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일렀어, 친구야

브로콜리너마저- 분향

by 재영
그때는 정말 몰랐었지만,
좋은 날들이었던 것 같아.


분명 N의 웃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칼라였을텐데, 신기하게도 기억에는 흑백으로 남아있다.


"야, N 죽었대."

"누구?"

"그 있잖아, N, 중학교 때 곱슬머리 걔."


기장도 통도 맞지 않는, 마치 아버지 양복을 입은 듯한 모습들이었다. '한창 클 때인데 매년 교복을 살 수도 없잖니. 중3 되면 맞을 거야.' N의 어머니도 이렇게 말씀하셨을 테다. 그때만 해도 지금보다는 순수했던 시절이라, 중1은 소위 '잘 나가는 부류'와 '찐따' 따위의 구분 없이 누구와도 금세 친구가 되던 나이였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찐따'에 더 가까웠던 N은 말랑하고 하얀 피부와 심한 곱슬머리가 특징이었다. 벌써 그 나이의 두배를 살아버려서 이젠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바보처럼 해맑은 웃음소리가 기분 나쁘지 않던 친구였던 것 같다. 체육시간에도, 방과 후에도 곧잘 어울리며 축구를 같이 했었던 듯하다. 확실하지 않은 것은 중3 때 다시 같은 반이 된 N의 이미지가 2년 전과는 확연히 달랐기 때문일 테다.


다들 각자의 질풍과 노도를 감내하던 16살, N에게는 바람과 파도가 조금 더 강하게 느껴졌던 걸까. 그다지 몸이 자라지 못한 N의 교복은 안 그래도 하얀 피부가 더욱 창백해질 정도로, 딱 맞다 못해 스키니 핏이 되어 있었다. 청춘영화 속 불량배 패거리에서 맨 뒤쪽 라인을 담당하는, 너무나도 전형적인 '일진 따까리'의 모습을 한 N은 더 이상 빙구같이 웃지 않았다. 목소리를 한껏 깔고 한쪽 입꼬리만을 올려서 짓는 그 '썩소'가 사실 더 찌질하고 멍청해 보였다고, 이제서야 이야기를 해줬어야 하나 싶지만 당시는 참 나도 여유가 없던 시절이었으니.


바이크 사고. 중앙선을 넘어 반대 차선 차랑 박았댔나 뭐랬나. 고1도 머리에 피가 마르지 않은 나이니까 애들 입을 탄 소문들은 믿기가 쉽지 않지만, 확실한 건 이런 식의 끝은 야속하게도 꼭 제일 어설픈 사람에게 찾아오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미 다 자란 줄 알았던 17살들은 문상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는 자신들이 당황스러운지, 'S고 1짱', 'D고 2짱' 같은 평소의 허세를 벌건 육개장에 밥과 함께 말아버린 듯, 다소곳이 앉아 눈알만 여기저기 돌려댔다. 개중에는 테이블 위의 소주를 호기심에 찬 눈으로 보던 한없이 철없는 친구들도 있었다. 뭐가 좋다고 왜 그리들 빠르게 어른이 되고 싶어 했는지.


다른 고등학교로 배정을 받아서 N의 17살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모르겠다. 눈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이 부어있는 얼굴로 문상을 받아주시던 N의 어머니는, 아직 더 커야 할 N에게 또 아버지 양복 같은 교복을 입히셨을 테고, N은 멋이라며 통을 줄였겠지. 그러지 말고 몸이 자라기를 기다렸어야 할 노릇이었는데. 남들보다 성숙한 것을 동경한 순진했던 친구는 너무도 과속을 해버렸고, 그 탓에 나는 그 먼 길에 소주 한 잔 올리지도 못했다. 분명 보이지 않았을 N의 어머니의 텅 비어버린 눈동자에서 보였던, 끝도 없이 깊은 좌절과 슬픔은 가늠할 수조차 없었고, 떠올리면 아직도 참 가슴이 아리다. 그곳에서는 그 바보 같은 웃음을 환하게 되찾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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