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폐이식 수술 여부를 내일까지 결정하세요"

저녁에 걸려온 한통의 전화

by 염소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사과 심기? 생각보다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 수술을 내일, 내 가족이 받아야 한다면?"



2019년 10월 31일


그저께 저녁 갑작스레 아빠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아빠는 밥을 드시다 말고 방으로 들어가 전화를 받았다. 아빠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다. 나는 일부러 듣지 않으려 밥을 입에 욱여 넣었다.


사람의 직감은 참 무섭다. 그 전화는 아빠에게 이식할 수 있는 폐가 생겼으니 수술 여부를 결정하라는 소식이었다. 결정은 오늘 밤 안에 이뤄져야 했고, 수술을 하려면 다음날 아침 바로 입원해야 했다.


아빠의 말을 들은 뒤 나는 저녁을 마저 먹으면서도, 먹고 나서도, 계속 눈물이 났다. 간 이식보다 훨씬 어려운 수술이고 아빠의 몸 상태도 너무 안좋았기 때문이다.


왜 하필 이 시기, 나는 인턴 정규직 전환 하나 떨어지고 혼자만의 동굴에 갇혀있느라 아빠를 신경쓰지 못한 걸까. 모든 게 원망스럽고, 아빠는 불쌍하고, 그 와중에 명예퇴직 못하고 죽을까봐 걱정이라는 아빠의 말이 너무 미웠다.


이렇게나 큰 결정이 하루 만에 이뤄진다니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우리가 종종 ‘만약에’하며 묻는 그 상황이랑 다를 게 없었다.


만약에, 살 수 있는 날이 단 하루라면 무엇을 할 거야?


의미없는 질문이다. 생각보다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차마 방엔 들어가지 못하고 거실에서 공부했다. 아빠는 방에서 다음 날 입원을 준비하기 위해 힘들게 숨을 몰아쉬며 샤워를 했다. 그리고 침대에 앉아 혼자의 시간을 가지셨다. 뭐라도 서로 말을 건네야 할 것 같고 같이 있어야 할 거 같은데, 또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야 했기에, 나는 그 와중에 시험공부를 했고, 아빠는 샤워를 했다.


문득 깨달았다. 하루가 남았다면 무엇을 할래?라는 질문에 무슨 대답을 하든 훗날의 후회를 줄여줄 순 없다. 지금껏, 최소 몇 달, 몇 년을 얼마나 잘 지냈느냐가 중요하지 당장 하루가 중요하진 않다. 왜 스피노자가 "내일 지구가 멸망한대도 나는 사과나무를 심겠다" 했는지, 다른 의미로 이해가 갔다.


나는 1년도 더 전부터 이 순간을 상상했다. 그리고 아빠와 최대한 많이 대화하고 함께 있으려 했다. 그걸로 충분했다.


엄마가 퇴근한 뒤 우리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결국 수술이 확정됐다는 전화가 왔다. 우리는 바로 병원으로 갔다.


병원 가는 길은 여느 날과 다를 것이 없었다. 나는 운전 중 몇 번이나 차선을 잘못 들어 엄마와 아빠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또 나는 내 실수에 변명을 했다. 비현실적인 순간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우리는 너무나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비현실적일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병원에 도착해 입원복을 갈아입고 아빠는 휴대폰 은행 앱에 들어갔다. 아빠도 수술이 많이 무서웠을텐데 우리가 걱정이 됐던 걸까. 엄마에게 병원비 500만원을 송금하고 계좌 정리를 하는 거 같았다.


엄마는 반차밖에 쓰지 못해 저녁에 일하러 가야 했다. 그래서 왜 빨리 수술실에 들어가지 않느냐고 불만이었다. 결국 엄마는 아빠가 수술실에 들어가는 걸 보지 못하고 일터로 갔다. 아빠가 수술실에 들어간 뒤 나는 보호자 대기실에 앉아 자소서를 썼다.


10시간 정도의 수술은 잘 끝났다. 아빠는 중환자실에서 회복 중이다.


비현실적인 하루가 생각보다 복닥복닥, 현실처럼 지나갔다. 나는 친구가 힘내라고 사다준 달달한 밀크티를 마시며 자소서를 썼고, 아침에 급히 연차를 쓰고 형을 보러 서울에 올라온 삼촌(작은아빠)은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다.


내가 이 비현실적인 순간에 대한 고민을 일년에 걸쳐 나눠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거 같다. 늘 우려하면서도 염두한 상황이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해왔다.


아빠와 똑 닮아 무뚝뚝한 아빠의 형제들은 무심한듯 게임을 하고 있지만 맏형을 누구보다 잘 따르고 사랑하는 동생들이다. 아빠에게 간 이식이 필요했을 때 두 삼촌은 곧장 서울로 올라와 간을 줄 수 있는지 검사를 받았다. 심지어 큰 숙모까지도 검사를 받으셨다. 아빠는 아빠 간과 가장 비슷한 작은 삼촌의 간을 이식받았다. 엄마는 우리가족이 삼촌네에게 평생 갚아야 할 빚을 졌다고 늘 얘기한다.


이제 아빠가 회복하고 나면 나는 아마, 제발, 취업이 돼 있을 거고. 아빠는 꿈에 그리던 베트남 노후 준비를 할 수 있겠지. 건강한 몸으로 베트남이든 어디든, 아빠가 여행 다니느라 우리를 못 볼 만큼 바쁜 날들이 왔으면 좋겠다.



2019년 11월 21일


정말이지 진도가 안나가는 11월이다. 예기치 못한 서류 탈락의 연속으로 나는 회사 필기 시험조차 보러 가지 못하고 있다.


