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고 싶었던 시간
2025년 현재 난 자취를 시작해 혼자 살고 있다. 2019~2021년 내 일기엔 집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이 한가득 적혀있다. 타인에게 침범당하지 않는 내 공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드는 것조차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죄책감이 함께 공존한다. 나는 방이라도 있지 엄마에겐 엄마만의 공간조차 없었다. 가족은 적당히 같이 있고, 적당히 따로의 삶이 보장돼야 하는데 환자의 가족을 그러기 어렵다.
주변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사는 사람은 멋있다. 주어진 조건과 환경을 탓하지 않고 거기서 벗어나려 하거나 바꿔보려 하는 주체적인 삶, 정말 어렵고 멋지다.
A 언니가 그렇다. 언니의 아버지는 가부장적인 거 같다. 늘 아빠라고 부르지 않고 ㅇㅇ(고향 지명) 아재라고 불렀다. 가족이란 이유로 반드시 함께 갈 필요가 없다고 언니는 생각했나 보다. 입원한 아버지의 병문안을 가 눈싸움으로 대치 상황을 펼치고, 이제 오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아이고~ 아빠가 오지 말래서 난 이제 못오겠네~’하며 병문안도 한번으로 끝났다고 한다. 언니는 마음이 맞는 친오빠와는 늘 우애를 다지고 고민도 나누고, 부모님 뒷담도 간간히 하며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확실히 구분하는 거 같다. 스스로를 낮추거나 바꾸지 않았다.
그 결과가 오늘 집들이한 언니네 남매의 집인 거 같다. 남매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워놓은 집이다. 그릇 하나, 컵 하나 고민하지 않고 고른 게 없어 모든 게 스마트했고, 청소, 부엌 식기 살균, 위생 규칙 등이 철저히 돌아갔다. 내게 가장 완벽하게 맞는 환경과 조건을 만드는 그 첫걸음이자 소기의 성과가 바로 그 집인 듯 했다. 평범해 보이는 집일 수 있지만 내겐 모든 게 대단해 보이는 집이었다.
지금 언니의 주변도 모두 언니가 쟁취한 거다. 느지막이 대학원 진학을 결정해 좋아하는 공부를 시작했고, 시행착오 끝에 언니를 지지해주고 존중해주는 남자친구를 만났고, 쏘울메이트 친오빠와는 둘이 독립해 나와 지금 상황에 딱 적합한 가족 환경을 만들었다. 그 과정이 절대 쉽지 않았을 것도 안다. 연애로 힘들어 한 시기도 있었고, 언니의 현명함과 능력을 알아보지 못하는 회사들로 취업 고민도 했고, 가족과는 또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었던가. 언니를 찍어누르고 예민하게 살지 말라는 수많은 깎아내리기들이 있었지만 언니는 항상 잘 헤쳐 갔다. 적극적으로 변화시키거나, 필요 없으면 버렸다. 그 적극적인 의지의 힘이 지금의 언니를 만든 거 같다.
갑자기 이렇게 A언니 예찬론을 늘어놓는 이유는 나에 대한 반성 때문이다. 가족들의 사고방식, 생활 방식이 마음에 안들어도 나는 한번이라도 바꿀 노력을 했는가.
은행원 아빠와 자식 생각이 끔찍한 우리 엄마, 학벌 좋은 남동생, 이 안정적인 가족의 틀을 벗어나 뭔가 개척해보려고 했던가. 이 안락함을 도박에 걸긴 아쉽다는 생각에 가사 노동 독박쓰는 엄마, 집안 문제엔 일절 관심없는 동생, 모든 걸 엄마에게 의지하는 아빠, 비정상적인 질서를 바꿔보려는 시도조차 안했다. 오늘 아침에도 난 엄마의 걱정을 덜어주고 싶단 마음으로 결국 동생 아침을 차려주고 나왔다. 아침부터 고기 굽고 쌈까지 씻어가며 말이다.
