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어둔 일기들을 꺼내다
취업 준비가 길어질수록 겁나는 건 가족과 보낼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아니, 가족과 지내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게 두려운 건가.
부모님의 시간은 나의 1년과는 다르다. 빨리 내 인생의, 우리 가족 이야기의 다음 장이 왔으면 좋겠다. 내가 돈도 벌고, 은퇴한 부모님과 여행 다니고,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 이 터널이 빨리 끝나길.
아빠와 이별했을 때 내 나이는 서른이었다. 아빠와 엄마는 고작 57세, 만으로는 55세. 무엇이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나이였다.
서른에 접어든 내 또래들은 아마 많이들 경험했을 거다. 문득 내려다 본 우리 부모님 얼굴의 볼살이 너무 패여 있어서 당황했을 경험. 대신 주름은 많아졌고, 몸은 또 왜 이리 왜소해졌지? 나만 커졌어?
아빠도 건강했던 시절이 있었다. 아빠는 좀 많이 활동적인 딸을 위해 매주 주말 등산, 자전거 타기, 축구, 농구로 딸을 놀아줘야 했다. 내가 커서 기억하는 아빠는 숨만 쉬기에도 벅차고 얼굴은 노랗게 떠있는 모습인데. 그랬던 시절도 있었다. 꼬꼬마 초등학생이던 나보다 (당연히) 배드민턴을 훨씬 잘 쳐서 내가 어디로 공을 날려도 휙휙 다 받아줬다, 같이 등산 갔다 내려오는 길엔 아빠 팔 하나에 내 몸을 온전히 의지해 사뿐사뿐 뛰어내려 왔다.
나는 점점 더 튼튼해졌고 키도 크고 어깨도 넓어졌는데, 아빠는 그렇지 않았다. 간이 망가져서 2013년엔 간이식 수술을 받았다. 그 이후론 엄마와 건강 회복에 전념해 봤지만 원인 모를 폐가 딱딱해지는 병에 걸렸다. 폐 섬유화 현상이라고 한다. 아빠가 “이제 안되겠다”며 희망의 끈을 놓으려던 때 기적처럼 2019년 말 폐이식을 받았다. 이후 아빠와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은 약 1년이었다.
아빠가 아프게 된 후 아빠와 보낼 시간이 많아졌다. 청소년기에 한껏 어색해진 부녀 관계가 아빠가 아프고 나서야 조금 회복된 거 같다. 둘이 산책도 가고, 드라이브도 가고, 같이 저녁도 해먹고 함께 하는 시간이 늘고 대화도 늘었다.
하지만 그 시기의 난 늘 불안하고 자존감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취업 준비생이었다. 내 미래가 불확실한 가운데 아빠와의 시간이 얼마 안남았을 수 있다는 생각은 나를 더 초조하게 했다.
아빠와 시간을 더 보내야 한다는 강박이 큰 부담이 돼 나를 짓누르기도 했다. 친구들은 취업 후 회사 생활, 연애 등 자신만의 문제로 고민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난 어딘가 소속되지 못한 채 가족 곁에만 맴돌고 있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기록해두고 싶었다. 누군가의 병실 옆, 누군가의 부엌, 누군가의 외로운 방 속에서 이 책이 조용히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