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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니맨 Jun 02. 2020

어쩌다보니 콜센터 직원이 되었다.

그래고 점점 나 다워지고 있다.

나의 첫 직장생활은 국내 제조회사의 해외법인 R&D팀 사원으로 시작되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과학자가 꿈이라고 외치던 어린 아이가 남고, 공대, 군대를 거쳐 제조회사 R&D팀으로 입사하여 공장에서 근무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나는 그렇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고 돈을 모아 집을 사고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게 될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너무 순진했었다.


"나의 자연스러움을 훼손하는 곳은 못 다닌다."

우연히 보게 된 김미경 강사님의 영상에서 격하게 공감이 되었던 말입니다. 첫 직장생활이 시작되면서 저의 자연스러움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었고 별거 아닌 줄 알았던 그 이유로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습니다.


차장님은 미생의 오차장 캐릭터를 좋아하셨던 것 같습니다. (사진 출처: 드라마 미생)

드라마 '미생'을 인상깊게 보셨던 차장님은 종종 드라마의 일화를 언급하며 직장 생활에서는 조직의 '히스토리'를 먼저 파악하라는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차장님의 의도는 제품마다 사용하는 부품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라는 뜻에서 해준 조언이었을 것입니다. 그 때 제가 샘플 시방서관련 작업을 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저는 다른 관점에서의 회사 '히스토리'가 계속 맘에 걸렸습니다. 


새로온 직원 때문에 동료가 회사를 나가게 된다면 저도 힘들 것 같습니다. (사진 출처: 드라마 미생)


제가 입사하기 전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어느 부서에 차장님 한분이 계셨는데 대기업 출신의 경력직 대리 직원이 새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몇달 뒤 그 차장님의 자리는 새로 온 경력직 대리 직원으로 교체되었습니다. 대략 계산하였을 때 대리급 직원의 임금이 차장급 임금의 6~70% 정도인 것을 고려해보면 회사로서는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히스토리'가 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한다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히스토리'로 인해 그리고 젊은 친구들은 오래 못버티고 나간다는 그들의 경험치로 인해 마치 인턴과 같은 생활이 지속되었습니다. 일은 하고 있지만 잡일이었고 일을 알려주는 것이 더디게만 느껴졌죠. 그러다 보니 의욕이 넘치던 신입사원은 일에서 보람이나 성취감은 느끼지 못하고 점점 지쳐갔습니다. 


만약 야근이 없었다면 괜찮았을까요?


지금 돌아보면 야근만 없었어도 1년만에 그만두지도 않았고 힘들어 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미는 없고 의리만 있었던 야근 덕분에 퇴근하자마자 자야하는 일상의 연속이었으며 종종 주말 근무도 있었고 해외 근무여서인지 주말에 불려나가는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취미생활을 통한 스트레스 해소나 성취감을 맛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죠.


한국에서 단합대회로 등산 가는 것처럼 해외에서도 한국 회사는 주말에 단합대회를 합니다. (사진 출처: 드라마 혼술남녀)


지금은 콜센터에서 일합니다.


현재 저는 해외에 위치한 다국적 콜센터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다보니 호칭이 없어 수평적인 관계로 느껴지며 칼퇴근이 당연한 조직 문화가 너무 마음에 듭니다. 주말에 종종 단합대회를 하긴 하지만 한국처럼 강요는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 회사에서 한국인과 일본인의 단합대회 참여율이 낮은 건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네요.


회의는 정말 이 사진과 같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됩니다.

현 직장은 위의 사진과 같은 분위기로 회의합니다. 수평적인 문화와 칼퇴근이 업무 스트레스도 낮춰주고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는 시간도 만들어 주었다는 점에서 이번 이직은 상당히 만족스럽습니다.


직장 생활에서 오는 성취감은 없지만 퇴근 후에는 이렇게 브런치와 유튜브 그리고 취미생활로 성취감을 맛보고 자아실현을 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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