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청년들의 삶
(발행 순서를 잘못하여... 이 글이 4화 내용입니다!)
환자 가족의 일상은 아주 평범한 것에서부터 다르다. 예를 들어 나는 매 끼니 집으로 가 아빠와 밥을 먹는다. 밥을 차리며 아빠에게 밥 먹으라고 10번쯤 잔소리 하고, 혹여나 많이 못먹으면 신경이 쓰이고, 아빠가 날 보고서라도 입맛이 돋았으면 해서 애써 과장해 더 맛잇게 오물거리며 먹는다.
새 스터디원들의 합류 이후 첫 회식날이었다. 스터디원 모두 짧게는 1년부터 길게는 3년쯤 본 사람들인데, 아직도 모르는 면이 많았다.
A씨는 부모님께 월세를 내고 얹혀 산다고 한다. 늘 돈을 벌어야 한다며 한숨을 푹, 푹, 내쉬며 걷곤 했는데 이제 이해가 간다. 서울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데 돈 들 일이 뭐 그리 많을까 싶었는데, 집에 밥도 없어 끼니를 밖에서 해결해야 했고 심지어 방 월세까지 내야 한단다.
B씨의 스토리는 더 기가 막혔다. 옛 자취방에서 쫓겨날 뻔한 이야기, 그래서 집주인 할머니에게 무릎 꿇은 이야기, 지금은 작지만 소중한 전세에서 살게 됐는데 곧 재개발에 들어가서 비워줘야 한단 이야기…
새삼 청년들에게 가족의 품이 얼마나 소중한 지, 그럼에도 그걸 누리는 이가 얼마나 적은지 알게 됐다. 내겐 당연했던 가족의 품, 그렇다고 우리집도 사연이 없는 건 아니지만… 쨌든 서로 엇비슷해 보였던 스터디원들 모습 뒤엔 각자의 삶의 무게가 꽤나 크게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내가 매일 병원에 가거나, 아니면 점심 저녁 아빠와 밥 먹기 위해 다른 약속도 못잡고 살았던 것처럼, 어떤 계기로 각자가 지고 있던 등 뒤의 삶의 무게에 대해 툭, 얘기하게 됐다.
그런데 돈 문제도 아닌 아빠의 건강 문제에 대해선 도저히 입이 안떨어졌다. 아마 스터디원들이 보기에 나는 백수 딸에게 경제적 지원까지 해주는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그저 화초처럼 공부만 하는 애 같겠지? 사실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듯, 모든 청년들에겐 사연이 있다.
C씨가 B씨의 이야기를 듣고 ‘감히 상상할 수 없다’고 한 말이 딱 맞는 거 같다. 비틀비틀, 유독 청년들의 삶이 참 위태롭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어제 아빠가 퇴원했다.
병원에 들어갈 때도 몸이 좋지 않았지만 2~3주 사이 더 안좋아졌다. 휴직 쓰고 나오신 1월부터 오늘까지,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기만 했다.
겨울까지만 해도 조금 힘들지만 혼자 점심 드시러 운전해 외출도 하셨다. 조금 걷는 것조차 싫어서 차를 지하 주차장이 아닌 아파트 입구 앞 장애인 주차 구역에 대서 가족들이 '좀 걸어!'라고 웃음기 어린 잔소리를 하곤 했는데... 이제 그 정도 외출도 어려워졌다.
아빠는 포항으로, 제주로, 한동안 요양을 다녀오기도 했다. 공기 좋은 시골에 위치한, 삼시세끼 밥 챙겨주는 곳으로. 그러나 갖은 방법에도 폐는 빠르게 나빠져 이젠 산소호흡기 없인 아예 집밖에도 나갈 수 없게 됐다. 야속한 시간이다.
어제 오늘은 좀 덥긴 해도 공기가 맑고 쾌적해 산책하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아빠는 집 소파에서 맞는 맞바람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북악산 전망이 보이는 식탁 자리가 아빠의 고정 자리다.
예능이나 드라마를 보지도 않으시니, 채널은 종일 뉴스가 나오는 YTN, CNBC, MBN 등에 고정돼 있다.
아빠는 요즘 정부 욕하기에 집중하고 있다. 한때 괜찮은 대학의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수십년 은행원으로 일한 지식으로 정권을 비판하는 일, 그건 아빠가 앉아서도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왜 일본과의 외교적 약속을 깨선 이 사달을 내냐, 퍼주기로만 하니 베네수엘라와 다를 바가 없다, 탄핵을 해야겠다 등… 그러다 저녁을 먹으면서는 결국 한일관계에 대한 내 의견을 물어와 밥 먹으며 열띤 토론까지 벌였다. 어쩐지 앞으로도 TV 보며 밥 먹는 날엔 주제가 시사 이슈일 것 같다.
