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I die now
저는 매일 섭씨 영하 20도에서 죽음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저를 조준하고 있는 북한의 박격포. 그 앞에서 방탄모와 방탄복만을 의지해서 적 GP를 관측합니다. 적 포격도발 등 특이관측 시 철저한 전방주시로 재빠른 보고를 해야 합니다.
번쩍! 쉬잉- 쿵. 제때 포격을 관측하더라도 3초 뒤면 제가 있는 초소에 포탄이 도착할 테니, 사실상 목숨은 운에 맡겨야 할 가능성이 큽니다.
포탄이 날아오는 그 3초 동안 저는 먼저 부모님과 동생을 봅니다. 온 가족이 행복했던 유년 시절과 자라면서 대못을 박았던 사건들, 다 같이 간 첫 해외여행의 설렘. 그리고 전 후회합니다. 남들과 다른 시간을 살며 후회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지금 이 순간 저는 후회로 뼈가 저려옵니다. 서른을 목전에 두고도 아직 자리를 못 잡아 변변한 효도 한 번 못 해 드렸음을, 자식의 성공을 당신들의 삶의 보람으로 여기는 분들에게 너무나 오랫동안 행복을 드리지 못했음을 원통해 합니다.
사랑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다음입니다. 첫사랑, 짝사랑, 진짜 첫사랑, 별로 안 사랑했던 사람, 제일 사랑한 사람 등등. 가족 같은 친구들도 떠오릅니다. 9년 지기들, 8년 지기들, …. 혹시 조막만한 유해라도 찾게 되어 장례를 치른다면 누가 와줄까, 와서 울기는 할까, 부조는 얼마를 할까, 10만원 이하면 서운할 것 같은데, 그런데 지금 서운해봤자 뭣할까, 죽는 순간도 돈 생각이 나니 우습네, 따위의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1초도 남지 않은 시간에 겨우 끊어냅니다.
좋은 때를 기다리며 마시지 않고 쟁여뒀던 좋은 술들, ‘다음에 하지’라며 미뤄뒀던 하고 싶은 일들, 해야 하는 일들. 못 가본 맛집, 못 들은 음악, 못 가본 나라, 못 먹어본 음식, 못 입어본 옷, 못 본 영화, 못 해본 체위, 결혼, 아이. 결혼 생각도 크게 없었는데 왜 아이 생각이 날까요. 유전자는 마지막까지 이기적이구나 싶습니다. 꿈, 목표들. 현대사 서적 귀퉁이에 적혀있을, 혹여 병장이라도 죽거나 대규모 사상자가 나온다면 ‘병장 아무개 등 n명’의 n명을, ‘몇몇의 사상자’에서 ‘몇몇’을 담당할 제 존재가 아쉽습니다. 자아실현을 열심히 해왔다면 어디엔가 이름 석 자 새길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한이 됩니다.
신속히 상황벨을 누르고 나니 포탄 파편이 얼굴로 향합니다. 다시 한번 어머니, 아버지, 동생이 나타납니다. 코로나 시국이라 휴가 통제로 오래 가족을 못 봤음이 분합니다. 가장 춥고 위험한 곳에서 군복무를 한다며 항상 몸조심하라고 당부하시던 어머니의 걱정 가득한 눈과, 이런 아들을 자랑스럽다 하시며 안아주시던 아버지, 항상 미안한 우리 동생. 죽음 앞에서 저는 슬프고 아쉽고 억울합니다. 옆 전우의 뇌수가 얼굴에 튀고 눈물과 섞여 흐릅니다. 고가초소가 무너지고 여기저기 폭음이 들리며,….
‘치-익, 고가게임팀 등장 바람’.
무전기에서 나오는 소리에 다행히 제 죽음은 순식간에 물러납니다.
‘후-후-, 아, 고가게임팀 등장’.
죽음이 다가오면 전 아직 그 앞에서 당당하지 못합니다. 너무나도 두렵습니다. 아직 전 해봐야 할 것들,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치-익. 아, 현시간 부 철수, 철수할 것’.
나라를 위해, 내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죽는 것은 숭고한 일이겠지마는 호국선열들에게는 죄송하게도 억울함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더욱, 하루하루 충실히, 삶의 소중함을 느끼며 후회 없이 살 것을 다짐합니다.
‘후-, 아, 수신양호, 교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