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폐이식만 하면 다 좋아질 줄 알았는데

환자와 가족에게 평범한 하루는 없다

by 염소
모든 게 좋아질 줄 알았지만 회복은 더디기만 했다. 아니, 이전과 다를게 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아빠의 삼시세끼 끼니와 외래 진료 통원을 돕기 위해선 돌봄 인원이 5명쯤 필요했다. 가족이 없는 환자는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2020년 2월 4일


평범한 사람들에겐 별 거 아닌 일상이 환자와 가족에겐 매 순간이 커다란 미션이다.


예를 들면 지하철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병원 외래 진료 가는 일이 그렇다. 아빠는 엄마와 오늘 외래를 다녀왔고 내일도 가야 한다.


이른 아침 출근한 나는 엄마 아빠를 위해 아침에 한번, 오후에 한번, 카카오 택시를 불러드렸다. 아직 두분은 스마트폰으로 택시 잡기를 어려워한다. 두세걸음 걷고 쉬어야하는 아빠를 옆에 두고 자그마한 액정 속 지도를 이마 찌푸려가며 읽으며 도착 지점을 찍어내는 일, 택시가 어디로 언제쯤 오는지 확인하는 일, 내가 생각해도 엄마에게 어려운 미션이다.


특이한 아파트 단지 구조 탓에 기사님과 엄마 아빠는 엇갈렸다. 나는 회사에서 기사님과 통화해 가며 둘의 위치를 조율해야 했다.


엄마는 병원에 갔따가 바로 회사로 출근해야 했다. 병원에 남은 아빠를 위해 오후에 바통 터치해주신 분은 옆동에 사는 엄마 친구분, A 아주머니. 세시간이나 시간을 내 아빠와 함께 병원에 있어 주셨다.


아빠는 진료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서 A 아주머니가 힘들었을 거라고 걱정했다. 우리가족에겐, 특히 엄마에겐 익숙한 일이다.


가족없이 아프면 이 나라에선 그냥 죽는 수밖에 없겠구나 싶다.


걸어서 혼자 병원까지 갈 수 없는 환자를 퇴원시켜 놓곤 한 달이란 시간이 채 가기도 전에 벌써 예닐곱번은 불렀다. 심지어 그 사이에 2박3일 입원도 있었다. 지하철 두 정거장이지만 그게 환자 가족에겐 얼마나 힘든 외출인지 알기나 할까.


엄마가 집을 챙기지 못할 땐 A 아주머니나 A아주머니 친언니분이 우리집에 오셔서 아빠의 밥을 차려주고 가신다. 엄마의 탈인간급 헌신과 멀리 경상도에서 와주시는 삼촌들의 도움, A아주머니와 A아주머니의 친언니분, 그리고 나까지, 다섯명은 돌아가며 거들어야 아빠의 소박한 하루가 감당 가능했다. 그저 집에서 삼시 세끼 챙겨먹고 병원 외래 가는 일 말고는 아빠에게 다른 일상도 없는데 말이다.


엄마는 결국 오늘 이석증이 재발했다. 이석증은 엄마의 몸이 과부하에 걸렸다는 신호다. 엄마는 내일이 걱정이다. 혼자 걷기도 힘든 아빠가 내일 어떻게 병원에 가야 할 지 한숨을 쉬었다.


오늘 아빠와 저녁을 먹던 중 나는 아빠의 숨소리가 수술 전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거칠었다. 아빠는 숨을 좀처럼 깊게 들이마시지 못하고 목구멍까지만 들숨, 날숨, 빠르게 헐떡였다. 나까지 밥 먹는 내내 밥알이 목구멍에 걸리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결국 윗배에 음식이 얹힌듯 제대로 체해버렸다.


마치 수술 전 원상태로 돌아간 느낌이다. 몇 개월의 고생이 수포가 된 기분.