오늘까지 엄마가 집에 있었지만 내일부턴 다시 점심 저녁은 내 몫이다. 내가 더 신경써야 한다. 무더운 여름철엔 더더욱 집에서 차려먹기 싫은데.. 착한 딸과 이기적인 딸이 내 안에서 매번 충돌한다.
특히 이번 달엔 간만에 외국에서 들어온 친구가 둘이라 자꾸 약속도 잡히는데. 평일 점심 저녁 약속을 못잡으니 막막하다. 가족과 내 일상, 이 둘의 균형 찾기가 참 어렵다. 내가 가족에게 받는 게 너무 많고 엄마 아빠의 희생이 컸단 걸 아니까. 지금은 내가 가족에게 좀 더 신경 쓸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안그러면 나중에 더 후회할 거 같다.
이번주는 좀 힘들었다.
지난주 아빠가 병원에 있는 동안 난 종일 밖에 나가서 내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바삐 움직이고 끼니를 대충 떼웠지만, 내 일에만 집중하는 시간은 뭔가 살아있단 느낌을 들게 하고 나를 기민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주 월요일부터는 점심, 저녁 매 끼니마다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루하루 의욕이 떨어진다. 일에 집중하기보단 점심, 저녁 전후로 시간 계산하는데 에너지 소모하고, 또 집에 가면 스트레스를 받고…
내가 바쁜 것이 엄마 아빠에게 너무 미안한 상황이다. 아무 것도 안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아직 취업도 못하고, 공부한답시고 집에 도움도 못주는 존재가 된 거 같다. 결국 죄책감은 죄책감대로 갖고, 기획기사 아이템 발제도 실패했다.
그래서 오늘은 그냥 나만 챙기기로 했다. 오늘만큼은 가족을 잠시 접어두고 내 일과 친구, 내 여가부터 챙기잔 생각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와 있었다. 밥도 안먹고 열심히 취재한 결과 드디어 아이템이 조금은 갈피를 잡아가고 있다.
저녁엔 친구들을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 완벽한 저녁이었다. 온전히 나만을 위해 보낸 오늘 하루는 그냥 감사히 생각하기로 했다. 이 에너지로 아빠에게도, 집에도, 더 잘 해야지.
채용전환형 인턴에 최종 합격했다. 나 드디어 일한다..
어쩐지 오늘 일어나기도 싫고 공부도 하기 싫더니만, 스터디 가기 직전에 발표가 나줘서 너무 다행이다!
출근 하루 전.
일주일 간 나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그런데 문득 깨달았다. 놀 친구가 없다는 것을.. 2년 간 취업준비 하면서, 그리고 아빠랑 밥 먹느라고 약속을 거의 안잡았다. 친구들이 연락하면 늘 확실한 일정을 모르겠다며 피하곤 했다. 그래서 지금 나는 당장 불러낼 친구가 없다.
친구는 더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내 상황이 좋지 않을수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꾸 약속을 취소할 일만 생기고, 나가도 괜히 집이 신경쓰였다. 그래서 몇 없는 친구들도 다 너무 버거웠다. 내 상황을 말하고 싶진 않고, 그러다보니 할 말이 없고, 그들과 가깝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2013년 아빠가 간이식 수술 받은 후에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내가 잘 연락이 되지 않자 친구 A는 걱정이 됐는지 내게 전화했다. 그때도 난 병원에 있었다. 난 아빠의 섬망 증세(날 알아보지 못하고 허공에 소리를 치셨다)에 놀라 병원 한구석에서 울고 있었다.
코맹맹이 소리가 혹여나 티날까, 나는 아무 일 없다 하고 A의 전화를 끊었다. 그때부터 멀어진 거 같다. 물론 그것 말고도 우리가 안맞는 점들이 없진 않았지만 그래도 초등학생 때부터 가장 가까운 친구사이라고 믿었던 그 관계를 내가 놓은 거 같다.
근데 요즘은 외롭고 심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꼭 친구를 더 만드는 게 아니어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 이런 생각은 정말 오랜 만이고 반갑다.
그래서 나는 내일이 기대된다. 집에도 신경 써야겠지만 당분간은 날 위한 약속도 많이 잡고 집밖의 관계에도 신경을 쓰고 싶다.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지금까진 어쩔 수 없이 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더 중요했고 이제부터 다른 것들에도 신경을 쓰면 되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