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병원은 절대 사과하지 않는다

말 한마디가 천냥빚을 갚는다는데

by 염소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실수해도 사과를 하면 된다. 우리가족이 바란 건 거창한 게 아니었다. 왜 병원은 환자와 충분히 소통해주지 않고 이리도 마음을 상하게 하는 걸까.



2020년 3월 18일


누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는지, 치열하게 잘잘못을 따지는 진흙탕 싸움은 대부분 ‘사과 한마디가 없어서’ 시작된다.


지난주 그렇게 숨 쉬기가 힘들어 고비를 넘긴 아빠는 결국 기관지에 관을 삽입하기 위해 강남 B 병원까지 힘들게 갔다. 그런데 시술도 못받고 돌아왔다. B 병원은 아빠가 관을 삽입할 필요 없이 약물 치료만 잘 받으면 된다고 했다.


황당했다. 수술이 필요하다 했던 여기 A 병원 담당 교수님은 "사진 찍을 때 기관지가 좁아져 있어서 잘못 찍힌 거 같다"고 판단 미스를 인정했다. 고작 사진 탓이라니… 아빤 며칠 간 죽을 만큼 힘든 고통을 겪었는데.


의사의 진단을 믿을 수 없던 게 이번만은 아니었다. 지난주 상태가 악화되기 전부터도 아빠는 계속 숨쉬기를 수술 전만큼이나 힘들어했다. 그런데도 의사 소견은 ‘별 이상 없다’는 거였다. 혹은 폐가 아닌 부정맥이랑 약물로 인한 신장 손상이 문제라고 했다. 하지만 부정맥을 잡고 신장 치료가 진행돼도 숨쉬기 어려운 건 여전했다.


엄마가 담당 교수님에게 진찰 좀 해달라고 사정, 사정했다. 결국 교수님는 청진기로 폐를 들여다봐주셨다. 그런데 진단이 충격적이었다.


왼쪽 폐가 쪼그라들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기관지 관 삽입 수술을 해도 완전히 회복하긴 어려울 수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사람의 폐가 어떻게 하루 만에 쪼그라들 수 있나. 아니, 그 전부터 증상 악화가 그렇게 뚜렷했는데 왜 청진기 한번을 대지 않은 걸까. 그 쉬운 거 한번을, 왜 보호자가 부탁, 부탁, 하게 한걸까.


어쨌든 아빠 상태는 보이는 것뿐 아니라 실제로도 악화된 걸로 판명났고, 우리 가족은 힘든 주말을 보냈다. 잠 못자고 아빠의 고통을 함께 견뎠다. 그렇게 월요일 수술만을 기다렸는데, B 병원의 대답은 애초에 수술이 필요없었다는 거다. 그리고 실제로 간단한 약물치료만으로 아빠의 상태를 호전시켰다.

허무했다. A 병원은 대체 제대로 하는 게 뭐지 싶었다. 환자 상태를 제대로 모니터링하긴 하는 걸까. 한두번이면 이렇게 울분을 토하진 않을 거다.


엄마가 폭발한 건 그 다음 상황이었다. 오늘 아침 아빠가 강남의 B 병원에서 강북 집 근처 A 병원으로 먼 길을 앰뷸런스 타고 이송돼 왔는데, B 병원에서 아빠를 어디로 옮겨야 할지 물었다. 그래서 엄마가 A 병원에 물어보려 전화했더니 ‘수술했으니 중환자실에 가야 하는데, 중환자실이 다 찼으니 새로 만든 응급실 내 (유사) 중환자실로 가야 한다’고 했다.


무슨 말일까. 아빠는 수술도 안했고, 하루 만의 약물 치료로 상태가 엄청 좋아졌는데 중환자실이라니… 중환자실만 가면 상태가 악화돼 돌아오는 아빠를 다시는 거기 보내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간호사분이 잘못 알고 계신 거 같다고 확인을 부탁했으나 그 뒤로 전화가 오지 않았다. 결국 우왕좌왕하던 중 B 병원 측 앰뷸런스는 아빠를 사람 북적북적한 응급실로 이송했다. 폐 이식 환자는 감염에 가장 취약한데 응급실이라니. 연락 안되는 담당 교수와 주치의 때문에 아빠는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일반 병동으로, 이동을 거듭해야 했다.


자신들의 잘못된 진단으로 환자가 먼 강남 병원까지 갔다 왔는데, 환자가 다시 오든 말든 신경조차 써주지 않았다. 아빠가 병실로 돌아오고도 한참이나 주치의는 오지도 않았다.


엄마는 정말 화가 났다. 왜 아무도 보러 오지도, 설명도 안해주냐고 간호사실에 가서 따졌다. 간호사들은 엄마를 비이성적인 보호자 취급하며 흥분하지 말라고, 주치의는 다른 환자를 보고 있어 바쁘다고만 했다.


별수 없이 돌아서 병실에 가보니 마침 주치의가 아빠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숨 쉬어보세요, 내쉬어보세요’ 딱 두마디 하더니 진료를 끝내고 또 그냥 가려했다. 엄마는 주치의를 불러 세웠다. 그게 다냐고, 왜 아무 설명이 없냐고 물었다. 주치의는 ‘진정하시고요, 저희도 파악하러 온 겁니다’ 했다.


엄마가 듣고 싶은 건 거창한 설명이 아니었다고 한다. “환자분, B 병원까지 갔다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보호자분들도 고생하셨어요”


혹은, “이런저런 문제로 힘들었는데, 지금 보니 숨쉬는게 나아졌네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치료할 지 다시 안내드리겠습니다” 등. 대단한 걸 바란 게 아니었다.


다른 환자를 보고 왔다는 변명도 이해가 안된다. 아빠만큼 시급하게 의사가 봐야 했을 환자가 100명은 됐나? 의사는 기계가 아닌데, 아침 공장 기계 돌아가듯 회진을 돌고 있다. 아빠같이 힘든 상황의 환자가 병원의 거듭된 실수와 판단착오로 여기저기 돌림 당하다 왔으면, 먼저 와서 얼굴이라도 비추고 설명을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그 와중에 엄마를 비이성적 보호자 취급 하는 것도 참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너무 많이 참았다.


말 한마디가 천냥빚을 갚는다고 했다. 하물며 환자의 생명을 쥔 의사의 말 한마디가, 정보가 충분치 않고 의학적 지식이 없어 적극적으로 뭔가를 요구할 수도 없는 무기력한 환자와 보호자에겐 얼마나 소중할지, 의사들은 그것부터 배워야 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