힘들었지만 아빠가 다시 건강한 제2의 인생을 찾을 수만 있다면 이쯤이야 얼마든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근데 저녁을 먹으며 허탈해졌다. 이석증에 어지럽다는 엄마, 체해서 손 따는 나, 방에서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워하며 간신히 침대에 앉아있는 아빠. 그 와중에 내일 외래 갈 일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우리 집안의 모든 우환과 근심 걱정은 절대 민수(남동생 가명)에게까지 새어나가지 않는다. 그 와중에 민수에게 아빠와 함께 병원에 가라는 말은 왜 아무도 안하는 거지? 이 상황이 대체 언제쯤 나아질까?



2020년 2월 23일


아빠는 최근 기관지 관 삽입 수술까지 했다. 그 수술이 정말 필요했을까 싶다. 수술을 받기 위해 며칠 외래 진료를 다녀오고 입원에 퇴원까지 해야 했다. 남들에겐 쉬워보일지 몰라도, 아빠에겐 얼마 안남은 에너지를 더 뺏어간 고된 과정이었을 거다.


무엇보다 수술 전과 다를 바가 없어서 당황스럽다. 똑같이 숨쉬는 게 고통스러워 보이고, 먹는 걸로 엄마 속을 썩인다. 그간의 아빠의 고통스러운 병원 생활도 그렇고, 엄마와 가족들의 노고도 물거품이 된 거 같다.



2020년 3월 15일


지난 토요일은 정말 멘붕이었다. 늦잠이나 자볼까 했던 주말 아침, 7시가 되기도 전 엄마는 이석증이 왔다며 날 깨웠다.


엄마는 최근 휴식이란 걸 취한 적이 없다. 어디 호캉스라도 혼자 보내주고 싶은데, 그럴 용기는 없다. 엄마는 출근하지 않는 수목금, 계속 병원에서 아빠를 간병했다. 토요일엔 삼촌도 집으로 돌아가야 해서 엄마가 꼭 병원에 가야 했던 날인데, 이런 날 엄마가 아파버렸다.


엄마와 대학병원 이비인후과를 갔다가 집으로 와서 기사를 쓰고, 이동 중 지하철 플랫폼에 걸터 앉아서도 기사를 쓰고, 부랴부랴 병원에 갔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멍 때리고 버스를 타고 있다 병원도 지나쳐 버렸다.


아빠의 상태는 생각보다 더 안좋았다. 아빠의 숨은 호흡 기계에 의존해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기계는 아빠를 고통스럽게 했다.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아빠는 3분에 한번씩 이걸 벗어 던지려고 했다. 손을 기계에 갖다 대는데 내가 아빠 손을 꼭 잡으면 또 참으려 했다. 아빠는 죽을 힘을 다해 아픔을 참고 있었다. 독감같은 것만 걸려도 나는 온몸이 아파서 어찌할 줄을 모르겠던데, 아빠는 이걸 하루종일, 며칠을 달고 버티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도 아빠 옆에서 같이 버티고 있다고 응원해주는 일밖에 없었다. 손을 꼭 잡고 몸 이곳 저곳을 주물러주며 밤을 버텼다. 나는 쪽잠 자며 엄마와 번갈아 가며 있다가 집에 왔다.


엄마는 집에 오지도 못하고 내리 이틀을 병원에 있었다. 지금의 상황은, 병마는, 우리 가족을 너무 힘들게 한다.


돌파구가 딱히 없다는 점이 두렵다. 나는 이 상황을 회사에 가면 잊고 회피할 수 있다. 엄마는 그렇지 않다. 간병인이 두명이나 못하겠다고 도망갔을 때도, 엄마에게 이석증이 왔을 때도, 회사 때문에 아빠와 외래 가줄 보호자가 없었을 때도, 그 밖의 답을 구하기 어려운 수만가지 상황에 엄마는 여러번 지쳤을 거다. 그 스트레스의 정도가 나는 상상도 되지 않는다.


아빠도 엄마도, 이 상황을 좀 더 버틸 수 있길, 그 기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