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아 - 도망가자
우리 가자.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대신 가볍게 짐을 챙기자.
참 작고 여리여리한 사람이었다.
생고기 몇 점, 소주 한 병도 버거워하는, 잠시의 격렬한 애무에도 과호흡이 오는 그런 사람.
그런 몸으로 아이는 어떻게 낳았는지, 또 연초는 어찌 그리 많이 태우는지.
그리고,
얇은 손목에 그려진 줄들과,
더 얇아 보이는 정강이에 남은 검붉은 원들.
약. 욕, 약.
정말로, 정말로 위안이 되고 싶었다.
그 아이를 뒤덮고 있는 끈적하고 차가울 정도로 무거운 그늘에서
잠시의 잠시라도 꺼내어 도망치려 했다.
이벤트, 여행, 음악, 키스, 서프라이즈, 맛집, 포옹, 사랑, 팔베개, 바다.
같은 터널을 지나왔다는 오만으로 섣부르게 내민 손에
그는 늦가을 햇살에 말라비틀어진 아레카야자 이파리처럼 더욱 시들어갔다.
짙은 안개는 몇 번의 휘적거림으로 걷히지 않음을,
그 서늘함에 굳어가는 손가락을 보며 사무치게 알았다.
부디, 이제는,
어김없이 찾아오는 밤이
당신에게 고요한 평화이기를.