딸 역할에 내가 사라져선 안되는데, 가족들을 설득하거나 외면하면서 내게 최선인 환경을 찾아가는 길이 두렵다. 두려운 일이 맞다. A언니는 몇년이 걸린 일이니까. 그 과정에서 예민한 애 취급 받을 거고, 이기적이란 소리도 들을 거고, 현실 감각 없단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어린애다.
독립, 가족이 내게 준 환경과 생활 방식에서 벗어나고 나만의 환경을 구축하는 일이 아직 내겐 먼일이다. 난 내가 엄청난 신념과 가치관이 형성된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거 같다.
어제는 아빠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날이었다.
민수(남동생 가명) 주려고 볶음밥을 만들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 머릿속 혈관 하나가 '툭'하고 끊어지는 기분이었다. 당장 설거지하고 있던 프라이팬을 바닥에 내동댕이 칠 뻔했다. 그냥 소리를 질렀어야 했나. 참고 참아서 목소리를 한껏 누른채, ‘그게 중요해? 아빠 밥이나 빨리 먹어’라고 말했을 때 아빠도 내가 화난 건 눈치챘겠지만 아마 진짜 내 분노의 새발의 피만큼이었을 거다.
난 아빠를 이해하려 했다. 하루종일 손 하나 까딱 안하고 방에서 유튜브 보고, 점심·저녁도 애기 그릇 양의 팥죽을 조금 나눠 먹는 걸로 끝내서 이미 난 혈압이 올라있었지만, 아빠는 몸이 힘드니까 말이다.
저녁 팥죽을 세 숟가락으로 끝내려 해서 나는 샐러드를 먹다 말고 화를 꾹꾹 누르며 오리고기를 해주겠다고 했다. 바로 오리고기를 쪄서 밥을 차렸는데 아빠는 한시간을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래, 그 정도로 몸이 힘든가보다, 기다리자, 참자, 아빠가 종일 생산해 놓은 거실 위 쓰레기를 치우고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를 하며 기다렸다.
아빠는 밤 9시가 돼서야 창백하게 힘 하나 없는 얼굴로 방에서 나왔다. 그러더니 내가 설거지하던 프라이팬을 꺼내 들었다. 왜 그러냐 했더니 곧 집에 올 민수에게 볶음밥을 해줘야 한단다.
욕이 나올 뻔했다. 어이가 없어서. 그 힘으로 아빠 밥이나 먹을 것이지 누구 밥을 해준다는 걸까. 아빠랑 있는 나는 종일 밥 차리기에 설거지, 빨래, 스트레스가 쌓여만 가는데, 내가 차려놓은 밥도 안먹을 거면서 누구 밥을 챙긴다는 걸까. 아빠가 내 밥은 챙겨준 적 있었나? 나는 몇 년을 친구들 사이에선 맨날 아빠랑 저녁 먹어야 한다고 약속도 안나가는 애가 됐는데, 누구 밥을 챙겨?
엄마에겐 미안하지만 난 독립을 해야겠다. 꼭 이 집 나간다. 진짜 아빠는, 그 정도로 두 여자가 고생하는 걸 반의 반이라도 알고 있으면, 하루의 목표를 건강히 삼시세끼 챙겨먹는 걸로 잡고 피나게 노력해야 한다. 배가 안고프면 나가 뛰어서라도 배고프게 만드는 걸 하루의 중요한 일과로 생각해야 한다.
저렇게 의지박약에, 뭐가 중요한 건지도 모르고, 주변을 조금도 배려할 줄 모르는구나 실망스러웠다. 어제 그 한마디가 나한테 준 충격이 너무 커서 한동안 아빠를 이전처럼 대하지 못할 거 같다.
자취를 할까, 말까?
