뉴발란스는 달랐다. 발 사이즈 뿐만 아니라 발볼까지(B,D)까지 선택권이 있었다. 주로 리복을 신었던 내게 "뉴발란스"는 그야말로 "새로운 발란스"를 안겨줬다. 나처럼 발은 작지만 발볼이 넓은 사람들도 더이상 여자신발이 아닌 남자신발 코너에서 신발을 고를 수 있었다.


사람의 발은 사이즈로만 결정되는 게 아니다. 230mm ~ 290mm까지 발 길이만 1차원적인 모습이 아니다. 발볼도 싸이즈가 있다. 발은 절대 1차원인 선이 아니다. 3차원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발볼 싸이즈까지 더하면 2차원이 된다. 내게 뉴발란스는 "내 발은 250mm"에서 B,D의 선택권을 주었다. 내 발은 지금껏 발 길이로만 평가를 받았다. 프로크메테우스의 침대처럼 내 발은 그렇게 좁아터진 신발 안에서 그저 신발 끈을 느슨하게 매어야 하는 고육지책에 의지해서 살아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좀 더 넓어진 신발 안에서 편하게 움직일 수 있다. 뉴발란스를 신고 조깅을 하긴 힘들어도, 뉴발란스를 신고 한참을 걸어도 발이 편하다.


어쩌다보니, 뉴발란스 신발 광고를 한 것 같다. 내 돈주고 산 신발을 이렇게나 광고를 해주다니 말이다. 우리네 삶도 그렇게 평가 받았다. 자동차는 소형, 중형, 준대형, 대형으로 평가를 했고, 1400cc, 1600cc, 2000cc, 3800cc와 같은 배기량으로 평가를 했다. 왜 그렇게 싸이즈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왜 그렇게 "국산", "수입"으로 나누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신발은 발이 들어갈 공간이고, 신발은 신어서 편해야 하고, 조깅, 워킹, 농구, 축구 등 활동성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내가 뉴발란스를 좋아하는 건 편해서이다. 신발을 발크기로만 평가하지 않고, 발볼까지 고려해서 편하게 신을 수 있다.


어린 시절 신고 다니는 신발로 부모님의 부를 가늠할 수 있었다. 나이키를 신은 아이들은 부유했고, 비 메이커 신발을 신은 아이들은 가난했다. 지금은 벤츠를 타는 아빠는 부유하고, 스파크를 타는 아빠는 가난하다고 평가한다. 내가 벤츠를 타던, 스파크를 타던 그건 내 자유이다. 비싼 차를 타면 승차감도 좋고, 운동성도 좋다. 시내 주차도 편하고, 기름도 덜 먹는 경차 마티즈도 좋다. 내 발은 지금껏 250mm라는 한 사이즈로 평가를 받았다. 이제는 발볼로 좀 더 큰 자유를 얻었다. "발란스"는 그렇게 찾아왔다. 내 발은 250mm, 발볼은 D이다. 이제 내 발은 좀 더 편하게 걸을 수 있게 되었다.


P.S 본 원고는 뉴발란스로부터 일체의 원고료를 받지 않았으며, 내 돈 주고 산 100% 리얼 신발입니다. 이 글은 뉴발란스에 대한 사용후기가 아닙니다. 내 발이 "뉴발란스"를 만나면서 좀더 편하게 살 수 있었다는 일종의 수필입니다. 그리고 죽기 전에 꼭 1번쯤은 "나이키"를 살 겁니다. 그 땐 아내의 동의를 구해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신발을 살 겁니다. 그 때 또 신발에 대한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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