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환자 가족의 끝없는 돌봄 노동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까지 헌신할 수 있을까

by 염소
엄마는 딱 2박3일만 템플스테이를 가고 싶다고 했다. 가족들 끼니가 걱정돼 외출도 잘 안하는 사람인데, 2박3일의 외박이ㅏ니. 엄마로선 엄청난 '일탈적 상상'이다.

엄마의 이 상상을 항상 지지해왔지만 그때는 그럴 수 없었다. 엄마 없는 우리집을 상상할 수 없다. 나는 엄마에게 쉬라고 말해주지 못했다.



2020년 2월 26일


아인슈타인은 아내게에 결혼 생활 유지를 위한 몇가지 조건을 내걸었다고 한다.


세끼 딱 맞춰 방으로 들고 오기. 빨래와 옷 관리. 정리정돈은 깨끗이.


그리고 정상적인 관계는 일절 요구하지 말 것. 함께 외출하고 식사하고 여행하고 대화하는 그 모든 행위를 포함한다.


"미친놈"... 이 정도로 여자 부려먹고도 살면서 그 정도 업적도 못세우면 등신이다.


엄마는 일을 그만두겠다고 완전 마음을 먹은 거 같다. 아빠 간호와 일을 병행하기가 너무 힘들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러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일을 그만두면서까지 아빠 건강을 위해 ‘희생’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거라면, 제발 그만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는 '엄마가 일을 해서' 아빠 건강이 안좋아졌다고 거의 확신하다. 10년도 더 전에 들은 미친 사주풀이 때문이다.


그 점쟁이는 엄마가 돈을 벌려고 할수록 아빠의 운은 나빠질 거라고 했단다. 돈 벌지 말고 그냥 아빠가 벌어다주는 돈으로 뭘 배우기만 하라 했단다.


사주풀이는 늘 남성중심적이다. 아내가 일을 하면 남편의 운이 안좋아진다? 아빠는 평생을 엄마에게 의존하며 살아왔다. 엄마는 아빠가 끼니를 못챙겨 먹을까봐 여행은 물론 외출도 마음대로 하지 않았다. 양말 하나 빠는 것까지 아빠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엄마가 외출하며 끼니를 챙겨 먹으라고 다 차려놓고 당부해도, 아빠는 결국 시위하듯(본심은 아니더라도 결과적으론 그렇게 보인다) 아무것도 먹지 않아 엄마의 죄책감을 유발했다. 1부터 10까지 케어해주던 엄마가 집안일에 아주 조금만 소홀해지고 바깥일을 나가면 아빠의 건강은 불균형해질 수밖에 없다. 근데 이게 엄마 탓 맞아?


게다가 지금 상황은 아무리 봐도 ‘엄마가 아빠의 직장운을 해치는’ 게 아니라 ‘아빠가 엄마의 직장운을 해치는’ 상황이다. 아빠가 아프니까 엄마가 일에 집중을 못하고 그만둬야 하는 상황에 왔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엄마의 지금 직장은 정년 보장되고 일의 강도가 세지 않으며 돈도 적당히 버는, 지금 엄마 나이에 구할 수 있는 최적의 직장이다.


누가 누구의 운을 방해한다는 걸까. 사주에 ‘남편이 돈을 잘 벌수록 아내의 직장운이 나쁘다’는 식의 풀이는 존재하지도 않을 것 같다.


지금 엄마를 무슨 말로도 설득할 수는 없을 거다. 죄책감이 내면화됐기 때문이다. 엄마의 모습을 보며 문득 머리를 맞은 듯 했다. 내 미래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나에게도 착한 딸 콤플렉스가 있다. 취업 준비 하는 동안 아빠의 저녁을 차려주지 않는 날엔 늘 죄책감이 들었다. 엄마가 나를 ‘우리집 제2의 엄마’로 만드는 데 대한 반감이 컸지만 결국엔 엄마가 힘들지 않게 하려면 아빠와 민수(남동생 가명)가 하지 않는/못하는 일은 내가 해야 한다는 결론에 수긍했다.