혼자 살아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확신이 안선다. 지금 이 시기에 혼자 몸만 쏙 나가는 게 괜찮을까. 엄마 아빠 핑계를 빼고, 지금 내 멘탈은 균형있는 혼자 라이프를 살기에 충분히 건강한가. 어딘가에 투자할 수 있는 종잣돈을 그대로 전세에 박아두는 게 낭비는 아닐까.
내가 자취하고 싶게 만든 사람들은 A언니와 B언니다. 두 언니는 검소하고 생활의 지혜, 자신만의 라이프 스타일이 확고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필요없는 건 비우고, 주변을 좋아하는 것들로 채울 수 있는 사람들이다. 집에서부터 그게 드러난다. 대단히 좋거나 비싼 물건 없이도 이 사람 취향과 안목이 참 마음에 든다는 생각이 들게끔 한 집이다. 공간은 사람과 분리할 수 없다. 맑고 건강한 정신이 깃든 사람의 집엔 그것이 묻어난다.
친구 C네 집도 로망 그 자체다. C의 멋진 안목과 취향에 물질적 플렉스까지 더해 럭셔리 자취 라이프의 끝판왕을 보여준다. 너무 좋지만 내가 할 순 없는 것들이긴 하다. 그런 집 있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이 있음 좋겠다, 놀러가게ㅎㅎ
그리고 자취를 망설이게 한 집은, 미안하지만 D네 집이었다. D의 집은 신축이라 깔끔 그 자체에 아래엔 좋은 카페도 있고, 집엔 큰 TV, 빵빵한 오디오, 좋은 향기 나는 제품들까지 있다. 하지만 D가 ‘임시로’, 정주지 못하고 머무르는 곳이란 느낌이 강했다.
애초에 이런 집 따위 원치 않았다는 부정적인 생각 때문인지 집에 ‘D‘가 없었다. 직장만 아니었음 이런 곳에 살지 않았을 거라는 신세 한탄과 현실적인 고민들,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려 하기 보단 남들이 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들을 채워 넣으며 탐닉적인 찰나의 만족만 좇고 있는 마음이 집에도 반영됐다.
물론 D만의 탓은 아니었다. 실제로 집이 작아서 요리를 해먹으며 돈을 아껴보기엔 한계가 있었다. D는 원래도 요리를 하지 않아서 침대에 냄새 배이게 요리를 할리가 없다.
나는 어떨까. 내 안의 게으름이 커지는 자취 생활일까봐 걱정도 있다. 지금의 집은 좀, 많이 많이 좁지만 내 방의 가로 80cm짜리 책상에서 많은 것들을 한다. 작지만 따뜻하고, 깨끗하게 관리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나가면 무조건 좋을 거라는 장밋빛 전망은 버려야 한다. 매일이 세탁과 건조, 삼시세끼, 머리카락과의 싸움일지도 모른다. 물과 휴지는 모두 줄줄 새는 돈이고, 돈 모을 틈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가고 싶은가 물어본다면, 일단은 그렇다. 하지만 난 결국 나가지 못하겠지..
고민만 많고 행동으로는 옮겨지지 않는 답답한 날들이다.
오늘도 부동산 앱을 보기만 하고 아무것도 못했다. 지난주 일기도 자취 고민이었네. 이건 거의 뫼비우스의 띠다.
오늘 점심을 먹다가 부모님과 드라이브 다녀온 얘기를 했더니 상대방이 놀라며 물었다. “부모님이랑 드라이브를 간다고요?”
정말 그렇다. 내 주변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은 가족들이랑 이렇게 다니지 않는다. 1년에 한두번 해외여행 다녀오는 정도? 나는 매주 어딘가를 엄마 아빠와 나가지 않으면 죄책감이 든다.
추워서, 아파서, 갈수록 꼼짝않는 아빠를 보면서 엄마도 속병이 들고 있다. 그나마 내가 의지가 되는 상태라는 게 느껴진다. 엄마는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지만, 난 엄마처럼 강하고 모두를 책임지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 그런 삶은 너무 피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