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진심이 담긴 사과가 제 맛이다
스물여덟 먹은 117번 훈련병. 교육이 너무 고되어선지, 빡빡 민 머리 덕에 몇 살 어려 보이게 돼선지 금세 제 나이를 잊고 예닐곱 살 어린 동기 전우들과 어우러지고 있었습니다.
봄비 살랑이던 날, 정신 교육을 받으러 대강당에 집합해 있던 그날도 옆자리 동기와 딱밤 때리기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무대에 오른 한 소대장님이 뜬금없이 저와 다른 동기 한 명의 교번을 부르셨습니다.
“xx번, 117번 훈련병 무대로 올라오세요.”
때려야 할 딱밤을 남겨둔 채 헐레벌떡 뛰어 올라가 정렬했고, 소대장님이 비장한 표정으로 우리를 소개하셨습니다.
“이 훈련병들은 이번 기수 중 나이가 (몇 살이죠, ...스물여덟...) 아, 스물여덟으로 가장 많습니다.”
딩-. 딱밤은 아까 맞았는데 머리는 왜 뒤늦게 울렸을까요. 교육에 임하는 각오를 말하라는 소대장님이 주신 마이크를 잡고 어버버하고 나니 어느새 자리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나이도 일곱 살이나 더 많은데 때릴 거야?’라며 묻는 동기의 이마. 담배 한 개비가 너무도 피고 싶었습니다. 허나 훈련소에는 꽁초 하나 볼 수 없었고, 담배를 제때 피우지 못한 저는 그날 밤 조금 이른 봄 감기를 앓았습니다.
초등학생 때 공개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짓궂게 캐묻는 친구들에 휩쓸려 한 친구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해버렸더랬죠. 복도를 지날 때마다 다른 반 학우들이 저를 보고 수군거려 집에 와서 엉엉 울었던 적이 있습니다. 잊고 지낸 그 기분을 훈련소에서 리-마인드 할 줄은 몰랐습니다.
나이도, 누군가를 좋아했던 마음도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아홉 살 그 소년은, ‘짝녀’의 답장만 며칠이고 기다리고 있는 지금의 저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용감한 사람입니다. 또, 하루하루 충실히 늙어 온 제 나이. 가십거리가 되기에는 넘치게 진중한 것이 복도에서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걸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주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전 소대장님께 찾아가 ‘틀밍아웃’(틀딱+커밍아웃이라는 뜻으로 동기들이 사용하더군요.)을 강제한 이유를 여쭤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이곳은 군대라는 것이었습니다. 군기가 바짝 들어 있는 훈련병에게 소대장님은 닿지 못할 하늘과 같았죠. 조교와 동기들은 '원래 군대는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이다.'라며 속으로 삭이라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곱씹어봐도 제 소중한 지난 하루들이 사랑하는 전우들의 쑥덕거림으로 변해야 할 연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몇 날의 고민 끝에 저는 소대장실 문을 두드렸습니다.
“충성, 117번 훈련병 오영택입니다.”
“우리 소대원이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용무로 왔죠?”
“정말 죄송합니다만 혹시, 지난번 정신교육 때 절 무대로 불러내신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일개 훈련병의 당돌한 물음에 소대장님의 눈이 커졌습니다. 꼼짝없이 크게 혼날 것으로 생각한 저는 변명거리를 찾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렸습니다. 하지만 소대장님의 입에서는 뜻밖의 말들이 흘러나왔습니다.
“아, 이번 기수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훈련병이었죠...? 많이 당황스러웠겠구나, 아... 내가 정말 미안해요. 잠시만 시간을 줄래요? 내가 조금만 생각을 하고 설명을 해줄게요. 정말 미안해요.”
이럴 수가요! 가장 사과를 기대할 수 없던 사람에게 가장 진심이 담긴 사과를 받은 놀라움에 저는 벙찐 채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잠시 후, 소대장님은 제 손을 잡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변명도 교육생 기분을 나아지게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미안합니다. 군인이라 머리를 숙여서 용서를 구하지는 못하는 것을 이해해주세요.”
며칠 전, 유튜브에서 한 블랙박스 영상을 보았습니다. 차선을 잘못 탄 SUV가 좌회전 불가 차선에서 좌회전해 사고가 날 뻔했고, 사고를 당할 뻔한 운전자는 욕설을 내뱉었죠. 그런데 그 후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SUV 차주의 행동이 가관이었습니다. 비상등으로 사과의 뜻을 전하고 손을 내밀어서도 용서를 구하더니, 심지어 신호 대기 중 차에서 내려 90도로 인사를 하고 다시 차에 탔습니다. "세상 운전자들이 다 저러면 싸움이 날 수가 없지. 화낸 게 죄송해지네". 멋쩍어진 젊은 목소리의 운전자가 동승자에게 말했습니다.
조그마한 사과의 제스처조차도 야박해진 요즘에 사는 우리입니다. 돌아보니, 우선 저부터도 머리에 피가 좀 말랐답시고 이상한 옹졸함이 생겨나 놓친 사과들이 한가득이었습니다. 그러니, 더군다나 계급사회에서, 지위를 먼저 내세우기보다 상대가 느낀 불편함에 오롯이 공감하고 미안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한술 더 떠서, 소대장님은 다음 정신교육 시간에 모든 중대원 앞에서 과오를 인정하고 다시 한번 사과했습니다. (물론 더욱 확실한 ‘틀밍아웃’이 되긴 했지만요.)
그날 이후 저는 조금 더 미안하다는 말에 후해졌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면 감정적인 스트레스가 심할 줄로 알아 왔는데, 오히려 개운하더군요. 트러블도 원만히 해결되고, 같은 일로 감정 소모가 이어지지 않으니 신기하게도 이긴 듯한 느낌까지 듭니다.
반년 뒤, 볼 일이 있어 사단 본부에 갔다가 우연히 다시 소대장님을 만났습니다. 괴로웠던 며칠의 기억은 온데간데없고 반가운 마음만 들어 크게 경례를 했습니다. 소대장님도 기억해주고는 이런저런 안부를 물으셨습니다. 마지막까지도 서로 웃음을 띠고 작별했고, 인생에서 손꼽을 만한 창피함을 선사한 사람과의 만남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기분 좋은 여름날 우연으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