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자몽소다

실.상.황.

더위는 참아도 추위는 못 견딘다

by 재영

평화로운 가을날 20시 개인정비 시간. 상황벨이 울리며 공기는 순식간에 혼란해집니다.
“아, 실상황, 실상황. 전 병력 출동 준비 할 것. 집합 5분 전.”

화장실에 있던 선임과 사이버지식정보방에서 페이스북을 하던 후임, 누워서 책을 읽던 저를 포함해 모든 인원이 허겁지겁 전투복과 전투화를 집어 들고 군장과 총기를 챙기며 출동 준비를 합니다.

“미상 인원 두 명 철책 넘어서 남하했다. 우리는 도로검문 실시한다. …,…,…, 이상”.

빠르게 바리케이드가 설치되고 각자 임무에 맞게 자리에 위치합니다. 무전 대기를 맡은 전 도로 밑을 지나는 부대 옆 시냇가에서 p-999k 무전기로 교신을 봅니다. 지나가는 차량들을 모두 검문하며 탈북자를 찾고, 저는 새로운 상황을 전파합니다.


24시. 아직 별다른 소식이 없습니다. 차단선을 구축하고 전방의 온 산을 다 뒤지고 있답니다. 가만히 앉아서 송수화기만 붙잡고 있는 것이 미안해집니다. 마음과는 다르게 22시부터 내려오던 눈꺼풀을 믹스커피의 힘으로 겨우 들어 올립니다. 시내 옆이라서 바람이 심상치 않게 불어옵니다.


03시. 저는 가을밤이 이렇게 추운 줄 전혀 몰랐습니다. 긴급출동이었던 탓에 다들 제대로 방한 대책을 강구하지 못한 채로 투입해서 여기저기서 이빨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결국 조를 짜고 교대로 막사에 가서 복장을 정비합니다. 겨울까지 꺼낼 일이 없다고 생각해서 더플백 깊은 곳에 처박아두었던 깔깔이와 방한장갑, 안면 마스크 등을 꺼내 몇 겹이고 두릅니다.


04시. 별 소용이 없습니다. 이런 추위를 이 시기에 만날 것이라고 전혀 예상 못 한 몸의 각 부위들이 제각각 서로 더 괴롭다며 구조요청을 보냅니다. 그중 가장 신호가 강한 것은 발가락들의 아우성입니다. 온점, 냉점에서 온도를 느껴야 하는데 왜 통점에서 온도가 느껴지냐며 물어옵니다. 핫팩을 더 붙여달라는 발바닥의 지원연설과 함께 더욱 소란해집니다.


05시. 한 명의 신병을 확보했다는 무전이 옵니다. 빠르게 상황을 전파하고 남은 한 명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립니다. 발 쪽의 신호가 미약한 것을 보니, 새끼발가락부터 차례로 운명을 다한 듯합니다. 이제 그 자리를 귀와 코, 손가락들의 고함이 채웁니다. 보급 받은 핫팩의 갯수가 모자라는 까닭에, 이 각 부위들이 서로의 중요함과 유용함을 어필해댑니다. 소리는 들어야 하지 않으냐, 흐르는 콧물이 얼마나 품위를 떨어뜨리는지 모르냐, 애초에 손가락 없이 어떻게 핫팩을 까서 붙이겠느냐. 차례대로 달래주어보지만 너무나도 부족합니다.


06시. 아무 연락도 없습니다. 귀는 전사했습니다. 영하의 온도는 아닌지 콧물이 얼지는 않는데 흐를 때마다 새로이 차갑습니다. 손가락들은 겨우겨우 숨이 붙어 있지만 굳어 갑니다. 이대로는 힘들다며 지원군을 간곡하게 요청합니다. 허벅지와 눈두덩이, 등허리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몇 겹 더 쌓여있다는 이유로 제 소리도 못 내고 천천히 경직돼가고 있습니다.


08시. 더우면 벗기라도 하고 물이라도 부으면 되겠는데, 추위 앞에서 저는 한없이 무력합니다. 이렇게 서서히 죽어가느니 차라리 과학시간 액화질소 속 개구리처럼 한 번에 급속냉동이 되고 싶습니다. 해가 슬그머니 떴는데도 전혀 후퇴하지 않는 추위. 졸음은 자신도 추위만큼이나 강하다며 계속해서 도발을 합니다. 어느덧 밥시간입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자리를 비우지 못합니다. 급하게 배급된 비닐봉지에 담긴 고기볶음 양념장 비빔밥, 소위 ‘짬볼’. 봉지에 살짝 구멍을 내 짜요짜요처럼 짜먹습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평소에도 이렇게 밥을 먹어야겠습니다.


10시. 드디어 새로운 상황이 전파됩니다. 상황 종료라는 말에 기적적으로 부활하는 발과 손과 코와 눈과 입과 귀와 볼과 등허리와 허벅지와 정강이와 고관절과 무릎과 엉덩이와 두피와 머리카락! 한목소리로 온수 샤워를 외쳐댑니다. 더해서 컵라면 하나면 더 이상 불만을 토로하지 않겠다며 딜을 걸어옵니다. 전 모든 요구를 들어주기로 하고 무조건 항복을 선언합니다.


거리의 철학자 강신주 씨는 이야기합니다.

“고통에 대하여 글을 쓰기 시작하면 신기하게도 그 고통이 사라집니다. 고통이 객관화되기 때문입니다. 고통에 빠져 죽는 사람들은 말과 글로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위에 적은 실상황이 있던 날 최저 온도는 영하 2도였고, 저는 지금 영하 25도의 밤에 이 글을 적습니다.

강신주 씨, (물론 그런 뜻으로 하신 말씀이 아닌 줄 압니다만) 추위는 글도 이기는 아주아주 강력하고 무서운 놈이었습니다. 깨꼬닥.


keyword
팔로워 14
매거진의 이전글눈 앞의 죽음에서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