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의 고충
관측이라는 주특기 특성상 여기저기 다른 부대로 파견을 많이 다닙니다. 또 중간에 부대를 한 번 옮겼기 때문에, 웬만한 누구보다도 많은 전우들과 간부님들과 새로이 만나야 했습니다. 달마다 들어오는 후임들도 있지요. 이십 대 초반이 대부분인 이곳에서는 특히나 더 학벌이 크게 첫인상에 남는가 봅니다. 늦게 군대에 온 만큼, 이런저런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자라오면서 가진 직업도 예비 운동선수, 대학생, 인디밴드 멤버(‘네이버에 치면 나오는 사람’), 학원 강사 등 많았고 쾌활하다, 장난을 좋아한다 등 제 성격도 여러 면을 갖고 있지요. 185cm의 키, 삐뚤어진 코, 짝눈, 작은 입 같은 신체적인 특성도 있지만 저를 나타내는 대명사는 주로 ‘서울대’가 되기 마련입니다.
제 첫사랑은 중학교 1학년 때 만났습니다. 3학년 때도 같은 반이었고, 방송부 활동도 같이 하면서 제 첫 ‘여사친’이 된 친구였죠. 고등학교 3년은 내내 학교와 학원과 독서실과 집만을 오가며 열심히 공부를 했고, 그래서 이성친구를 만날 기회가 없었기에(라고 자기 위안을 해봅니다.) 그 친구랑만 문자를 주고받았습니다. 저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어머니의 말을 믿었고, 총 아홉 번의 고백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아주아주 튼튼한 나무였습니다.
서울대 합격 발표가 났던 날, 그 친구에게 연락해서 축하를 받아낸 저는 자신감에 가득 차서 데이트 신청을 했습니다. 웬걸, 대뜸 알겠다고 하는 겁니다. 역시 옛말에 어른 말씀 틀린 것 하나 없다고, 열 번째 고백에 저는 그 친구와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일주일 뒤에 그 친구는 다니던 성당에서 캠프를 떠났고 연락이 뜸해지더니 2주 뒤에 돌아와서는 청천벽력 같은 이별 통보를 했습니다.
“서울대 합격했다고 해서 순간 엄청 멋있어 보였던 것 같아. 미안해. 우린 역시 친구일 때가 맞는 것 같아.”
이후, 저는 처음 저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학교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제 모든 가치가 ‘서울대’로 귀결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학교를 밝히지 않고도 누군가에게 좋은 친구, 사람, 파트너로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때문에 오해도 많이 받았고, 미움을 산 일도 많았죠. 자꾸만 학교 밖의 사람들을 만나기가 꺼려졌고, 자존감도 점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학창 시절,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이룬 결실이 ‘숨겨야 할 것’으로 변해버린 허무함에 방황도 꽤나 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더 이상 학교 밖의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학원 강사처럼 학력을 내세워야 할 필요가 있는 직업이나 일을 구할 때는 아주아주 강력한 무기가 되어주곤 했던 애증의 ‘서울대’ 스펙은 입학한 지 8-9년이 지난 지금도 족쇄처럼 발목을 옭아매고 있습니다. 새로 만난 간부님, 선임들과 안면을 틀 때면 항상 ‘너 서울대야?’, 다른 부대 전우들도 ‘영택씨 서울대라면서요.’, 뭔가를 잘할 때면 ‘역시 서울대는 다르네.’, 뭔가를 잘못하기라도 하면 ‘서울대가 그거밖에 못하나?’ 등등 하루에도 ‘서울대’라는 단어를 십여 번씩은 듣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잘한 것은 당연해지고, 못한 것에는 더욱 모진 채찍이 날아듦에도요.
정말 엄청난 스트레스였습니다. 이름 대신 ‘야, 서울대’로 불리기 마련이었고, 호기심과 열등감, 질투 등의 감정에 대상이 되어야 했으니까요. 후임이 학교를 물어보면 공격적으로 대답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살아온 환경에서 만나왔던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없이 훨씬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의 집합에 속하다 보니 인생에서 거의 처음으로 ‘극소수’의 입장이 되었습니다. 학교에 개인의 모든 가치가 귀결되는 것에 트라우마가 있던 사람이 아니더라도, ‘극소수’의 입장이 되어 이렇게나 차별과 여러 가지 새로운 감정의 대상이 되는 일은 너무나도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도, 지금은 함께 고생하고 웃고 울며 쌓여온 시간들과 전우애가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저를 ‘서울대!’라고 부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신 ‘영택아~’, ‘오영택 상병님~’이 그 자리를 메꿨죠. 가끔 가다가 (많지는 않지만) 자신들은 모르지만 제가 알고 있는 것을 알려주거나 하면 ‘아 맞다, 서울대였지.’라며 기분을 움찔하게 하곤 하지만 이 말을 잘 살펴보면 평소에는 ‘서울대’ 대신에 ‘오영택’이라는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곳 군대에서 저는 이름을 되찾고 아무 꼬리표도 없었던 학창 시절의 저처럼 밝고 자신 있는 모습을 점점 찾아가고 있습니다.
더불어, 우리 사회에서 ‘소수’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아픔도 생각해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제가 겪은 아픔과 불편함은 장애를 가진 사람, 여성, 퀴어, 외국인 노동자, 인종차별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고충에 비할 바도 못 되겠지요. 개인적인 트라우마가 있긴 했지만 적어도 ‘호기심’과 ‘놀라움’에 ‘부러움’과 ‘질투심’이 더해져 있었을 테니까요. ‘배부른 소리 하네!’라는 말도 들을만하고요. 그런데도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그분들이 겪고 있을 것들에 대해 안타깝고 화가 납니다. 직접 (맛보기에 불과하지만) 경험해보니 도저히 개인이 감당할 만한 부류의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부디, 다름에 대한 시선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없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니, 저부터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다름’에 조금 더 너그러워집시다. 조금만 지내다 보면, 모두 같은 한 ‘사람’ 임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