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담화는 돌아오는거야
평화로운 21시의 지휘통제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병 오영택은 상황근무(부대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 등을 기록하고 유지하는 근무)를 서고 있습니다. 옆자리에는 무전근무(다른 부대, 예하 부대 등과 교신을 보고 무전을 대기하는 근무) 중인 삼촌 A(월번으로 6개월 차이가 나는 선임. 12개월 차이는 아빠라고 한다). 그 뒷자리에는 CCTV 근무 중인 A의 맞후임 일병 B가 있습니다. A가 딱딱한 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소파에 걸터앉은 듯이 껄렁한 자세로 드러눕다시피 하는 ‘짬바’를 보여주고 있어서, 원래는 ㄱ자의 구조였을 세 명의 자리 배치는 정삼각형이 되어있고 예능 프로그램 ‘썰전’ 출연자들의 그것과 비슷합니다.
“야 요새 C 좀 띠껍지 않냐?” A가 B에게 묻습니다.
C는 B의 동기로, A,B,C 모두 같은 분과입니다.
“짬먹었는지 일도 잘 안 하려 하고 후임들한테 짬질(높은 계급의 사람이 낮은 계급의 사람에게 권위를 내세워 일을 미루거나 등의 행위를 하는 것) 하는 게 좀 역겹긴 합니다.” B도 평소 고민이었는지 술술 C의 험담을 늘어놓습니다.
“그니까. 야 영택아(일병 오영택!), C가 너한테도 짬질하고 그래?” A가 저에게 말을 돌립니다.
“요새 좀 그런 것 같긴 합니다. 작은 것도 뭐라하는 게 좀 많고…” 사실 ‘짬질’은 A와 B가 가장 심하지만 분위기를 맞추려 맞장구를 칩니다.
“그치? 야, 이 형이 이렇게 얘기하면 존나 심한 건데 진짜. 아 C 관리 좀 들어가야 하나? 야 B(일병 B!) 동기 관리 좀 해라. 후임이 C 때문에 힘들다잖어.” 저도 모르는 새에 C의 짬질에 힘들어진 일병 오영택.
그 뒤로도 10여 분간 계속 이어지는 C에 대한 뒷담화. 저도 적당히 맞장구치며 흥을 깨지 않으려 합니다.
어느덧 25분이 지났고, 다음번 CCTV 근무자가 교대를 위해 지통실로 들어옵니다. 다음번 근무자는 양반은 못되는 C. C가 자리에 앉고 얼마 되지 않아서 A가 말문을 엽니다.
“야 C야(일병 C!), 요새 B 어때?” A의 눈에는 얼른 B에 대한 욕을 하라는 무언의 압박이 비칩니다.,
“요새 B가 좀 군생활이 편해지긴 한 것 같습니다. 행동도 좀 조심하는 게 없고, ….” C는 준비했다는 듯이 열변을 토합니다.
“그치, 야 영택아(일병 오영택!), 너도 B가 좀 그런 것 같어?”
싸늘합니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힙니다. B와 C에 대한 뒷담을 한 것이 채 5분도 안되었는데 이제는 C와 함께 B의 험담을 하려니 혀가 긴장으로 굳습니다.
“어, 그, 저, ….” A와 C는 ‘뭐지?’하는 눈으로 대답을 주저하는 저를 쳐다봅니다. C야 그렇다 쳐도 A는 정말 사회생활에 도가 튼듯합니다. 방금 전까지 비 오는 날 개잡듯이 신나게 털던 C와, 같이 C를 털던 B를 털려고 포석을 까는 모습에 소름이 돋습니다. 여섯 살이나 어린 친구가 어찌 저리 권모술수에 능하고 연기력이 좋으며 저렇게 표정 하나 안 바뀌고 저런 짓을 하는지 놀라울 뿐입니다.
어찌어찌 제 근무 교대 시간이 찾아옵니다. 다음 근무자인 선임이 왔지만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근무를 마친 선임이 저를 불러냅니다.
“야(일병 오영택!), 짬 좀 먹었냐? 요새 헛짓거리 하고 다닌다며. 일병 나부랭이가 왜 벌써 그런 말이 도냐?”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기로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중앙 현관에 게시된 마음의 편지(구 소원수리. 병영생활의 고충을 용사들이 익명으로 적어서 제출한다.) 조치 내용에 이런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상병 000 - 근무 태도가 불량하며, 특히 후임들 욕을 자주 하고 다니며 군기강을 저해함. 조치내용 - 개인적으로 불러 교육하였음.’
저와 B, C는 마음의 편지를 적는 날 외진(외부 군병원으로 진료를 보러 가는 것)을 다녀와서 작성을 못했는데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누아르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히사이시 조의 ‘인생의 회전목마’가 머릿속에서 울리고 일병 오영택의 고개는 화면을 향하며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씬이 끝납니다. 권상우 형님, 사랑은 잘 모르겠지만 뒷담화는 돌아오는 것이 분명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