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온 신경이 아빠 기침 소리에 가있던 시간

우리 가족에겐 트라우마가 있다

by 염소

<편집자주>

2017~2021년 내 일기는 멈춰있던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취업 관문에서 난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제2의 인생을 열렬히 꿈꾸던 아빠는 병세로 주저앉았다. 아빠는 내 기억 속 꽤 오래 전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간 이식을 받고 건강히 좀 살아보려 하니 이번엔 폐가 굳어갔다. 나는 집, 독서실, 병원을 오가며 매일 아빠와 함께 식사하려 했다. 아픈 아빠와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보내려 한 착한 딸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 시간이 힘들었다고 고백하는 이야기에 가깝다. 가정, 특히 아빠에 헌신적인 엄마를 보면서는 나는 저리 살지 않겠다 다짐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가장 안쓰러운 건 아빠였다. 서로가 안쓰러워 보기 힘들면서도 함께 시간을 보내려 발버둥치던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내 일기로 꺼내 본다.



2018년 4월 22일


모든 바쁜 일이 끝난 18일, 간만에 마음이 편한 상태로 잠이 들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들리는 곡소리.


처음엔 위층에서 들리는 소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내 방문 아래 틈 사이로 불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우리 집 소리다. 엄마 아빠가 맞은편 안방에서 불을 켜고 있나 보다. 왜 깨어 있지? 아빠가 또 아픈 걸까? 심각한 걸까?


나가 봐야 하는데 너무 무서워서 심장이 쿵쾅거렸다. 갑자기 위가 쓰린듯 아파왔고 몸을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1분 넘게 이 상황을 회피하다 결국 일어섰다. 빛이 새어나오는 안방 문을 여니 아빠는 앉아있었고 엄마는 누운 채로 팔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엄마의 이석증이 재발한 것이었다. 이석증은 귓속 돌이 제자리에 있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중심을 잡지 못하게 하거나 급성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질병이다. 겪는 본인은 몹시 괴로운 증상이지만.. 난 안도의 숨을 쉬었다. 이전에도 이런 적이 있어서 놀란 가슴을 쓰러내리며 엄마에게 빨리 약을 먹이고 함께 응급실로 갔다.


엄마의 곡소리였는데도 나는 아빠부터 걱정하고 있었다. 아빠의 건강은 어릴 적부터 트라우마로 남아있나 보다. 집안에서 무슨 심각한 대화가 오가는 낌새가 보이면 '혹시 아빠 건강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자동으로 신경을 곤두세웠다.


어릴 적엔 아빠가 술만 마시고 들어오시면 어디 다치시는 건 아닌지(실제로 피투성이가 돼 들어오신 적이 있고, 그 후유증은 꽤 컸다) 걱정됐고, 아빠가 늦게 들어오시는 날엔 엘리베이터 소리까지 다 들을 정도로 잠을 못잤다.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살던 집은 엘리베이터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복도 끝집이었는데도 그랬다.


아빠가 늦게 들어오는 날은 엄마가 날밤을 지새우는 날이다. 아빠는 타고나길 몸이 약해서 술을 마시면 안된다며 하염없이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언제 올 거냐, 이제 진짜 출발했냐. 계속 전화를 걸었고, 아빠의 부재중 통화음은 내 방까지 전해졌다. 아빠 목소리 대신 흐르는 무한 반복 신호음에 내 심장은 더 조여왔고, 잠이 더 달아나곤 했다.


근데 아빠는 이제 술을 안드신다. 아니, 마실 수가 없다. 기어코 이 지경까지 마셔 온 아빠가 참 이해가 안된다. 근데도 가끔 기분 내고 싶은 연말이나 가족 생일 땐 와인 한 잔 하자고, 한 잔 정도는 괜찮다고 웃으시는데. 아빠 몸에 어떨진 몰라도 그 소리를 듣는 나와 엄마의 심정은 어떨지를 아빠는 먼저 생각해야 한다.


내가 술을 싫어하는 이유는 하나다. 건강을 해치니까. 그리고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가족들을 걱정시키면서까지 즐겨야 할 취미란 없으니까.


아빠의 숨 막힐듯한 기침 소리, 심각한 톤으로 오가는 엄마 아빠의 대화. 이 집에서 나를 긴장하게 하는 것들이다. 아빠의 건강에 우리 가족은 모두 트라우마가 있다.


다시 엄마의 이석증으로 돌아오자면, 그날 새벽 엄마는 나와 응급실에서 서너시간 정도의 치료를 받고 돌아왔다. 엄마는 절대 아플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도 많이 약해졌나보다. 이석증의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스트레스성이라고 알고 있다. 집안일에 매일 일까지 나가시니 체력적으로 힘들 수밖에.. 이젠 엄마 건강에도 더 신경을 써야겠다.



현재


그해 5월 난 어딘가 취업을 했다. 원했던 기자 일은 아니었지만 어딘가로 출근하고, 퇴근하고, 집에선 온전히 쉬는, 그런 평범한 루틴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학생-직장인'으로 가는 길에서 샛길로 새 버린 내 삶이 비로소 오랜 시간을 돌아 '정상' 궤도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아기 캥거루나 다름 없던 내가 부모님 앞에서 '어른 행세'를 할 수 있게 됐단 사실에 들떴다. 합격 소식을 듣자마자, 엄마 아빠를 맛있는 식당에 모시고 가고 내가 카드를 긁고 나오는 장면을 상상했다.


최종 합격 소식은 아빠에게 가장 먼저 전했다. 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아빠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일단 들어가는게 맞겠지? 그치?" 묻는 내 말에 아빠는 그저 기뻐했다. 일단 내가 마음고생을 끝낼 수 있단 사실에 마음을 놓았을 거다. 그리고 빨리 놀라고 했다. 그날 아빠와 나는 단둘이 즐거운 저녁 식사를 했다.


하지만 나는 3주 만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회사에 꽤나 잘 적응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말이다.


취업이 당장은 기뻤으나 나는 나의 취업을 '취업 성공'이기보다 '기자 준비 실패'로 정의했다. 사실 기자에 엄청난 동경을 가진 건 아니었다. 그래도 아쉽고 미련이 남는 건 언론고시 준비의 경험이 '실패'로 남아 평생 내 자신감을 갉아먹을까봐였다.


다시 지옥같은 백수 생활로 돌아가면서 나는 반드시 지켜야 할 세가지를 일기에 적고 다짐했다.


첫째, 절대 후회하지 않기. 이 길이 아니면 어차피 만족하지 못하나. 이게 최선의, 최상의 선택이고 불가피했다는 점을 기억하자.


둘째, 부모님에게 미안해하지 않기. 내 인생이다. 모두 날 위한 일이다. 부모님에게 죄송할 필요가 없다. 다만 지원과 지지에 늘 감사하고 죄책감 대신 웃음으로 보답하자.


셋째, 6개월 간은 다른 회사 생각하지 말고 언론사 준비에만 집중하자.


나는 100번을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고 실제로 후회는 없다.


하지만 내 취준기는 그 뒤로도 한참이나 이어졌고, 결국 가족들에게 죄책감 가지지 말자던 그 다짐은 오래 가지 못했다. 가족들은 나를 안쓰러워 했다.


그렇게 나와 우리 가족의 기나긴 터널이 다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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