내 이상형은 단 하나다. 날 저런 죄책감에 빠뜨리지 않을 남자다. 내 욕심껏, 이기적으로 나 자신을 온전히 살아도 날 응원해줄 남자. 없으면 말고다. 특히 오늘같은 날엔, 역시 혼자 사는 게 답이란 생각이 확고해진다.



2020년 3월 30일


평범한 하루에 감사함을 느낄 때가 있다.


주말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대충 아침 떼우고, 또 다시 침대로 가서 뒹굴뒹굴 잠을 청하다가, 가족들과 함께 차를 끌고 나가서 드라이브 겸 늦은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일상. 오늘 나의 하루는 그렇게 평범했다.


겉보기엔 말이다.


그 평범함을 위해 엄마는 마치 백조의 발처럼, 아주 바쁘게 숨은 노동을 해야 했다.


우선 아침 일찍부터 아빠 아침을 챙긴다. 그냥 ‘챙긴다’ 수준이 아니고 정성스레 영양 잡힌 반찬들을 요리하고, 아빠를 수십번 불러서 깨우고, 깨작거리는 아빠에게 잔소리도 열번쯤 하고, 결국 한시간 넘게 먹고도 남은 음식을 보며 ‘이렇게 먹어서 무슨 살이 찌겠냐, 어디 놀러를 가겠냐’라며 속상함 담긴 푸념을 늘어놓는 모든 과정이 포함돼 있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 눕는 아빠에게 '나가서 운동은 왜 안하냐'는 잔소리까지 날린 엄마는 이제 호박죽을 만든다. 호박 서너개를 숟가락으로 파서 믹서기에 갈아 더운 불 앞에서 죽을 쑨다. 그 사이 한번 헹군 세탁기가 울리면 섬유유연제를 넣고 한 번 더 돌린다. 주말 아침에 이 모든 과정을 들으면서 내가 개운하게 자긴 어렵다.


그렇다, 평범하지 않은 나날의 연속이다. 엄마는 어젯밤 나와 산책을 하며 딱 2박3일만 템플스테이에 다녀오고 싶다고 했다. 누가 들으면 유럽 한달 여행도 아니고 뭐가 어렵겠나 하겠지만 우리집에선, 불가능하다.


난 일주일에 두세번 아빠와 저녁 차려 먹는 것에서조차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제 점심 스터디 모임에 나가기 전에 아빠 점심을 차리는 데도 계속 화가 났다. 나는 바빠서 점심도 안먹는데 아빠 오리고기는 구워드려야 한다. 물론 아빠가 시킨 건 아니고 매우 고마워하신다..


근데 아빠는 이걸 맛있게 드시지도 않는다. 나는 구운 오리고기를 식탁에 차리고, “운동 다녀와서 먹을래?”, “벌써 두시야”, “이제 먹어..” 밥 먹으란 잔소리를 다섯번은 했다. 못먹는 아빠를 보며 나도 위가 아파져서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엄마가 집에 있으면 난 아빠가 뭘 드시는지, 운동을 나가시는지, 신경을 오프(off) 해버린다. 도저히 계속 신경을 쓰고 있을 수가 없다. 하지만 엄마는 항상 ‘온(on)’ 상태다. 오프일 때가 없다. 오늘 다같이 외식을 가서도 아빠는 한번도 직접 쌈을 싸먹지 않았다. 전부 엄마가 싸줬고, 볶음밥을 두고 ‘다 먹으라’는 잔소리를 반복했다.


잔소리는 정말 힘든 일이다. 내 일만 신경쓰는 게 아니고 타인의 생활을 감시하고 계속 개입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잔소리 하는 사람은 쉽게 병들 수밖에 없다. 늘 엄마의 건강이 걱정되는 이유다.


그래도 난 엄마가 템플 스테이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선뜻 그러라는 용기를 못냈다. 3일이나 엄마가 없는 집은 상상이 안돼서다.


각자가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삶이 얼마나 평범하고 소중한 건지, 아빠가 간 이식을 받은 이후 수년 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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