아빠도 진도가 안나간다. 아빠는 아직 중환자실에 있다. 보통 10일 정도면 1인실 일반 병동으로 올라간댔지만 하나가 괜찮아지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심지어 다 괜찮아지니 병동에 자리가 안나서 못올라가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멀쩡한 사람이 중환자실에 있는 건 고역이다. 24시간 격리돼 각종 병원 기계 소리를 듣고 있다 보니 아빠의 섬망 증상은 점점 심해져만 갔다. 그 차가운 기계 소리는 멀쩡한 사람이 들어도 미쳐버릴 것 같은 소름끼치는 소리다.


그저껜 나를 못알아봤다. 수술한 지 3주가 지났는데도 말이다. 아빠는 날 알아보지 못하고 화를 내며, 왜 나를 여기 묶어두냐며 물건을 집어 던지려 했다. 섬망이 나타난 아빠는 우리아빠 같지가 않아서 볼 때마다 힘들다. 2019년 11월은 정말 정말 힘든 한달이다. 이렇게 아무 차도 없던 달이 있던가.


12월엔 좀 나아지는 게 있을까? 시간 가기만 기다리는 요즘이다. 난 더 이상 공부할 게 없다. 준비가 됐다. 이젠 정말 합격할 일만 남았는데...


이런 마음을 먹는 건 처음인데, 그냥 올해도 안되면 기자 때려 치려 한다. 지쳤다. 다만 평생 상처가 될 거 같다. 내가 뭐가 부족한지 정말로 잘 모르겠다. 다들 수월하게 가던데 왜 나만 이렇게 돌아가야 하지? 이건 너무 너무 돌아가는 거잖아. 왜 늘 기자가 되는 일엔 온 우주가 나서서 막는 거 같은 기분이 들까.


정말 지쳤다. 빨리 11월이 갔으면 좋겠다.



2019년 12월 26일


N 회사까지 떨어졌다. TO가 두자릿수인줄 알았는데 고작 3명 뽑았다.


내 인생은 이제 어떻게 흘러갈까? 이젠 정말 그만둬야 할 시기가 왔나보다. 이제 당분간 공채는 없고, 공부는 의지가 안 생기고, 자신감은 바닥이다. 장수생을 언론사가 좋아하지 않을 거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는데 내가 바로 그 장수생의 길에 들어섰다.


20대의 인생이 허무해진다.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일까? 이 위기를 잘 극복하지 못하면 평생의 자존감에 영향을 미칠 것 같다는 생각에 괴롭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붙고도 가지 않은 회사들이 생각난다. 지금 다시 오라고 하면 놓치지 않을 거 같다. 합격하고 다른 곳 면접을 가는 일따위는 절대 하지 않을 거 같다.


꿈이 자꾸 작아지다 못해 소멸되기 직전이다. 아무거나, 뭐라도, 일을 하고 싶다.


엄마 아빠에게 가장 미안하다. 다른 친구들은 벌써 효도도 하고 걱정도 안시키는데, 왜 내 생애주기는 또래보다 이리 뒤쳐진 걸까.


날 안쓰럽게 보는 걸 견디기가 어렵다. 어차피 꾸준히 과외, 알바해서 번 돈도 있으니 그냥 경제적 지원을 받지 않고 혼자 어떻게든 해보고 싶다.


사실은 아니다, 몇달 전만 해도 그런 패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없다. ‘하면 붙는다’는 나에 대한 믿음이 요 몇 달 모두 깨졌으니까.


주변에 최종면접을 10번씩 떨어지고도 흔들리지 않고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자신이 없다. 플랜B 없이 일을 여기까지 끌고 온 내가 너무 밉다. 근거없는 자신감은 분명 아니었는데. 이젠 다 허풍이었던 것만 같고 내가 못미덥다. N 회사까지 떨어지고 나서야 이제 포기할 용기가 생긴다.



2020년 1월6일


오늘 아빠가 또 중환자실에 갔다. 좋아질 만하면 악화되고, 그러다 또 호전되고. 수술 후 아빠의 상태는 애간장 녹이는 롤러코스터 같다.



2020년 1월16일


다이내믹하다.


어제 갑작스럽게 아빠가 퇴원을 했다. 얼마 전 중환자실에도 다녀왔는데 사람 일은 참 모르는 거다.


내게도 갑작스러운 소식이 있다. 이제 출근할 수 있다. 오늘 아침 학원 알바 면접과 방송사 인턴 면접 중 어디를 갈 지 저울질하던 차에 N회사에서 추가 합격 소식이 왔다. 이렇게나 늦게 연락을 주다니…


얼떨떨하다. 기쁘다기보단, 이게 뭘까, 싶다.


전화위복,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는데 내 취업과 아빠의 병을 보면 그 말이 맞는 거 같다.


오랫동안 취업이 안됐지만 그 덕에 3년 간 조금이라도 더 아픈 아빠 가까이에 있을 수 있었다. 작년 말엔 갑자기 서류부터 다 탈락해버리는 바람에 시험 기회조차 없이 최악의 시간을 보냈는데, 그 기간은 아빠가 폐 이식 수술을 받고 회복하던 기간이다. 몇번이나 좋아졌다, 안좋아졌다를 반복하다 12월부터 차차 회복의 기미를 보였고 드디어 어제 퇴원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오늘, 나는 무려 보름 넘게 연기된 합격 소식을 받았다.


퇴원과 동시에 아빠는 휴직 기간이 끝났고, 정식으로 평생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하셨다. 나의 취직과 아빠의 은퇴가 겹쳤다. 마치 바통 터치를 한 기분이다.


집으로 돌아온 아빠는 건강을 되찾고, 나는 멋지게 사회생활을 하며 효도하고. 그렇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